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거울씨 사망사건

기륭전자 앞 볼록거울씨 비명 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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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희(21kdlp)등록 2010.04.07 13:36
볼록거울씨는 동작 상떼빌 주자장 입구에서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대 차선에서 오가는 차량을 쉽게 볼수 있도록, 볼록거울씨의 얼굴로 차량을 반사해서 보여주는 일을 4년째 하고 있다.

볼록거울씨가 일하는 곳은 신대방동 나래길 주유소 뒤편의 조그만 자투리 인도였다. 상떼빌 아파트가 들어서기전에는 태평양 화학 공장의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오가며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2003년 태평양 화학이 이사를 가고, 공장터를 건설회사가 매입해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볼록거울씨가 세상의 빛을 보게된 것이다.

볼록거울씨는 늘 외로웠다. 주차장 입구여서 늘 들어가는 차들의 꽁무니만 바라봐야 했고,  노오란 가방을 둘러매고 뛰어놀던 아이들도 없었고, 학생들은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밤늦도록 돌아다니다 보니, 늘 그곳에 서있는 볼록거울씨도 그들을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였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시끌벅적한 아파트 야외시장도 길모퉁이를 지나서야 열리기 때문에 그저 바람에 들려오는 사람소리와 냄새만을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볼록거울씨는 기관지가 몹시 약하다. 오가는 차들이 내뿝는 이산화 탄소나, 중국으로부터 오는 황사때문만은 아니었다. 볼록거울씨가 태어나자 신대방동 나래길에 8층짜리 빌딩이 신축되면서부터 이다. 볼록거울씨는 태어나자 마자 낡은 건물을 철거할 때 내뿜는 수년째 켜켜이 쌓인 그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했다.

볼록거울씨는 하루빨리 건물이 신축되길 바랬다. 그래야 을씨년 스러운 뿌연 시멘트먼지와 이별을 고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뚝딱거리는 망치소리가 멈추더니 공사가 중단되었다. 볼록거울씨는 공사대금을 제때 주지 못한 건물주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오며가며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짙은 주황색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망치소리가 멈춘 공사현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볼록거울씨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아시바가 쌓여 있고, 채 대리석과 유리가 부착되지 않은 빈 곳을 사진으로 찍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왜그럴까 무척궁금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볼록거울씨는 전자회사가 공사가 중단된 빌딩을 인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속이 훤이 들어난 층층마다 공사장 인부들이 돌아다니고 그럴 때 마다 신기하게 검은색 유리가 한 장 두장  채워져 나갔고, 한쪽 면은 적갈색 대리석으로 채워져 갔다. 볼록거울씨는 밤마다 검은색 유리가 다채워 지고, 유리에 붙어있는 비닐들이 다 벗겨져 아담하지만 분위기 있는 건물이 자태를 자랑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러던중 인부들이 인도를 조성하더니 저만치에 파이트를 세우는 모습을 보았다. 삼거리에 과속방지턱을 만들더니 과속방지턱이 있음을 알리는 '주의양'이 새로이 입주를 하게 되었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볼록거울씨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그날 밤 볼록거울씨는 새로 이사온 주의양과 많은 이야기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볼록거울씨의 얼굴은 더욱 밝고 빛났다.   

2008년 10월 드디어 전자회사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사온지 며칠 동안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있다. 이상하다. 건물마다 다 이름이 있고, 누구든 자신의 이름과 하는 일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내걸기 마련인데 어째서 그러지 않을까? 볼록거울씨는 궁금했다.

며칠 후 새로 이사온 앞마당이 떠들썩 거렸다. 조용한 저녁나절에 갑자기 사람이 몰려오더니 분주하게 움직인다. 앰프가 설치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친다. 갑작스런 변화에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은 깜짝 놀랐다. 한참이 지났을까 모여있던 사람들이 노오란 천에 저마다 소원을 적는다. 긴밧줄에 소원지를 하나 둘 끼워 넣더니 갑작스레 볼록거울씨의 몸에 그 밧줄을 걸었다.

볼록거울씨는 갑작스런 변화에 불쾌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밧 줄을 거니 그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늘 말없는 볼록거울씨도 더 이상 참을수 없어서 한마디 하려는 찰나에 소원지가 끼워진 밧줄을 주의양에게 걸었다. 그렇게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의 백년가약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두사람의 만남을 축하해 주기 위해 밤늦도록 잔치를 벌였다.

생전처음 볼록거울씨는 꿈결같은 밤을 보냈다. 볼록거울 가문에 자신처럼 결혼까지 한 거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의양도 같은 맘음 이었다.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잔치에서 볼록거울씨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이사온 회사의 이름은 기륭전자라는 회사고, 641,850원 2005년 최저임금보다 10원을 더 많이 받던 여성노동자들이 문자로 해고를 당하고, 임금인상이 아니라 더 이상 해고당하지 않고 맘편하게 일하고 싶다고 투쟁했을 뿐인데 모두들 해고 당하고, 법대로 하겠다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해결하겠다고 했다던 회사가 말을 바꾼 이야기며 투쟁 1000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조합원 전체가 목숨을건 집단 단식을 하고, 30일 60일 90일을 단식했다는 이야기며 볼록거울씨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은 하루였다.

잔치가 끝나고 매일 아침 짙은 주황색 조끼를 입은 여성노동자들이 매일 깥이 볼록거울씨를 찾아왔다. 이틀에 한번 꼴로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이 만날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들은 소원지가 적히 밧줄로 소원교를 놓아 주었다. 조용하고 쓸쓸했던 신대방동 나래길에서도 함께사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는가! 주의양을 만나고 소원교를 통해 정분을 나눈던 볼록거울씨의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있는 딸아이가 교통사고가 나도 병원에 가기위해 조퇴를 해주지도 않았던 인정머리 없는 기륭전자 회장이 볼록거울씨의 사랑을 시샘하기 시작했다. 최동열 회장은 눈에가시인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을 떼어놓기 위해 구청에 신고를 했다. 통행에 불편하니 주의양을 철거하라고 민원을 냈다.

그러던 어느날 한낫에 인부들이 오더니 뜨거운 산소불로 주의양의 발을 잘라냈다. 볼록거울씨는 주의양이 길건너 가로등으로 이사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의 놀부심보에 비해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의 이별을 가슴아파했다. 주의양이 잘려나간 발을 볼때마다 최회장의 모습에 분노했다. 볼록거울씨는 기륭전자 여성들의 모습에 늘 감사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주의양이 길건너로 이사를 갔어도, 이년째 이틀에 한번꼴로 소원교를 놓아주었다. 비록 주의양이 빈곳이 쓸쓸했지만, 주의양과 더욱 가까운 곳으로 이어진 소원교에 볼록거울씨는 만족했다.

최동렬 회장의 탄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존의 배영훈 사장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3월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최동렬 회장은 직접 대표이사를 겸직하기로 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은 주총에서 수백억 이익을 남기던 기륭전자를 매출이 반토막 나고 99억 7천만원 적자로 만든 최동열 회장에게 따졌다. 최동열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기륭전자 앞은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경찰들도 대놓고 전경버스를 끌고 오고 체포조 역할을 하던 여성경찰관까지 몰려오곤 했다. 그동안은 큰 간섭없이 동작구 상도동 최회장의 집앞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열었는데, 현수막건다고 시비를 걸고, 투쟁조끼를 입은면 집회라고 막무가내로 경찰이 달겨드는 지경이 되었다.

볼록거울씨는 갑작스런 변화에 가슴이 뛰었다. 수년째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을 위해 소원교를 놓아주던 기륭전자여성노동자들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세상이라고 했는가. 29일 밤 새벽에 볼록거울씨의 얼굴을 누군가가 훔쳐갔다. 하루아침에 얼굴을 도둑맞은 볼록거울씨도 황당했다. 어쩔수 없이 당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아 뜨거운 산소불에 잘려나간 주의양의 다리는 얼마나 아팠을까. 볼록거울씨가 하루아침에 주황기둥씨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30일 아침 기륭전자여성노동자들도 깜짝 놀랐다. 소원교를 놓아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의 사랑을 이어주었는데, 주황색 기둥으로만 남은 볼록거울씨의 처지나, 6년째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6년채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이처럼 똑같을수 있다니.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볼록거울씨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112신고로 도난신고를 하고 동작구청을 찾아가 하소연 했다. 누가했는지 뻔하데도 경찰이나 구청직원은 나서지 않고 있다.

4월 2일 아침, 긴장되는 가운데 기륭전자에서 아침출투가 시작되었다. 어제 밤 최동열 회장집앞에서 열린 문화제에서도 경찰들의 횡포가 있었다. 기륭전자 투쟁에 늘함께하던 문재훈 소장도 목이 쉬어서 말을 못하고 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중 유일한 청일남 인섭씨가 소원교를 놓았다. 볼록거울을 도난당한 기둥뿐인 볼록거울씨의 몸에 소원교를 놓고, 주의양이 있었던 곳에 봉고차에서 소원교를 묶는데, 갑작스레 볼록거울씨 다리가 뿌러졌다.

가만히 가서 보니 볼록거울씨의 다리가 쇠톱에 거의 잘려나가고 혼자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살만 남아 있다가 소원교를 놓는 인섭씨가 밧줄을 당기자 힘없이 볼록거울씨가 넘어진 것이다.
그렇게 볼록거울씨가 허망하게 세상을 하직했다. 기륭전자 신사옥에서 2년째 투쟁하면서, 볼록거울씨와 주의양의 백년가약을 맺어주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허망하게 세상을 하직한 볼록거울씨를 추모하며, 난장을 했다. 
조용하던 신대방 나래길에서 태어난지 채 4년을 넘기지 못하고, 황망하게 세상을 뜬 볼록거울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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