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속초 가기

아 ~ 미시령

검토 완료

이현(ngokorea)등록 2010.04.14 16:57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기준으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과 자전거 타지 않는 일반인. 이 둘의 언어 생활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가끔씩 서로간의 의사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에게 바다, 낭만, 동해 등의 이미지를 가지는 "속초"에 대한 뜻풀이를 살펴 보자.

<사전적 의미>
속초 [束草]  [명사] <지명>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 명태, 오징어, 청어
따위가 많이 잡힌다. 비행장이 있으며, 설악산•영랑호•해수욕장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면적은 104.85㎢. (네이버 국어사전)

<자출족 의미>
속초 :  자전거 타고 담배 사러 마실 갔다 온다는 고수들의 놀이터. 자출 후 석달
정도만 되면 누구나 가볼 수 있다고 욕심 낼 수도 있는 곳. 하지만 자전거 타지 않는
사람에게 속초 갔다 왔다 얘길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 받을 수도 있음.
(자출사 필수 용어 중)

자전거로 속초 가는 길 우측 미시령이 여정의 클라이막스이다 ⓒ 이현


자전거 출근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속초까지 자전거 타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자출사 http://cafe.naver.com/bikecity.cafe) 카페
에도 속초 자전거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올라 오곤 했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초보 자출족인 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40이 넘어 가는 나에게 '자전거 속초행'은
내가 꼭 이뤄내야 할 도전같이 다가 왔다.

그래서 중랑천바이크버스(2010년 4월 12일 기사 참조) 사람들과 속초행을 계획하였다.
드디어 2009년 6월 27일 중랑천바이크버스 자출족 13명이 자전거로 속초를 갔다.

당시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보았다.

미시령 앞에 도착했다. 특히 직전 마지막 고개는 정말 힘이 들었다. 왼쪽 아킬레스건에 무리가 왔는지 뻐근하다. 며느리재 넘다가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서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드디어 마지막 고개 미시령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자전거 페달질 하고 온 것이 신기하다.

미시령 정상행을 앞두고 모두 긴장한 모습이다.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물, 토마토, 초코릿등을 먹는다. " 아~정말 내가 저기를 올라 갈 수 있을까? 솔직히 겁이 난다."
잘 타는 사람이건 못 타는 사람이 건 초행길에 대한 긴장감은 똑같은 것 같다.

경험자들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 주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데 많은 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한 부부는 아내와 함께 교대로 10시간에 걸친 에스코드 차량 운전을 하였다.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고맙다. 차량지원이 없었다면 오늘 내가 먹은 물 약 4리터, 음식 등을 든 베낭을 메고 여기까지 왔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침 7시 넘어 국수역에서 모여 출발한 것이 며칠 전 일처럼 느껴진다. "화이팅"하면서 출발하였지만, 지루한 고개를 하나 둘 넘으면서 하나 둘 점점 지쳐갔다. 그 와중에 그룹의 선두에 서서 힘들게 이끌어 주신 많은 분들이 고맙다. 사실 나도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10여분 선두에 선 적이 있는데, 맞바람 때문에 힘들었다.

국수역 앞에서 자전거로 속초가기 대장정을 앞두고 ⓒ 이현


미시령 입구에서 언제나 처음 경험은 긴장된다. ⓒ 이현


자 이제 미시령 정상을 향해 달릴 시간이다. 속초를 다녀 오신 경험자 조언대로 무게를 최대한 줄인다. 헬멧을 벗고, 자전거에서 불필요한 라이트, 헤드폰 거치대 등을 뗀다. 물도 비상용으로 한 모금 분량만 남긴다.

자전거에 올라 탄다. 페달을 밟는다. 스피커 볼륨도 높여 음악을 튼다. 조용한 길에 음악이 크게 흘러 퍼진다. 기어비를 적당히 미리 조정한다. 미시령 고개 초입에 접어 들었다. 처음부터 급경사이다. 기어는 어느새 1-4.. 1-3... 1-2까지 떨어진다. 마지막 1-1은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 남겨 둔다.

앞에 분들은 직진으로 올라 가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갈지자 행보. 왼쪽 종아리가 또 땡겨온다. 아뿔사, 급하게 속도를 늦추느라 중심이 흐트려진다. 겨우 다리에 경련이 일어 나는 것은 막았다. 조심해야지.

길을 보면서 갈지자로 계속 올라 간다. 가끔씩 차들이 보인다. 차도 피해 가면서 페달질 하며 올라 가는 것이 힘들다. 옆을 지나 가는 차량 창문이 열리면서 운전자 한 분이 "화이팅" 해 주신다. 힘이 나는 듯 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가는 줄 모르겠다. 선두는 벌써 보이지도 않는다. 땀이 이마에서 흘러 눈가로 폭포수 처럼 흘러 내린다.

눈에 땀이 들어가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리면 다시 탈 수 없을 것 같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속도계에 있는 시간 조차 볼 여유도 없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본다. 저 멀리 먼저 올라 가신 분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언제 저기 까지 올라 가지.. 정말 힘이 들어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니 아~ 저 멀리 미시령 휴계소가 보인다.

다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온다. 미리 도착해 계신 분들이 박수를 쳐 주신다.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 졌다. 하지만 정신이 없이 일어나니... 1 초 후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내가 해 냈다

캔맥주을 하나를 따서 마시니 술술 넘어간다. 이것 마시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아내와 부모님께 미시령에 올랐다는 문자를 보낸다. 감개무량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미시령 표지판 앞에서 서로 미시령 자전거 등반 인증사진을 찍는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자전거, 참 희한한 물건이다.

미시령을 오르며 고통의 순간들 ⓒ 이현


미시령 정상에서 몸은 고통스럽지만, 마음은 성취감으로 충만하다 ⓒ 이현


지금 그날의 일기를 읽어 보아도 그 때의 감격이 느껴지는 듯 하다.

4월이 되어 날씨가 포근해지자, 자출사 각 모임에서 속초행, 땅끝마을행 등 장거리 라이딩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져 온다.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으므로 많은 경험을 가지신 분들과 함께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 것이 좋다.

자전거를 타면서 주위 경치를 한번 둘러 보라. 인생이 바뀔 것이다.

미시령 정상 이런 인증사진 찍는 것이 의아했지만, 내가 정상을 경험하니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 이현


덧붙이는 글 자전거출근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http://www.hyun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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