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전쟁

위대한 양아치 역사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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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bluestag)등록 2010.09.02 14:50
일리아드를 읽다보면 삼국지와 공통점이 참 많다고 생각된다. 둘 다 후대의 천재 작가에 의해 빛을 보았다는 점도 같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후대의 역사 특히 전쟁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삼국지의 시대가 그 짦은 시기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대접을 받는 것은 중국 3대 대전 중 2개인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이 이 시기에 있었고 진법의 사용, 여러 공성법의 발전 등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야드의 트로이 전쟁 역시 서양의 전쟁사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것은 두 사람의 위대한 양아치의 공헌이 지대하다. 두 양아치 중 하나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이며 나머지 하나는 앞서 초인으로 소개한 시지프스의 자손 오딧세우스이다. 파리스야 원래 그렇고 그런 녀식인지라 결정적인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지만 이타카 섬의 왕 우리의 오딧세우스의 양아치 짓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작은 양아치 파리스 그의 암습 덕분에 전사의 시대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 영화 트로이


1.동료를 유기하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 다시 주워온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물려받은 명사수 필록테테스 그는 불행하게도 잠시 정박했던 렘노스 섬에서 독사에 물리고 만다. 모두들 동료의 불행에 안타까워 하면서 상처를 낫게 하느라 고생하고 있을때 오딧세우스가 나선다.

"회복될지 여부가 불분명한 전사 하나 때문에 언제까지 여기 머물 수는 없다. 헤라클레스의 활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새라도 사냥하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필록테테스와 함께 남고 싶은 이는 남아라, 단 나와 모든 그리스 군은 곧 출항할 것임을 잊지 말라."

그로부터 9년의 시간이 지난 후 '헤라클레스의 활이 없다면 그리스 군의 승리는 없다.'라는 신탁이 나오자 오딧세우스는 제일 먼저 렘노스 섬으로 달려가 참전을 거절하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필록테테스를 강제로 납치해 온다.

또 이런 일도 있다. 전장에서 그리스군의 노장 네스토르의 말이 파리스의 활을 맞고 쓰러져서 헥토르가 네스토르를 공격하려 하자 노장은 큰 소리로 근처에 있던 오딧세우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막상 구하러 온 것은 더 멀리 있던 디오메데스 였으니... 못 들은 척 하고 있던 오딧세우스.

영웅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구기게 되면 자살을 해서 명예를 보존하거나 그걸 시행하지 못할 경우 다시는 전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탁월한 웅변가인 오딧세우스는 그 엄청난 달변으로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 시키는데는 제우스 신 조차도 능가한다. 한 사람의 양아치 덕분에 이제 전사와 영웅들의 시대는 이미 황혼에 접어 들었다. 앞으로는 용맹 보다는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는 말 솜씨가 더 훌륭한 영웅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통할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야 말로 전사들이 전사로써 싸울 수 있는 마지막 전장이었던 셈이다.

2. 장기에 졌다고 동료를 간첩으로 몰다니?
그리스 군에는 오딧세우스와 지력으로 1,2위를 다투는 팔라메데스가 있었다.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미친 흉내를 내던 오딧세우스의 계략을 꽤뚫어보고 참전 시킨 이도 팔라메데스이다.

누구의 머리가 더 뛰어난지 장기로 결정하기로 한 두사람. 이 장기 두기에서 이긴 사람은 팔라메데스 였다. 이에 격분한 우리의 양아치 오딧세우스군. 황금이 가득든 항아리 하나와 편지 몇장을 팔라메데스의 막사에 숨겨 놓고는 그를 스파이 혐의로 군재판에 회부한다.

둘의 웅변 능력은 비슷했지만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던 오딧세우스에 비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인 팔라메데스는 당황해서 그 뛰어난 웅변으로 스스로를 변호하는데 실패 했고 결국 그는 처형당했다.

명예로운 전장에서는 스파이 행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동료를 무고 해서 죽게 만든 다는 것은 정상적인 전사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그리스 군 전체가 한명의 양아치에 의해 놀아 난 꼴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적은 물론 아군끼리도 완전한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기묘한 형국이 생겨났다.

3.신화 세계 최초의 암습

이번에는 트로이 측 양아치 파리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의 전쟁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전쟁이라기 보다는 목숨걸고 즐기는 하나의 스포츠로 보일 정도로 적과 아군은 사이가 좋았다. 비록 전쟁에 패하면 남자는 죽고 여자와 어린아이는 노예로 팔려가긴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 전 까지는 적군은 전장에서나 적이지 전투가 끝난 후에는 전사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동업자라는 의식이 강했다.

전투가 없는 날은 함께 모여서 레슬링, 창던지기, 활쏘기, 달리기 등의 게임을 하면서 술을 즐기기도 했고 전투 종료를 알림과 동시에 최선을 다해 싸운 상대와 예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죽은 이의 시신과 유품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 받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프리아모스를 대단히 신선한 모습으로 그렸지만 전사의 시대에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고 훼손한 아킬레우스의 행동이 더욱 특이한 것이었다. 실제로 프리아모스가 찾아왔을때 아킬레우스는 정중한 사죄와 함께 좋은 음식을 내어 대접하고는 기꺼이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었다. 프리아모스를 생포한다거나 암살해서 전쟁을 쉽게 끝내거나 하는 영특한 잔꾀는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헥토르의 죽음 이후 프리아모스의 딸 폴릭세네에게 아킬레우스가 청혼을 하고 거기에 대한 논의를 위해 갑옷을 벗고 알몸으로 신전으로 향하는 순간 전사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활 시위가 당겨진다. 모두들 알다 시피 어렸을 적 스튁스 강물에 목욕을한 아킬레우스는 발 뒷꿈치를 제외하고는 상처를 입지 않기에 그 뒷꿈치에는 늘 강철을 덧대고 다녔는데 신성한 신전의 입장을 위해 그 보호대를 때고 있던 것을 파리스가 노린 것이다.

양쪽 군대를 통틀어 최고의 활잡이인 파리스가 날린 독화살은 어김없이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명중 했으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위대한 전사는 절명하고 만다. 영웅의 시대 최초의 암습이자 더 이상 영웅과 전사의 시대가 지속될 수 없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성난 그리스 군이 파리스를 공격하려 하자 프리아모스 왕은 당황한 와중에도 침착하게 왕자의 보호를 명한다. 트로이의 영웅들은 메넬라우스와의 비겁한 결투 이후 전사로써 전혀 인정 받지 못하던 양아치가 또 다시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른데 분개했지만 우선은 왕의 명령에 따라 트로이 성까지 파리스를 보호한다.

이것으로 양측의 영웅이 한데 모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이제 전사들은 서로를 '서로의 명예를 드높여줄 위대한 동업자'가 아니라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우리의 양아치 파리스군은 그 비겁한 성격 답게 트로이의 높은 성위에서 그리스의 전사들을 활로 사냥하는 정상적인 전사라면 꿈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인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시대의 종언 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결국 파리스는 어느 날 새벽 다시 한번 재미삼아 그리스군을 사냥하기 위해 성벽에 올랐다가 헤라클레스의 활을 사용하는 필록테테스에 의해 죽고 만다.

전사와 영웅의 시대를 완전히 끝장낸 목마 작전 속은 쪽이 잘못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전쟁이라도 기본적인 룰은 지켜야 하는거 아닐까? ⓒ 영화 트로이


4.위대한 양아치 영웅의 시대를 완벽하게 끝장내다.

그리스 군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사망으로 군전체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마당인데 大아이아스 마저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제는 언제 야습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성벽이 없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열세는 절대적이다.  보급이 불가능한 아카이아 연합군이었기에 필요한 필요한 물자는 주변의 작은 도시를 약탈해서 충족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약탈할 곳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물자가 풍족한 트로이 성을 배경으로 싸우는 적이 유리해 질 것이다. 어떻게든 속전 속결로 전쟁을 끝내야만 하는데....

지금 그리스 측의 이름있는 전사라고는 아가멤논,메넬라오스, 오딧세우스, 小아이아스, 디오메데스 뿐이다. 이 멤버로 트로이 성을 단기간에 함락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적의 공세에 맞서 성벽 역할을 수행해 주던 아이아스 마저 없는 지금 한번의 전투에서 패하는 것 만으로도 적의 끝없는 공세에 밀려 트로이 앞 바다에 수장당하는 꼴을 겪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싸움을 걸 수도 없다.

싸울 수도 기다릴 수도 없는 암담한 상황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막사에 늦은 시간 찾아온 것은 다름아닌 양아치 오딧세우스. 그리고는 총사령관에게 그 유명한 목마 작전을 제안한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가멤논. 전쟁이 끝나면 서로의 명예를 드높여준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 자연계의 동물들 조차도 패배를 인정한 적은 공격하지 않는다. 패배를 인정하는 척 하고는 등을 보인 적을 물어 뜯는 것은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짓이다. 그리고 한번 이런 일을 벌이고 난다면 앞으로의 전쟁은 항복한 적이라 하더라도 철저하게 짓밟아야만 하는 아비규환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비겁한 짓을 천하의 아가멤논이?

아가멤논의 심중을 누구 보다도 더 잘 아는 오딧세우스는 딱 한마디의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막사로 향한다.

"천하의 아가멤논이 아카이아의 영웅들을 모두 소집해서는 딸까지 죽여가면서 시작한 전투에서 아무 것도 얻는 것 없이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길.
이제 배를 돌려 그리스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 오딧세우스야 손해 볼 것 없지. 트로이의 보물 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 하지만 아가멤논의 땅에 떨어진 위신은 어찌할 작정이신지? 그리스 전체에 쩌렁 쩌렁 울리던 아트레우스가의 명성도 이제 이것으로 끝이겠구만. 그리고 아가멤논이라는 이름도 젊은 시절의 무용담 보다는 모든 그리스 인의 비웃음거리로 기억될테고 말이야."

어느 쪽을 택한다 하더라도 역사의 악인으로 기록될 운명이라면 아가멤논은 악랄한 승리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아가멤논의 명령하에 목마가 만들어졌고 아카이아 연합군은 목마만 남겨 놓고는 새벽이 오기 전에 출항을 한다.

트로이의 지혜로운 왕 프리아모스는 해변에 덩그러니 놓여진 목마를 보고는 당연히 패배한 적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어떤 협상이나 사신도 없이 그냥 놓여진 목마가 좀 꺼리찍 하긴 했지만 아가멤논의 자존심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이기에 아카이아의 총사령관의 자존심이 심히 상했구만 하는 식으로만 받아들였다. 전후에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프리아모스는 기꺼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게 된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영웅의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최후의 아름다운 두 전사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전설이 지나 신화가 되고 말았다. 한 사람의 양아치의 계략에 의해 이제 누구도 전사들 간의 신의를 노래하지도 무용을 예찬하지도 않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위대한 전사의 순수한 무용 보다는 책사의 교활한 지혜를 자신의 공적을 말로 치장하는 정치꾼의 웅변을 더욱 더 중요한 영웅의 조건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양아치라는 상스러운 말을 사용한 이유는 이들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들어맞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와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 하지만 그런 양아치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든 좋지 않은 방향으로든 늘 변화해 가는 것이다.

물론 오딧세우스의 양아치 짓은 총사령관 아가멤논 이하 아카이아 연합군의 영웅들의 허가 내지는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제 시대를 만나지 못한 우연은 헤프닝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양아치 오딧세우스의 출현은 이미 시대적 요구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트로이 전쟁은 영웅의 시대를 지키려는 아킬레우스, 헥토르, 아이아스의 전사들과 새로이 정치가와 익살꾼의 시대를 열려는 오딧세우스와 파리스 그리고 그 결정권을 지닌 아가멤논의 갈등과 대결로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그 대결은 진보에 해당하는 오딧세우스와 파리스 쪽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와함께 신화의 시대 역시 함께 종언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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