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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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후삼(nchunjae)등록 2010.06.28 19:50
나는 '세상을 공부하기 위해' 매일 옆 동네 구립 도서관으로 간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걸어서 30분 거리. 우리 동네는 강의 남쪽에 있어서 강남이겠지만, 저쪽 동네는 '이른바 강남'이었다. 뭐가 다른가. 우선 건물이 다르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건물들이 굉장히 많다. 누군가는 남근의 상징이라고 할, 바로 그것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쪽과 저쪽의 차이를 잘 몰랐다. 사실, 지금도 딱히 잘 아는 건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것은 없다. 공부 때문에 매일 걷는 길이어서 그런가. 혹은, 아직 경제적 자립을 못해서 그런가. 그런데 어느날, 뭐가 다른지 확실하게 느꼈던 사건이 있었다. 6월2일이었다. 지방선거 투표 결과가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근소한 차이로 전 서울시장은 다시 현 서울시장이 되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내 기억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던 건 '특정 구역의 압도적인 파란색'이었다. 그 특정구역이란 내가 있는 구역이자, 동시에 이쪽과 저쪽을 포괄하는 구역이었다. 물론 추정컨대, 그 파란색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숫자는 저쪽의 인물들이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건물의 차이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명백했다. 그러나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은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래서였다. 압도적인 파란색을 '목격'했을 때의 무서움은. 지난 날들, 우리 동네를 걷듯 저쪽 동네를 걸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걷던 이 길을 구획하고 나누며 강남이니 뭐니 딱지를 붙였지만 내게는 그냥 '30분짜리 길거리'였을 뿐이었다. 거길 걷던 사람들은 다 똑같았다. 뭐가 다르지, 않았다. 압도적인 파란색의 이미지를 접하기 전까지는. 그날부터 나는 저쪽 동네만 가면 파란색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지나는 사람들은 왠지 파란색 이미지의 구성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과 나를 자꾸 구분짓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전혀 안그랬는데 '파란색'을 목격하고서부터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그 부근, 지하철역이었다. 나는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부탁은 아주 간단했다. 유모차를 같이 들어달라는 거였다.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제법 길었다. 여자는 손잡이를, 나는 밑에 달려있는 둥근 바퀴를 잡았다. 나는 허리를 굽힌 상태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를 보게 되었다. 잠을 자고 있었다. 뭔가, 오르는 계단은 더 길게 느껴졌다. 평범했으나, 내게는 '강남 아줌마'의 표상처럼 느껴졌던, '상징적'모습처럼 다가왔다. 계단의 끝에 이르렀고, 여자는 내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발음이 무척 정확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과는 달리 눈은 경직되어 있었다. 물론, 내 느낌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여전히 그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도 '고맙습니다'라는 정확한 발음 뒤에 경직된 눈으로 나를 경계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꼭 그랬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그여자 또는 '그들'보다 내가 더 무서운 놈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째서 그 여자가 나를 '경계'했다고 느꼈는가. 그랬다면 유모차를 들어달라고 부탁조차 안했을 텐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왜 자꾸 그들을 보면서 '파란색'이란 딱지를 붙였을까.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 덕지덕지 딱지를 붙이고 나누고 구획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던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래서 더 무서웠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30분짜리 거리'는 저절로 절단 나버렸다. 잠자고 있던 아기가 생각난다. '파란색의 이미지'란 '사실'과 '30분짜리 거리의 절단'이라는 주관의 사이에 왠지 그 아기가 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내 나이쯤 되면 이런 이상한 현상들이 좀 사라지려나.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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