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에서 하얀 재가 되버린 20대의 불타는 청춘

학고를 눈 앞에 둔 어느 복학생의 하소연

검토 완료

정윤교(galigaligali)등록 2010.05.27 11:04

학기 종료가 3주도 안 남은 이 시점, 과제도 쓰지 않고 이 글을 쓰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일까. 학교를 입학한 이후로 계속 등교의 목적이 되었던 '학점'. 요즘은 만점이 5점도 채 되지 않는 그 숫자가 너무 무섭다.

 

학생이 하는 모든 일에는 늘 평가가 따른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순간부터 100점과 80점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나는 1년에 4번씩 긴장의 순간을 맛봤고, 환희와 절망의 극과 극을 왔다갔다 했다. 중학교를 거쳐, 대망의 고등학교까지 그 순간은 어김없이 매년 네 번씩 찾아왔고, 고3때 본다는 대망의 수능을 마지막으로 그 순간을 이별하나 했다.

 

하지만, 2007년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캠퍼스의 낭만이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보다는, 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더 좋은 수능 성적을 얻지 못한 처절한 패배감의 쓴 맛을 몇 달간 경험했다. 일생을 좌우한다는 그 시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유에서 였을까.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세상과의 대결에서 무참히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떤 직접적인 외압을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공부의 길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모든 학생들은 공부 잘 하는 아들, 학생, 친구, 옆 집 그 아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점수 하나에 울고 웃고, 수능에 점점 다가갈수록 그 정도는 더 민감해진다. 평범한 10대 청소년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였고, 시험 성적은 그 아이의 사회 적응 척도가 된다.

 

수능 시험이 끝난 후, 모든 친구들은 수능 점수에 따라 자기 운명을 할당받았다. 그렇게 대학 잘 가는 녀석, 대학 잘 못 가는 녀석, 다시 도전하는 녀석 등으로 그들의 미래를 예언받았다. 당시 나는 그럭저럭 수능은 잘 봤지만, 원서 지원에서 썩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여 씁쓸해 하는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 씁쓸함은 나를 이미 지난 일에 얽매이게 했다. 평소보다 점수가 더 잘 나왔음에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나게 했다. 그런 기분으로 대학을 입학했으니, 교정에 벚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어떤 여학우가 건낸 편지가 뭘 의미하는 줄도 몰랐다. 정말 불행한 일은,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3년이 지난 오늘, 난 이제 학점의 노예가 되어, 초등학교 때부터 12년이 넘도록 해오고 있는 운명의 사슬에 다시 종속되었다. 군휴학 중에 했던, 앞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해보겠다는 굳은 다짐은, 취업난이 계속 될수록 높아만 가는 안정된 취업 요건에 대한 갈망과 그 요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몇 가지 것들에 의해 굴종당했다. 학점, 토익, 토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외친다. "20대여 열정을 갖아라". 20대는 말한다. "공부하는데 조용히 좀 하세요". 요즘 신입생들은 참 대단하다. 대학에 오자마자 열람실 좌석을 꿰차고, 수업시간에 간간히 나오는 영어 단어들을 버터발음으로 꼬을 줄도 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대한민국 신입생들의 수준을 날로 높아만 간다. 그리고 신입생과 복학생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그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중간고사'다. 예전에는 복학생이 학점을 잘 받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머리 좋고,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파릇파릇한 신입생을 구닥다리 복학생이 이길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복학생이 자존심이 있지 군대도 안 다녀온 꼬꼬마들에게 질 수 있나, 그들의 학구열도 함께 불탄다. 그러면서 경쟁은 계속되고, 오늘도 열람실에는 볼펜 끼적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렇게 경쟁의 골은 더 깊어지고, 학생들은 운명의 사슬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미래에 대한 탐구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렇게 슬퍼할 여유는 없다. 곧 시험이다.

 

 

 

 

 

2010.05.27 11:02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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