'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런데 도대체 뭐가 기쁜 거지?

성탄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검토 완료

박일섭(neopenta)등록 2009.12.21 17:49
# Pro.
출근길 집 앞에 웬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근처에 주인인 듯한 사람도 없고, 꾀죄죄한 몰골을 보아하니,
주인에게서 버림 받은 유기견인 듯하다.

나를 향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 발길을 붙잡았지만,
더럽기도 했거니와, 내가 내미는 손길이 책임지지 못 할 손길이라는 걸 알기에
차마 목덜미 한 번 쓰다듬어 주지 못 하고 그냥 서둘러 출근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 보니 그 녀석은 으레 그래 왔다는 듯,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간다. 

#1
어제는 성탄을 기념하여 주일 학교 어린이들의 재롱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아직 유치원도 안 다니는 꼬맹이들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까지,
잘 하고 못 하고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모든 교회 성도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화장 곱게 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서 천사처럼 등장한 소년부 아이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독창을 하던 여자 아이의 노래도 수준급이었고, 중창 또한 꽤나 많은 연습을 한 듯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성도들이 감탄할 정도의 실력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2
학교 다닐 때 학예회 날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모든 아이들은 예쁜 옷을 차려입고,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의 이쁜 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쁘다.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옷 차림도 꾀죄죄하고 행동도, 말도 어눌해서 늘 따돌림을 당했던,
그 날 학예회에서도 따돌림을 당한 한 친구만 빼놓고...

#3
우리 주일학교 소년부에는 그런 아이가 없었을까?
자기도 아이들과 어울려 즐겁게 노래하고 싶었지만,
노래를 못 한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 하고,
예쁘게 단장한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4
'기쁘다 구주 오셨네'
어제 재롱잔치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곡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기쁨이다.
그런데 그 기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성을 버리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다.

Nativity with St Francis and St Lawrence 한 평생을 가난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한 두 성인이 초라한 마굿간 짚풀 위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다. ⓒ Web Gallery of Art


어느 신학자의 지적처럼 성탄의 참 의미는 '버림'과 '희생'이다.
그렇게 절대자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 했던 사람들도
물질적인 부와 지위의 높고 낮음, 재능의 있고 없음과는 관계없이
자신이야말로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께 사랑받고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그 기쁨을 전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5
청년부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과 받기 싫은 선물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받고 싶은 선물 순위에 '관심', 받기 싫은 선물 순위에 '무관심'이 들어 있었다.
물론 재미로 한 설문이지만, 참된 '사랑'의 자리를 피상적인 '사랑'이 대신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6
고등부 학생들이 준비한 꽁트에서 종이로 된 가짜 돈을 뿌리는 장면,
가짜 돈이 뿌려지자 맨 앞에 앉아 있던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와~"하면서 달려 나가
그 가짜 돈을 줍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모든 성도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나 또한 웃었다.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아 부끄러웠다.

맨 뒤에 앉아 계시던 담임 목사님은 그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 Epi.
세상엔 관심을 쏟아야 할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난 여전히 세상엔 내가 할 일이 없다고, 도대체 난 뭘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그냥 한 번 쓰다듬어 주기만 하면 되는 개 한 마리조차도 피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cyworld.com/neopenta9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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