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학력 위조 논란을 통해 바라본 연예인과 학벌의 관계

마녀 사냥을 그만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찾자

검토 완료

배정훈(bachooya)등록 2010.06.19 14:19
지난 6월 14일,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토마스 블랙(Thomas C. Black) 부학장이 Daniel Seon Woong Lee(타블로의 본명)의 학사 및 석사 취득을 학교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인정하였다. 이로써 오랜 시간을 끌어왔던 힙합 그룹 에픽하이(Epik High)의 멤버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논란의 당사자인 타블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동안 자신과 자신의 주변인들이 겪었던 괴로움을 토로하며 당분간 '긴 휴식'에 돌입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네이버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cafe.naver.com/whathero)"와 디시인사이드 에픽 하이 갤러리(gall.dcinside.com/epikhigh)에서는 여전히 부학장의 인증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며 추가적인 논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의 공식적인 해명에도 그를 신뢰할 수 없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까.

학벌과 '뜨는 연예인'의 상관 관계

대한민국 사회는 학벌이 많은 것을 결정짓는 곳이다. 훗날의 직업, 자신이 속하게 될 계급,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 등 많은 것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갈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일견 학벌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직업들조차 학벌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직업군 중 하나가 연예인이다. 대중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연예인이 1차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은 연기력, 가창력, 적합한 외모, 진행 실력등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어떤 신인급 연예인이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내로라하는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위 '뜰' 가능성이 생긴다. 대표적인 예로 데뷔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었던 연기자 김태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이로 알려지며 CF와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주가를 올려 현재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라있다. 그 외에도 그룹 UN의 멤버였던 김정훈, 클래지콰이의 멤버 호란, 가수 성시경 등이 학벌의 후광을 입은 연예인들이라 할 수 있다.

타블로 역시 이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타블로가 속한 에픽 하이는 2003년 그들의 1집 앨범을 출시하였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처음 타블로와 에픽 하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타블로가 출연한 '논스톱5' 라는 인기 시트콤과 그 O.S.T에 수록되었던 '평화의 날'이라는 곡 때문이었다. 힙합 음악이 점점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있던 당시 대중적 멜로디에 기반을 둔 에픽 하이의 음악은 크게 인기를 끌었고, 에픽 하이는 차례로 히트곡을 내며 인기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렇게 에픽 하이가 인기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리더인 타블로의 학벌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과 신문 지상을 통해 미국의 유명 명문 사립대 중 하나인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 이는 타블로가 '천재'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뛰어난 학업적 성취를 뒤로하고 음악 활동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후 타블로는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자신의 학창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자랑하며 그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블로 본인이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과장된 표현이 있었고, 이는 후에 타블로의 학력 의혹을 증폭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다.

학력 위조 논란, 왜 발생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블로가 실제로 스탠퍼드를 졸업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이러한 논란이 발생되었냐는 것일 것이다.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사람들에게 개연성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예일대 측에서 신정아씨가 위조한 서류를 자신들의 공문이라고 인정했다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며 한국 사회에서 미국 대학의 학력 검증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되었다. 또한, 이후 영화배우 장미희, 영화감독 심형래 등의 학력 의혹이 추가로 밝혀지며 문화예술계가 학력 의혹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확실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위해 학력을 위조하는 일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화살이 타블로에게 돌아간 것인가? 그것은 타블로가 자신의 이미지를 고양하고 인기를 높이는 데 '학벌'이라는 자원을 적절하게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본 한 네티즌이 4년여 전부터 꾸준하게 타블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왔고 이것이 다른 이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삽시간에 학력 논란이 이슈화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학벌을 이용해 인기를 얻는 것이 연예인들의 성공적 마케팅 수단인 동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자아낼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학벌과 관련해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흔히 SKY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른바 '명문대'의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의 많은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다. 단지 그런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 승진, 결혼 등에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곳이 이곳, 대한민국인 것이다. 또한, 점점 더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명문대 입학은 정치, 경제적 계급을 나누는 척도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명문대에 다니는, 혹은 졸업한 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분노의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그만두고 전체적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타블로의 학력이 논란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 대학 출신들에 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의 그것도 '석사' 학위는 찬란하게 반짝이는 것인 동시에 빛이 바라기 쉬운 것이었다. 함께 학교를 다녔던 동기들의 몇 마디 증언과 상황 증거면 충분할 학력 인증 절차(?)가 외국 대학의 경우 훨씬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타블로의 학력이 검증된 것으로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네티즌들은 Daniel Seon Woong Lee가 타블로와 동일 인물이 아닐 수 있다거나, 3년 반 만에 학사와 석사를 동시에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할 것은 좀 더 큰 맥락에서의 문제가 아닐까.

진정 우리가 문제 시 해야 할 것은 학력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도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는 학벌 사회 대한민국의 구조적 결함이다. 타블로가 정말로 스탠퍼드 대학을 나왔느냐 아니냐보다, 왜 그가 인기를 얻기 위해 '스탠퍼드 석사'를 팔 수 밖에 없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결국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급이 학벌을 만들고 학벌이 계급을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를 청산해야만 한다. 물론, 이런 거시적인 담론의 논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개인의 노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일견 타당한 반응이다. 하지만 역시 큰 강은 작은 내가 모여 이루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구조의 부조리에 주목하고, 그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때 조금씩이나마 사회는 변화해나갈 수 있다. 대중의 가면 뒤 숨어 타블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보다 학벌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발하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학력 위조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bachooya.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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