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을 (수정본)

내 남편도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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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정(k0429sj)등록 2010.07.28 11:15
강용석을 내게 보내봐!
부제; 내 남편도 강용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강 용석이란 의원이 대학생들과 뒤풀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일간지에 공개되면서 나라전체에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 당사자가 속한 한나라당은 긴급히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그를 당에서 제명시켰고, 다른 정당들은 앞 다투어 '성희롱당'이라고 비웃으며 공격했다. 곧 있을 재보선에서 어떻게든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는 정당들의 행태가 우스꽝스러웠다.

이 러한 강의원의 안타까운 성인식 부족에 대한 비판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MB에 대한 그의 발언을 해석하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강의원은 토론 참가 대학생들 중 한 여학생이 본인 기준에서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만 예쁜 여자에게 관심있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대통령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느냐' 라고 자신의 그런 관심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공개된 그의 발언에서는 남자들은 다 똑같이 '뼛속까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취지가 보였다.

강 용석의원이 법 전공자이고 변호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개념 없는 그의 말들이 폭발적인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이라는 법적인 시비는 많이 비켜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성희롱이냐 아니냐는 소송으로 갔을 때 판사의 결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소송으로 간다고 할 때 성난 마포구민과 국민들의 흥분에 비해 성희롱 판결로 이끌만한 뚜렷한 단서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건 이후 피해 당사자들이 성희롱으로 그를 고소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성희롱 예방에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 실 이 사건은 강용석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또 성희롱은 법으로만 해결될 수도 없다. '당하는 사람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때' 성희롱이라고 간주한다는데 법정 결론을 내기도 복잡하고 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서 많은 여성들이 법적 해결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보기에 성희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아내 혹은 어머니들의 역할이다. 아내들이 남편들의 행동거지를 단속하거나 어머니가 아들이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내 남편도 강용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첫 아이를 임신해 8개월쯤 됐을 때의 일이다. 배불뚝이인 필자와 남편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잘 빠진 여자 모델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광고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돌아보면서 손가락으로 그 모델의 몸매를 그리더니 이어 울룩불룩한 내 몸 라인을 그리면서 비교하는 것이었다.'당신 몸이 코끼리 같다'고 하는 친절한(?) 멘트까지 빠뜨리지 않으며…

만삭의 아내 만삭의 아내를 색시한 모델과 비교를 하던 남편을 생각하면 지금도... ⓒ 강수정


4~5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이 코끼리 같은 임신 8개월의 아내와 운동으로 단련된 (게다가 보기 좋게 연출까지 했을) 란제리 모델의 몸매를 비교하며 죄책감도 없이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인간이 애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임신 중인 성스러운 몸을 광고에 나오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몸과 비교해 비하하다니....

연애할 때는 드러나지 않던 그의 '뼛속까지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본능,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먼저 보는 습관'을 들키고 만 것이다. 그때 결심했다.

'일단 이 남자를 이해하자. 그리고 변화시키자. 그리고 내 아들을 잘 키우자.'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성평등 의식을 가진 남자를 찾기란 모래판에서 바늘을 찾기 보다 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 이해하기

남편은 아들만 넷인 집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상과부가 되어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 슬하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자랐다. 아버지도 없이 자라는 아들들이 딱해서인지, 구시대적인 성역할 관념 탓인지 어머니께서는 아들들에게 부엌일이나 집안청소 등을 일체 손대지 못하게 하셨단다.

돈벌이와 집안일로 본인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아들들에게 남자라는 특권을 온통 누리게 해주시려 한 것 같다. 그런 어머니의 교육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녀 나름대로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자란 아들 넷이 아내들에게 사랑받을 리는 만무하다.

남편과 투쟁하기

임신 8개월의 배불뚝이 아내의 몸을 성스런 어머니의 아름다운 몸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광고 속 성적 대상과 비교해 비하한다는 것은 성희롱을 넘어서 인격모독이었다. 남편이 '그냥 농담한 거야' 라면서 무마하려고 했을 때 그 말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게 농담일 수 있단 말인가?

나 는 그 이후로 매사에 그의 남성중심적 언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정을 요구했다. 하루하루가 늘 투쟁이었다. 그런 세월을 10년이 넘게 헤쳐 왔다. 때로는 이혼을 무기로 위협하기도 했고, 잠자리를 거부하는 섹스 파업도 해 봤다.

다 행히도 남편은 많이 변했다. 둘 다 풀타임 맞벌이임을 감안해 육아에 있어서도 50% 이상 책임지려 하고 가사일도 걸레질까지 못하는 게 없이 만능이 되었다. 내가 3년전 6개월간 해외에 혼자 연수차 나갔을 때 남편은 혼자서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아이와 집안일까지 다 보살폈다.

남 자들도 잘 가르쳐 놓으면 꽤 쓸 만하다. 본인이 집에서 남성중심 사고를 버리고 평등에 가까운 생활을 강요(?)받다 보니 그의 직장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나 보다. 그의 직장 내 많은 여직원들이 입을 모아 그를 칭찬한다. 남자 직원들 중에서 가장 남녀평등적 언행을 한다고. 때론 부부간의 로맨스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매일매일 투쟁해서 얻은 결과라서 그런지 그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가장 뿌듯하고 감사했다.

물론 아직도 남편 속에는 남자라는 자존심과 조금이라도 더 대접받고 싶어 하는 우월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 중인 과정에 있기에 앞으로도 변화의 희망은 있다고 본다.

잘 나가는 남자들?

안 타까운 것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소위 '베스트 스펙'을 가진 남자들의 성평등 의식이 오히려 더 부족하다는 것이다. 좋은 스펙을 가진 이른바 '조건 좋은 신랑감들'이 신부감을 고를 때 서로 같은 눈높이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반려자를 만나기보다는 잘 나가는 남편의 출셋길을 협조할 내조타입의 아내를 맞이하기 때문일까?

순 종적인 여성을 배우자로 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함정 중 하나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의 딸들에겐 어떤 세상이 필요한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뼈아프게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용석 사건과 같은 게 터지는 게 아닐까?

나는 강용석 의원이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는 신혼 초의 내 남편과 성의식 측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리라. 다만 그는 내 남편처럼 피나는 교정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많 은 남성들에게 '입조심 해야겠네!' 라는 교훈을 준 것은 감사하지만, 그의 화려한 스펙과 참여연대 활동 경력들을 보면, 그의 능력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쓰이지 못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대한민국에 아직도 널려 있는 제2, 제3의 강용석들에게 우리는 계속 몰매로만 대응할 것인가?

강용석 의원을 내게 보내 봐! 확 고쳐서 재활용할 수 있게 해 줄테니.

글을 마치며

우 리나라에 잘 고쳐서 유용하게 써 먹을 정도의 남자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잘 고쳐나가는 것은 현명한 여성들의 몫이다. 성평등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서로의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한 단계 한 단계 조율하며 고쳐갈 때 비로소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용석 의원을 나한테 보내라. 확 고쳐서 '성평등당' 만들면 법률자문가로 부려 줄 테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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