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한테 말하죠, 네가 레즈비언이면 좋겠다고"

[인터뷰] '즐거운 페미니스트'이고 싶은 <브루클린 오후 2시>의 저자 김미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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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정(k0429sj)등록 2010.07.28 10:17
김미경씨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오래하고 편집위원을 거쳐 여성잡지 '허스토리' 편집장을 한 후 5년 전 뉴욕에 가서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살고 있다. 지난 2월 <브루클린 오후 2시>(마음산책 출판)을 펴낸 그녀를 최근 센트럴파크에서 만났다.

<브루클린 오후 2시> 저자 김미경 한겨레신문 기자와 편집위원, 여성잡지 '허스토리' 편집장을 지낸 김미경씨가 최근에 뉴욕에서 시작한 새로운 인생이야기를 엮어만든 책 '브르클린 오후 두시'라는 책을 냈다. 샌트럴 파크에서 한 컷찍었다. ⓒ 강수정


- 안녕하세요? 선생님, 뉴욕 한국 문화원에서만 뵙다가 이렇게 저자와 인터뷰어로 만나게 되니 느낌이 아주 새롭습니다. <브루클린 오후 2시>를 출간하시게 된 결정적 동기가 있다면요?
""예, 김선주 선배라고 한겨레 신문사에서 일할 때 부터 저희 후배들을 잘 챙겨주던 언론인인데요. 2007년 회갑을 맞아 후배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하면서 선주스쿨(sunjooschool.com)이라는 웹사이트를 오픈했어요. 김선주 선배님이 교장이 되어서 인터넷상에서 자연스럽게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죠. 김 선배님이 '교장만 있는 학교가 어디 있냐?'면서 후배들에게 교실을 하나씩 오픈해서 글을 쓰라고 권유하셨죠.

그래서 '브루클린 이야기'라는 교실을 시작했어요. 선주스쿨에서는 '미갱이'로 통해요. 제 별명이자 인터넷 필명이죠.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지난해 여름 연락이 와서 출판하게 된 거죠. 사이트에 처음 글을 쓸 때는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 오기 전에 나 자신을 수식해 왔던 많은 것들을 다 내려놓고, 낯선 땅에서 새롭게 살고 있는 나의 존엄을 깨닫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도록 치유해 준 것이 바로 '글쓰기' 였습니다."

'운동가 윤리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 뉴욕에 사신 지 5년 정도 되셨는데, 뉴욕에 사시면서 분명 한국에서 사실 때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변화를 겪으셨을 겁니다. 본인의 정체성이나 사고에 있어 뉴욕에서의 삶이 끼친 영향이랄까 그런 게 있으신지요.
"가끔 TV에 등장하는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이라크의 젊은이들이 있잖아요? 그들과 한국에서의 저의 삶이 오버랩되며서 그렇게 밖에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젊은이들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 그래요? 어떤 면에서요?
"물론 제 삶이 자살 폭탄 테러범처럼 그렇게 치열하고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늘 사회를 변혁시켜야 하고 대중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어떤 개인적 자유나 즐거움 등을 멀리하며 살았어요. 그렇게 '운동가 윤리의식'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의 모습과 자신이 속한 나라와 종교집단의 존속과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던지며 삶을 마감하는 그 젊은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거죠.

지금 뉴욕에서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폭탄을 안고 적의 탱크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저 이라크의 젊은이에게도 센트럴 파크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는 저 젊은이들처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79년 대학 가서 학생운동 세례를 받고 학습했던 마르크시즘이 설명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설명해 준 게 페미니즘이었어요. 지금도 여성이 평등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그 원칙적인 부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언제나 심각한 이야기만을 화제로 삼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 속에서 평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결혼제도는 이제 시대에 어긋나

- 선생님 책을 사서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선생님 개인사도 흥미로웠는데요. 결혼이 좀 특별하셨죠? '고졸남편과 이대 석사 출신 여성언론인의 결혼'으로 언론에 보도되신 적도 있는데, 지금은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고 계십니다. 결혼관이나 이혼관에 대해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지요?
"결혼을 한 번 해보고 느낀 건 결혼이라는 제도, 즉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성적, 경제적으로 구속하는 결혼제도 자체는 너무 시대에 어긋나는 것 같다는 거예요. 끝없이 변화하는 생명체를 평생 한 남자만 또는 한 여자만 사랑하고 관계하고 살라는 것은 너무 지독한 거죠."

-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상당히 논란이 될 발언인데요. 최근 미국정부가 결혼제도를 홍보하는 TV 광고를 위해 500만 달러 예산을 책정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만큼 결혼제도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 TV 광고가 '결혼이 이렇게 좋으니 결혼하십시오' 뭐 이런 겁니까? 재미있네요. 제 말은 결혼제도를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자는 뜻이 아니라, 그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누구랑 성관계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절대적으로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는 근본 원칙에 있어서 결혼 제도 자체가 기혼자들의 성적 파트너를 법적인 배우자로만 제한하는 것 자체도 행복 추구권과 자유권에 위배되는 것이니까요."

- 책은 참 부드럽게 쓰셨는데, 성향은 아주 급진적이시고 강하시군요. 이혼 후에 친구처럼 지내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냥 좀 참고 살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전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10여 년을 떨어져 살았고, 제가 미국으로 와서 일년을 함께 살았을 때 서로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지요. 물론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이해하고 새롭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다시 또 합쳐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장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한 사람에게 또 다시 쏟고 싶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라고 해서 모두 함께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아이 아버지로서 제 인생에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소중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소중한 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 정말 생각이 자유로우시네요. 제 남편에게 신혼초에 부부간 대화 부족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내가 바람을 피웠냐, 도박을 했냐, 구타를 했냐, 애를 못 만들었냐? 마약을 했냐? 내가 왜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 때는 제가 어려서 어찌 반박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제 남편의 사례처럼, 아직도 한국 사회에선 이처럼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이혼은 생각지도 말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경우 이혼을 결정할 때 본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이유, 즉 자녀나 가족의 체면, 사회적 인식 등을 의식해 '웬수, 웬수' 하면서도 도장을 찍지 못하고 사는 사례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많은 미국 친구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당연히 이혼에 있어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딸에게 '네가 레즈비언이면 좋겠다' 얘기해

- 딸 린이와의 자연스런 대화가 책에 자주 등장하는데, 본인만의 자녀 교육 지침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자녀교육을 위해서 따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늘 생각과 행동을 그 아이가 지켜보고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정색을 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사실 그 때 뿐이지 그 아이에게 진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평소에 엄마가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의 실천'을 하는 것이죠. 내 자녀에게 인간으로서의 나를 노출하는 거죠. 애가 자연스럽게 나의 발전하는 모습을, 또는 고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 책에 쓰신 것처럼 선생님의 딸 린이는 정말 궁금한 게 많고, 과감하게 질문하고, 또 선생님께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해 주시는데요. 오럴섹스에 대해서 따님이 질문하고 선생님께서 대답하는 부분은 좀 놀라웠습니다. 만일 린이가 동성연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묻는다면 어떻게 응답해 주실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동성연애에 대해서 완전 오픈이에요. 제 딸이 17세인데 아직 남자친구가 없어요. 반면 여자 친구들이 많고 잘 따르거든요. 그래서 한때 '이 아이가 레즈비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린이야, 나는 네가 레즈비언이면 좋겠다, 그럼 내가 너랑 네 파트너랑 함께 요리도 하고, 영화보러도 가고, 남자친구보다 더 편할 것 같애'라고 말이죠."

- 린이의 반응은요?
"린이는 펄쩍 뛰죠. 자기는 남자랑 사귈 거라면서. 린이 친한 친구의 엄마는 이혼 후에 레즈비언이 되었고, 린이 상담 교사도 멋진 레즈비언이라서 오히려 레즈비언에 대한 오픈된 감정이나 시각은 딸아이로 부터 배우기도 해요. 제가 사는 동네가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라고 뉴욕에서 레즈비언들이 비교적 많이 사는 동네거든요."

- 선생님은 책에서 소위 '걸레론'을 언급하셨는데요. 둘 사이의 합의에 의한 섹스였다면 경험이 많은들 무엇이 문제냐, 왜 그녀를 걸레라고 비유하고, 비하하는가 하고 비판하셨는데요. '꼭꼭 빨아서 햇볕에 잘 말려서 쓰고 쓰고 또 쓰는 그게 뭐 어때서? 나 그냥 걸레 할래, 걸레가 어때서?' 하신 표현이 재밌었습니다(웃음)
"그렇죠. 아까도 말했지만, 누구와 성관계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야 하는 것이고, 비록 결혼이 수백년 수천년 동안 지속 발전해 온 제도라 하더라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물론 청소년들처럼 아직 누구와 잠자리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능력이 미흡하고 본인의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일정 수준의 훈련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본인의 성생활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그런데 아무리 성적 자기결정권이 본인에게 있다고 해도 '처녀가 유부남을 또는 총각이 유부녀를 꼬셔도 되나' 라는 성윤리 논쟁으로 가면 논의가 좀 복잡해 지는데요. 윤리라는 게, 기준을 세우기로 말하면 끝이 없고, 기준을 없애기로 하면 한없이 위험스러울 수도 있어서. 예를 들어 '사랑 없는 섹스는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또는 '성매매는 전문직업인가, 아니면 여성의 사회적 억압에 의한 희생물인가' 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성매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성매매를 고급 전문 직업으로 봅니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존재할 아주 고급 직업이죠."

- 그러시다면, 딸 린이에게 성매매 업을 직업으로 권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가 인터뷰어로서 독자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묻는 겁니다.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 딸에게 권유해주고 싶진 않아요, 왜냐면 그 일이 비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죠."

- 그렇게 위험한 직업이 고급전문직업일 수 있을까요?
"위험한 데 고급직업이 왜 없나요? 프로 축구선수, 프로 럭비선수도 그렇고, 가수도 그렇고…. 다 신체적으로 위험에 엄청 노출되지만 고급 전문직업이지 않나요? 그런 의미구요. 고급 전문직업이라고 다 딸에게 권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저는 정말 프로 축구나 프로 야구, 프로 권투선수를 권하고 싶지 않아요. 그 직업들이 고급 전문직업이 아니어서가 아니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급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하기 어려운,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죠."

즐거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 아까 한국에 계실때는  '운동가로서의 윤리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뉴욕에 있으면서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하셨는데요. 그것이 '운동가적인 마인드를 접었다'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잘 보셨어요. 저는 안젤리나 졸리가 수백명의 여성운동가들 보다도 더 영향력있는 여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면에서요?
"나쁜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싫어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 자기가 살고 싶은 남자랑 다 사는 거,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브래드 피트랑 결혼 안 하고 사는 거, 최근 결혼하겠다고 해서 좀 헷갈리긴 하지만요.(웃음) 또 아이들을 과감히 입양하는 거, 일과 가정 둘 다를 즐기는 거. 이건 슈퍼우먼 신드롬과는 다르죠. 둘 다를 억지로 하기 보다 즐기면서 하는 듯 보이니까요. 전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제니퍼 애니스턴의 남자를 빼앗았다는 '욕'에 당당한 거, '나쁜여자' 이미지에 당당한 거 등등이죠."

- 작가로서 앞으로 꿈이 있으시다면?
"제가 요즘 가지고 있는 꿈은, 즐겁게 사는 페미니스트예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하고, 어떻게 하면 여성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현재 주어진 삶을 즐기면서, 웃으면서 바꿔나갈 수 있기를 바라요. '페미니스트들은 너무 심각해'라는 이미지를 벗겨주고, 늘 심각한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나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대중과 더 친숙한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익숙하고 그 중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써서 함께 치유해 가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 '365일 하루 한 편 행복 글짓기 하기'를 Sunjooschool.com의 '브루클린 이야기2'에서 하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세요."

- 네, 김미경 선생님, 두 시간이 10분처럼 금방 지나가 버렸네요. 즐겁게 사는 페미니스트 '작가 김미경'님의 활약상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온라인저널이프와 이프토피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저널이프와 이프토피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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