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붕뚫고 하이킥"으로 그 사이 조금 컸다

잘가라~ 이 큰 빵꾸똥꾸, 작은 빵꾸똥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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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minayo)등록 2010.03.23 17:22
뒤늦게 감염된 지킥

친한 친구가 트위터를 하란다. 일간지에 광고 한 번 변변히 못 내고, 책 리뷰도 별반 없는데도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것도 트위터 파도타기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아마도 그러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나는 그 물결을 타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하긴 하겠지만 트위터가 끝물(?)일 때서야 타게 될 것이다. 내겐 인터넷 '카페'가 그랬고, '싸이질'이 그랬고', '블러그'가 그랬다. 남들 다 하고 질려서 빠져나갈 때쯤 그때서야 매뉴얼을 뒤적거리는, 시대를 타지 못하는 둔하고 느린 사람이 나다.

<지붕 뚫고 하이킥>도 그랬다. 지킥이 90회에 다다랐을 때, 이걸 보지 않고서는 친구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서야,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케이블에서 설 특집으로 내리 방영하는 30회분을 한 번에 보는 행운을 맞았을 때, '지킥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 후 1회부터 찾아보느라, 시쳇말로 밤마다 눈깔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 지킥이 지난 금요일(2010.3.19) 종영됐다. 이제 세경이도 신애도 지훈이도 준혁이도 순재도 해리도 현경이도 보석이도 인나도 광수도 자옥이도 줄리엔도 정음이도 세호도 없는 그야말로 캄캄한 세상이 찾아왔다. 마지막 회에서야 찾아온 지훈이 세경에 대해 깨닫는 어떤 자각처럼 나도 뒤늦게 알아버린 지킥의 실체 앞에 며칠 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가. 

매일 매일 일상에 하이킥을 날렸던 지붕뚫고 하이킥 사람들 누구 하나 섭섭치 않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지킥 사람들 ⓒ mbc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세경과 신애의 시선

세경과 신애가 사는 식구들의 '옷 방'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옷 방'은 제각기 이기적으로 흩어져있는 해리 식구들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지만 세경에게는 어쩌면 그 옷 방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세경과 신애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식구들이 쓰던 옷 방이었지만 이제는 버젓이 사람이 사는 '프라이빗'한 공간임에도 옷을 찾으러 들어오는 식구들은 그 흔한 노크도 한 번 제대로 하는 법 없이 아무 때고 함부로 문을 연다. 그래서 세경은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집안일에 피곤해도 제 한 몸 마음 편히 그 방에 눕지도 못한다(한 번은 보석이 삐끗한 허리를 지진다며 이 옷 방에 하루 온종일 누워있을 때도 있었다).

옷 방 옆에 자리한 부엌과 집안 전체는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요리해야 하는 세경의 일터지만 일터의 월급은 짜기만 하다. 세경의 짠 월급 60만원에는 보석의 어처구니없는 억지주장과, 툭하면 간식해내라, 청소해라, 놀아 달라, 내 거 만지지 말라는 해리의 괴롭힘을 받아내야 하는 감정노동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경은 세경과 신애를 재워주고, 먹여준다고 드러내진 않지만, '생각해서 조금 더 넣는' 수준을 제외하고 더 이상 월급을 올려주진 않는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무리 입주식이라지만 60만원이 너무 짜다고 말할 때라야 세경은 자신이 받는 월급의 적정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뿐이다.

신애와 세경은 이 이기적인, 대표적인 중산층 가정의 표본을 건조하게 드러내는 '외부자'다. 그런데 그냥 외부자가 아니라 시선의 어떤 편향성을 가지지 않은 그냥 투명한 안경 같은 존재들이다. 보석이 매일 순재에게 당하면서 누구에게도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세경에게 풀고, 해리는 세경과 신애를  종 대하듯 한다. 순재도 자신의 기분에 따라 세경이를 대할 때도 많다. 하지만 세경과 신애는 순재 가족 구성원들을 좋다, 나쁘다의 호불호로 가르지 않는다. 보통 자신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 서운하게 하면 나쁜 사람이 인지상정인데도 말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자매의 눈에 투영된 해리네 식구들이 있을 뿐이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었다

'준혁 학생'의 세경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준혁이 직접 만든 "용꼬리 용용" 요약본에 담겨있다. 세경은 준혁 학생의 배려에 힘입어 대학생을 꿈꾼다. 지훈 아저씨의 세경에 대한 '전혀 다른 의미의 돌봄'도 세경이 자신도 아저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한다. 이들은 세경의 미래 모습에 활력과 이유를 주지만, 같은 이유로 절망을 주기도 한다. 세경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의사 아저씨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초라함에 남몰래 "쪼그라드는" 비참함을 맛본다. 현실이 가장 '아픈 거울'인 것이다. 세경은 마지막 회에서 "이민을 떠나야 할 이유도 반,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도 반"이라고 말하면서, 떠나야 하는 이유에 신애가 자신처럼 쪼그라드는 모습을 보여서 라고 말한다. 식탐 많은 신애가 음식을 주저하고, 아파서 병원에 갈 돈이 없을까봐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애가 자신과 같은 '애늙은이'로 자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세경이 지훈에게 말한다. 검정고시를 보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 이라도 오르게 싶었다고. 하지만 자신이 오른 사다리 아래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누군가 있을 게 아니냐고. 갖고 싶은 것을 충분히 가져도 될, 가져볼만한 나이지만 '내게 좋은 것이 생기면 다른 누군가는 좋지 못한 것을 갖게 된다'는 냉혹한 삶의 이치를 세경은 성찰적으로 알아버렸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단다. 아저씨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게 설레고 걸레질을 해도 설거지를 해도 기뻤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 현명한 아이.

세경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눈가가 촉촉이 젖은 지훈을 보면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사랑의 얼굴이 있음을 나도 알아버렸다. 찬찬히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반추해보니 지훈은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엄마도 돌아가시고 사업에 바쁜 아버지 아래서 거의 혼자 외롭게 자란 지훈. 누나인 현경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함께 나눌 가족 구성원이 실상 없었던 지훈이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 아닌가." 스스로 이렇게 말할 것 같은 캐릭터.

내성적이지만 혼자만의 세계에서 안정된 심리상태를 유지하던 지훈. 무뚝뚝하고 건조해 보이는 이런 지훈을 어느 날 정음이 '건드렸다'. 그런 의미에서 정음은 지훈을 인도하는 가이드와 같다. 일에 묻혀있고 세상사에 관심 없고 자신 밖에 모를 것 같은 지훈을 정음은 봄날 바람처럼 부드럽게 간질이고 사랑해준다. 정음의 사랑이 해맑은 봄날의 장난기어린 바람 같다면, 세경의 지훈을 향한 사랑은 간절히 원해도 가 닿지 못하는 미완의 그리움이다. 지훈은 한 번도 세경의 애틋함을 눈치 채지 못했고, 자신이 세경을 챙겼던 이유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훈이 의도없이 세경에게 한 모든 행위 그러니까  옷을 사준다거나, 목도리를 사준다거나, 네가 핸드폰이 없어서 불편하더라면서 핸드폰을 준다거나, 사랑니를 빼라고 병원 스케쥴을 잡아 주거나, 한 번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세경에게 '그럼 마셔보라'고 커피를 권하는 일들이 그냥 동생을 돌보는 정도라 여겼다(우리는 때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훈이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는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해 본적 없는 일이다. 지훈의 과 후배는 어느 날 지훈의 도움으로 사랑니를 빼기 위해 카페에 찾아온 세경을 여자친구냐고 물으면서, 천하의 철면피 이지훈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느냐고 놀린다. 그런 누가 봐도 철면피인 지훈이 누군가를 챙기는 것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성장한다.

지훈, 끝내 말하지 못한 비밀

지훈은 그간의 세경과의 시간 속에 쌓인 일들이 사랑이었다는 걸 마지막 회 세경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세경은 정작 모든 것을 털어놓게 돼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훈의 얼굴에는 너는 모든 것을 털었지만 이제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새로운 비밀이 생겨버렸다는 한 없이 슬픔이 담긴다. 세경이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지훈은 "뭐?" 라고 대꾸한다. 세경이 나지막하지만 느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그때까지 한 번도 세경 쪽으로 얼굴을 돌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훈이 세경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는. 그때 지훈과 세경의 시간은 정말로 멈췄다.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지훈 멈춰진 시간속으로 들어가 버린 지훈과 세경 ⓒ mbc


"시트콤이 정극을 하려 하다니", "시트콤의 한계를 의심케 하다", "엔딩이 도대체 뭐냐, 피디의 정신상태를 의심케 하는 엔딩이다.", "꼭 죽여야 했나.", "더 없이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등등 지킥 메니아들도 나름대로 지킥 종결에 따른 후유증의 몸살을 앓고 있다. 모든 사랑은 통증을 피할 수 없다. 세경의 말을 빌려본다.

"우리 모두는 이 시트콤으로 그 사이 조금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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