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의 샴페인 누가 터뜨릴 것인가?

총체적 부실의 한국외교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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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욱(kkkworm)등록 2010.08.15 11:12
한국외교의 샴페인 누가 터뜨릴 것인가?

빈회의(1814-1815)는 세계외교사에서 국가들 간의 최초의 다자간 회의로 유명하다.
유럽을 휩쓸었던 나폴레옹전쟁을 마감하면서 유럽의 안정화와 전후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회의를 말한다. 당시 오스트리아 수상 메테르니히의 주창에 의해 소집된 빈회의(Congress of Wien)의 주요목적은 첫째 유럽의 절대왕정의 유지, 둘째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왕조와 국경선을 회복시킬 것, 셋째 프랑스 혁명사상인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다국적 탄압, 넷째 유럽의 현상유지였다.

러시아 원정에서 60만 나폴레옹 군을 전멸로 몰아간 러시아제국, 트라팔가르 해전으로 유명한 해양제국 영국, 독일의 전신 프로이센, 중부 유럽의 패자 오스트리아 승전 4개국과 패전국 프랑스를 포함한 5국들이 빈회의에서 만든 체제가 유럽최초의 국제정치체제인 빈체제다. 빈체제는 세력균형의 원리와 전제왕정과 같은 보수체제의 수호를 위한 체제였으나 다른 일면으로는 최초의 강대국들 간의 안보를 기초한 다자간 회의로 유명하다. 즉 국제외교가 처음으로 시도된 사건이다.
국가대 국가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국가와 국가들 간의 다자간 협상과 회의'가 '국제외교'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빈회의라는 국제행사를 배경으로 개인이 외교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경우가 있다. 바로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음료다. 20세기 특히 1990년대 세계화시대 이후 샴페인은 우리에게 대중화되었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수도사 '동 폐리뇽'이 1688년 개발한 새콤하고 신선한 맛의 거품와인이다. 18세기까지 프랑스 지방와인에 불과했던 샴페인은 '미망인 클리코'라고 불린 한 여성에 의해 빈회의에 알려졌다. 뛰어난 사교술을 바탕으로 클리코 부인은 샴페인을 적극 홍보하였고 빈회의 내내 주 음료로 채택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패권국인 러시아제국의 황실 독점 납품권까지 따내어 샴페인을 세계 최고의 술로 성장시켰다.
지금도 정상들의 만찬에서부터 일반 축제에 이르기까지 샴페인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위의 일화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일개 개인도 국제회의에 참여하여 충분히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교력을 발휘하기 위해 클리코 부인이 발휘한 외교력의 몇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첫째 현실을 직시했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자기를 냉정히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당시 샴페인은 프랑스의 한 지방인 상파뉴 지방의 시골 와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샴페인은 당시 와인들과 다른 새로운 새콤하고 신선한 맛의 와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샴페인은 코르크마개와 잘 어울려서 샴페인을 딸 때 터지는 소리와 함께 축제의 기분을 더해준다. 이러한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클라코 부인은 빈회의에 참석했다.

둘째 목적성을 가졌다. 
클리코 부인은 샴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빈회의에 참여했다. 더 이상 시골와인이 아니라 세계적인 품질과 이벤트성을 가진 거품와인, 샴페인을 홍보하여 세계에 알릴 절호의 찬스를 충분히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홍보를 위해 프랑스 정계인사들뿐만 아니라, 당시 최대의 와인 수입국인 영국과 패권국 러시아의 황실과 정계인사들의 인맥을 구축했다.

셋째 적절한 선전이다.
현 정부 들어 '국격을 높인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많이 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국가의 이미지를 좋게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선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광고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신문이나 잡지, 사진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프랑스 시골와인인 샴페인은 당시 어떠한 이미지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클라코 부인은 당시 유럽에 유행하고 있던 프랑스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당시 프랑스문화는 고급스럽고 최신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어, 시골와인인 샴페인을 프랑스문화와 결부시켜 샴페인의 이미지를 형성시켰던 것이다.  

넷째 품질로 승부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선전해도 품질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 물건은 한때 부는 바람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냉정하듯 국제외교무대도 냉정하다. 만약 샴페인이 프랑스나 이태리의 그렇고 그런 와인이었다면, 독특한 점이 전혀 없는, 오로지 클라코 부인의 개인적인 사교술만으로 유명해졌다면 과연 오늘날까지 그 유명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다섯째 지속적으로 관계를 다져라! (관리해라!)
빈회의에서 유명세를 탄 샴페인은 그 이후 80년간 소비가 120배 증가했다. 특히 바다건너 영국과 미국으로 수출되었는데 샴페인이 가스로 인해 병이 터져버리는 문제로 인해 큰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샴페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코르크마개를 철사로 묶는 기술을 개발하여 먼 지역의 소비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
이러한 지속적인 소비자에 대한 관리는 오늘날 샴페인의 명성을 낳았던 것이다.

위의 클라코 부인의 일화는 우리의 외교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G20 개최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천안함 사건의 매끄럽지 못한 처리과정은 북한과의 대립을 낳았고 이것으로 인하여 중국과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또한 리비아 외교관 추방사건과 이란의 무역보복은 기업에 큰 부담을 안겼다. 미국과는 FTA의 쇠고기와 자동차 부분이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교가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외교 부재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바로 클라코 부인이 접근한 방식이다.
먼저 큰 틀의 외교, 즉 거시외교가 필요하다.
거시외교란 외교의 설계사에 해당된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각국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이고 그에 따른 영향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외교다. 현재 한국의 거시외교는 누가 맡고 있는가? 무엇이 한국의 거시외교인가? (지난 정부의 북방정책, 햇볓정책과 같은 것이 거시외교정책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둘째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북한의 고립인가? 아니면 한반도 평화유지인가?
안타깝게도 한국정부의 목적은 북한의 고립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천안함 외교로 언급되는 북한의 고립외교는 수면아래 잠들어 있던 한반도 냉전구조를 다시 깨우는 역할을 했다. 중국의 한미합동훈련에 대한 강력한 반발로 인해 중국과의 안보마찰이 벌어지고 있으며, 러시아도 동참할 기세다. 바야흐로 신냉전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셋째 적절한 선전을 하고 있는가?
2010년 한국외교는 오로지 천안함에만 매달려있다. 현대 외교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도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의 시대가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시대라는 것이다. 천안함뿐만 아니라 주요 이슈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정부는 천안함뿐이다. 그나마 선전은 제대로 되고 있는가?
천안함 문제는 이미 국지적인 것으로 '신 냉전'을 다시 한반도 주변국들에게 각인시켰다. 일부 신문에 보도된 '러시아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전이 안통하면 빠른 천안함 출구전략을 행해야 한다.

또한 이란과 리비아 문제에 있어 적절한 선전을 하고 있는가?
이란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이 리비아에서는 한국 상품의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 왜 한국은 자국신문에만 선전하고 이들 국가의 신문이나 방송에는 한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려고 하지 않는가? 또한 주요 이슈에 대해 여론을 환기시키지 않는가?

넷째 한국외교의 품질은 있는가?
한국 외교관들의 자질을 먼저 문제시 하고 싶다. 한국은 60년 전,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엘리트 충원방식인 외무고시,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통해 외교관들을 충원해왔다. 언제까지 현지어를 모르고 현지사정을 모르는, 전혀 전문성이 없는 '3년 순환 근무제 외교관'들을 파견하며 정치인 대사들을 파견할 것인가?
가까운 일본을 보라! 최상의 품질의 외교관들이 혈연, 지연, 학연을 맺어 현지화에 성공하여 일본을 알리고 있다. 독도와 동해를 해외에서는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부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전문적인 일본외교와 아마추어 한국외교라 하겠다.

다섯째 여러 국가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1980년대까지는 미국이 한국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시대는 다극화시대로 90년대 이후 새롭게 수교한 러시아와 중국, 제3세계 국가들과 북한이 주요외교 관계국들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동지역의 이란과 리비아는 오랫동안 정치중립과 경제협력이라는 특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특수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에서 큰 이익을 얻어왔다. 이 정부 들어 한국은 오로지 미국뿐이다. 우리외교가 이러한 함정에 빠진 것은 바로 천안함사태다. 이러한 천안함 사태가 낳은 것이 한국의 고립과 분단의 고착화라고 표현되는 신냉전구도다.
신냉전구도는 한국의 정치, 경제적 입지를 축소시켜 안보로의 종속을 이끌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한국정부는 빠른 천안함 사태의 출구전략과 함께 신냉전구도의 종식과 '다자간 우호관계'로의 한국외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빈회의의 5대강국들과 이들을 목표로 자신만의 외교를 펼쳤던 클라코 부인은 일화를 보면서 작금의 한국외교의 문제점을 비교분석해 보았다.
클라코 부인의 빈회의에 대한 접근은 설계단계인 거시외교,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미시외교, 선전을 중시하는 선전외교, 품질을 우선시하는 실용외교,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선린우호외교로 설명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외교는 거시외교, 미시외교뿐만 아니라 실용외교도 선린우호외교도 없는 이정표를 상실한 난파선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빈회의를 대하는 클라코 부인의 지혜가 한국외교에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누가 한국외교의 샴페인을 터뜨릴 것인가?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한토마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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