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타? 500원도 없는 주제에!

[1회용교통카드 도입1년] 지하철보증금 계속 내야할까?

검토 완료

김시열(banzzok)등록 2010.03.29 15:23
집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인 ㅎ대학 행정직원 김두필씨. 동료들과 수색동에서 거나하게 한 잔하고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술집을 나섰다.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들어서자 막차시간이 간당간당하다. 김씨는 평일에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터라 교통카드가 없다. 다급하게 1회용교통카드 발급기 앞에 서니 '목적지를 입력하라', '돈을 넣어라', '기다려라' 등등 급할 것 없는 기계음이 또박또박 시간을 붙잡고 늘어진다.

스크린에서 'ㄱ'을 찾아 '공덕'을 누르고 돈을 밀어 넣는다. 몇 번이나 토해내던 1000원짜리를 겨우 삼키더니 이번에는 보증금 500원을 더 넣으란다.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몇 장뿐인데. 역무원을 불렀으나 그인들 어쩌랴. 1500원만 인식하는 냉정한 기계를 달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기계와 씨름할 때 때맞춰(?) 들어온 막차, 무덤덤하게 제 갈 길을 간다.

김씨는 서울시 도시지하철공사가 멋대로 정해놓은 보증금 500원 때문에 차비 1000원이 있음에도 차를 놓쳤다. 택시비 4700원을 쓰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회용카드 보증금제. 통행을 막고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쓰게 만드는 확실한 '보증서' 노릇을 한 셈이다. 보증금제는 모든 승객이 1회용 교통카드를 망가뜨리거나, 훔쳐가는 위험한 사람임을 전제하고 만든 제도인 듯해 더 찜찜하다.

차비가 있어도 차를 탈 수 없는 희한한 보증금제도

2009년 5월 1일, 서울시가 '지하철·전철 종이승차권이 1회용 교통카드로 바뀝니다"라는 발표를 한 지 1년이 다되어간다. "1회용 승차권은 1천회 정도 다시 쓸 수 있어, 해마다 승차권 만드는데 들어가는 31억 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고, 매표를 담당하는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는 도입 설명까지 달았다.

1회용 교통카드 도입으로 높은 종이승차권 제작비용과 과다한 판매운용인력에 따른 비효율은 줄어들었을까? 지금으로선 역마다 들어찬 '1회용교통카드 발권기와 보증금 환급기'한 대 구입비용조차 알 수 없으니, 효율성을 가늠해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기계를 들여놓은 뒤로 잇달아 역무실을 폐쇄하고 매표관리업무를 보던 수많은 역무원들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확실하다. 기계에 밀려 사라진 역무원들을 위해서라도 과거 종이승차권을 만들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던 비용과 현재 1회용교통카드 도입에 따른 운영비용을 꼼꼼히 따지고 견주어 볼 일이다.

이용하는데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1회용카드를 뽑을 때마다 스크린터치로 목적지를 찾는 일, 지폐 투입구가 돈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 잔돈을 바꿔야하는 번거로움(역마다 동전교환기 따로 설치)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이든 노인이나 외국인은 역무원 도움 없이는 거의 이용하기 힘든 형편이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이른 아침이나 귀가시간이 촉박한 늦은 저녁,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짜증부터 난다. 아주 급할 때는 보증금을 포기하거나 잊고 그대로 나가는 일도 여러 번이다. 하루를 열고 닫는 '서민의 발'로서 마뜩찮다.                   

보증금 제도가 시민의 발을 담보로 재산을 묶어놓는 사유재산 침해가 아닌지도 톺아봐야 한다. 서울시와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는 1회용 교통카드에 보증금을 얹음으로써 관리책임을 승객한테 오롯이 떠넘기고 있다. 지하철 요금 1000원에 이미 관리비용까지 포함되지 않았나. 

옛날 사용했던 버스토큰을 보자. 몇 개씩 필요한 만큼 사서 필요할 때마다 썼다.  버스를 타든지 주머니에 보관하든지 이용여부와 관리는 구입한 사람 몫이다. 토큰을 잃어버리면 승객은 손해를 보니 이미 금전적으로 책임을 진 셈이다. 잃어버린 것을 누군가 주웠다면, 십중팔구 버스 타는데 쓸 테니 토큰은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순환한다. 1회용교통카드 또한 마찬가지다.

1회용교통카드를 사서 분실한다면, 잃어버린 사람은 구입비만큼 손해를 보지만 1회용교통카드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다(주운 사람이 역무실로 건네주거나, 전동차를 청소할 때 회수할 수 있다). 혹시 1회용교통카드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개찰구에서 걸러지니 충분히 대비할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적은 숫자의 승객이 수집목적을 위해 일부로 훔쳐가거나 억지로 교통카드를 망가뜨리는 흔치 않은 일을 침소봉대하여 보증금을 걷는다면 몰라도, 보증금제도가 존재할 까닭이 없다.      

1회용교통카드를 누가 어디로 빼돌린다고 탈 때마다 보증금을 요구할까. 차비가 있음에도 보증금 500원을 내지 않는다고 차를 탈 수조차 없게 가로막는 일, 명백한 통행권침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