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사람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지휘자보다 더 추악한 동료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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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영(micspeaker)등록 2010.03.29 18:31
맞은 사람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지휘자보다 더 추악한 동료의 침묵

지난 2009년 6월 10일 전주시립예술단 노동조합은 국악단 조합원 이모씨를 제명처리했다. 이유는 예술단(국악단) 공연 리허설 후 이 모씨가 신 모씨를 단원들과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공공노조 전주시립예술단지부 징계규칙 제2조와 3조에 의해 징계조치했다.

보통 이러한 폭력사태는 예술단의 해당 단체(국악단) 지휘자가 징계위를 회부하여 피의자를 징계하게 되어 있는데, 지휘자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신모씨)까지 징계위에 회부했다.

결과는 피해자는 주의, 피의자는 해촉이 결정됐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뒷통수를 과격하고, 발로 밟는 등 일방적인 폭력으로 당연한 결과였으나, 주의는 남들이 보기에 가벼울 수 있는 징계일지 모르나, 주먹 한번 휘두르지 않고 맞은 피해자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피해자를 징계위에 회부한 이유가 피의자의 이의 제기?

예술단 실무 담당자는 피해자까지 징계위에 회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극구 만류했으나, 국악단 지휘자는 피의자가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를 같이 회부할 것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고 일관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며 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이다. 

리더십 부재와 비겁한 변명

예술단 내 리더급에 있는 지휘자는 단의 전반적인 운영과 공연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피의자가 아무리 이의를 제기했다하여도, 맞은 사람을 징계위에 회부하여 가벼운 수위할지라도 징계를 주는 것은 단을 책임지는 리더의 올바른 결정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이의제기는 피의자가 징계위에서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비겁한 변명은 피해자를 징계위에 회부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선배와 단무장

지휘자는 단내에 폭력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피의자를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고 단 내 내규로 가벼운 처벌(3개월 외부출연 금지 및 자숙)을 내렸다. 더불어 이 폭력사건은 학교 선후배, 직장 선후배간의 생길 수 있는 소소한 일이며, 이 사건에 대해 단원들이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단원들의 여론을 잠재웠다. 이에 노동조합 비상회의를 통해 해당 조합원 제명처리를 결정, 시에 보고 하자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지휘자는 국악단의 행정담당자인 단무장과 악장을 노동조합에 보내 형, 동생 하는 사이에 생긴 일로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사건을 규명하는 노동조합의 행보에 염려를 표했다.

피의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바보 만드는 지휘자

이유야 어떠하든 간에 단순히 실랑이를 넘어 그것도 연습장도 아닌, 공연장에서 일부 대기하고 있던 관객이 보는 가운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둘 간의 친분에 상관없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사건의 내용과 의미를 축소하여 피의자를 수위에 맞지 않게 처벌하는 것은 처벌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정작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방치하고, 도리어 피의자를 보호하는 것이 되고 만다.

폭력의 합리화와 양비론.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문제지만, 아무리 폭력을 일으킬 만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쳐도, 그것으로 인한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리고, 선배로써 철저한 공연준비를 위해 그랬다 하지만, 결코 폭력만이 해결방법은 아니다. 피의자는 치솟는 분노를 추스리고, 현명하게 판단했어야 했다.

또한, 일부 단원들 중 원인 제공자와 피의자 모두 똑같다는 식의 양쪽 비판도 옳지 않다. 원인 제공자가 평소 예술단 근무에 소홀한 면이 있거나, 공연 준비가 다른 단원들에 비해 철저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해도, 그것은 해당자에게 주의조치나 독려로 해결할 일이다. 양쪽 모두를 비판해서 폭력이 정당화되서는 안된다. 

더 추악한 침묵하는 동료들

이러한 폭력사건에 이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의 그릇된 압력에 못 이겨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수긍하는 단원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징계위 회부 이전에 솜방망이식 내규처벌에 단원들은 대체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자가 단내의 불만을 가진 여론확산을 일축시켰다. 

자신의 높은 직분을 이용해 단원들의 의견을 틀어막는 것도 잘못이지만, 자신과 함께 연주하고 일하는 후배, 동료의 부당한 처사에 침묵하는 것은 더욱 추악하다. 분명히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고, 그것에 충분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와 자신과의  평화로운 관계유지나 단내 시끄러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선량한 방관은 결국 피해를 받은 동료에게 두 번째 폭력을 가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중 폭력에 신음하는 피해자

더욱 더 기가 막힌 일은 노조 일부 간부들마저 피의자의 처벌 결과가 두려워 조합원 의견을 묻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동이다. 이것은 조합원 투표를 거쳐 노동조합에서 징계위를 회부하거나, 지휘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할 문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가 있다. 만약에 의견 수렴하여 조합원 투표 결과가 피의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말자는 것이 결정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여론수렴을 이용한 사건축소와 처벌완화로 이어질 뿐이다. 이렇게 일방적인 폭력사건은 수위에 맞는 처벌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다. 평소 알고 지내던 피의자의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어 거기에 두려움을 갖거나 얄팍한 동정심으로 이성을 잃는다면 폭력의 폐습은 계속될 것이며, 피해자는 이러한 심리적 폭력으로 이중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곤 결국 부당한 일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친분과 다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폭력을 행한 선배가 보호받고, 정작 피해자는 잘못했으니 맞았다는 등의 억울한 누명까지 쓰게 되는 암담한 현실에 놓이게 된다. 폭력의 폐단을 막고, 약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하여 보호하는데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면 진정한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원인 제공자든 폭력 행사자든 다시는 폭력으로 단 내 분위기를 해치고, 서로 간에 상처를 주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에 대한 올바르고 현명한 대처는 어떠한 순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애초부터 피해자를 징계위에 회부하는 것부터 지휘자의 잘못이 크지만, 동료가 폭력을 당하고도 징계위에 회부되는 것을 보고 침묵하거나, 의견 수렴이나 투표로 처리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방식을 명분을 뒤집어 쓴 비겁한 행동은 근절되어야 한다. 이러한 낮은 동료의식과 용기를 잃은 침묵은 더 이상 정의롭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노동현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전주시립예술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전주시립극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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