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와 닌텐도 DS

닌텐도 DS 같은 게임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검토 완료

이승훈(bluestag)등록 2010.09.03 13:44

붕붕이 리모컨 형태가 아니라 핸들 형태가 특징이다. ⓒ 이승훈


아들 녀석의 3번째 생일을 맞아서 동생이 자동차를 보내왔다. 그래도 지 조카라고 챙기는 모습이 고맙긴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물건이 부담스러운데다가 장난감이라고는 자동차 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또 자동차를 사주는 것 역시 마음에 안 들어서 조금 면박을 주었다.

"니 조카가 자동차가 몇 개인 줄 알아? 아마 이틀만 가지고 놀면 또 한구석에 밀려나고 새 것 사달라고 할걸?"

"여태까지의 장난감하고는 좀 다를거야. 꽤 오래 가지고 놀 것 같아서 장가들기 전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에 좀 좋은 것 산 거니까 부담 갖지마."

자동차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냐는 생각이었지만 1주일 가까이 지난 지금 동생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꼬마자동차 붕붕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붕붕이라고 이름을 붙이더니 아침에 눈만 뜨면 붕붕이 부터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잠꾸러기 녀석이 새벽녘부터 일어나서 엄마를 깨워데고 어린이 집에 갈 때 조차도 붕붕이를 가져가려는 것을 말리느라 곤욕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집에 많고 많은 것이 자동차이고 또 무선 조정하는 자동차도 한 두 개가 아닐터인데 유독 붕붕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산 무선 조정 자동차와 붕붕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붕붕이는 요즘 유행하는 닌텐도 위와 같이 자동차 핸들을 이용해서 차를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십자 버튼이 들어있어서 앞으로 뒤로 옆으로를 눌러서 가는 방식이 아니라 핸들 안에 구슬이 들어 있어서 핸들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붕붕이의 앞바퀴가 회전하는 방식이다. 동생에게 물어 본 붕붕이의 가격은 9만원 남짓. 다른 국산 무선 조종 자동차가 7만원 전후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큰 차이도 아니고 하물며 아이가 저렇게나 좋아한다면 작은 장난감 여러개를 사주는 것 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인문학이 부재하고, 여가 누릴 수 없는 한국에서 아이패드 나올 수 있을까

문득 왜 우리나라에서는 닌텐도 DS를 못 만드냐고 한탄하던 이명박 대통령과 애플의 아이패드에 고전하는 삼성이 떠올랐다. 삼성의 CEO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최첨단의 기술을 갖춘 우리가  IT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다른 기업에 밀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CEO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닌텐도가 없고 삼성은 애플을 이길 수 없는 것 아닐까. 구슬을 이용해서 핸들의 꺽임을 인지하는 기술은 당연히 한국 기업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장난감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에게 익숙한 리모컨 방식으로 장난감을 만들었고 그런 자동차는 결국 또 3일 후 구석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백화점에 나가면 외국산 명품 투성이다. 원재료 좋고 품질 좋은 명품들. 하지만 그것이 명품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국산 제품 역시 원재료와 품질만 놓고 본다면 명품과 큰 차이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국산 명품이 드문 이유는 인간을 생각하는 학문, 즉 인문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열심히 만들어서 그리고 토목 공사를 열심히 해서 부를 창출하는 방식을 최우선시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인문학이 꽃을 피우기 어렵다. 한쪽에서 피땀 흘려 일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편하게 놀면서도 넥타이 디자인 한 두 개 만으로도 몇배의 이윤을 남기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으로의 세상은 엔터테인먼트가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인간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하는 마음 즉 인간 자체에 대해 연구하는 인문학이 핵심인 시대가 될 것이다.

닌텐도 DS와 같은 게임기를 만들려면 당연히 게임을 많이 해봐야 하고 또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7시에 출근하고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우리네 생활 방식에서 여가를 즐기고 게임을 즐기는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가가 생겨도 놀 여유가 없어 쉬기 바쁜 상황에서 누가 즐거운 일을 찾을 것이고 스스로가 어떤 것을 하면서 즐거울지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알 수 있고 어떻게 그 즐거움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것인가.

사원으로 하여금 놀게 하는 것이 사실은 돈을 벌게 하는 일이라는 것, 국민이 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 보다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것까지 그들이 알아 주기에는 아직 너무나 많은 변화가 필요할 듯 하다.

오늘도 아침부터 붕붕이를 가지고 어린이 집에 가겠다는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붕붕이를 보니 문득 늦은 나이까지 역사학을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에 학업에 정신이 없어 혼기를 놓쳐가는 친구 녀석이 떠올라 쓸데없는 넋두리가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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