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들, 광장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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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식(haswamp)등록 2010.11.27 20:47

한국정신장애연대 (KAMI) 한국정신장애연대 (KAMI) 소풍 ⓒ 방제식


미친놈들, 광장에 서다.
 
"아.. 그러니까.. 미친놈들이 광장에 나온거지.... "

서로인사 휴지가 풀리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 서로의 이야기에 감동과 동감하며 3시간이 흘렀음에도 한 명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 방제식


자신의 병력을 극복하고 독서치료사로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는 A씨는 말을 이었다.

A씨는 전라도에 있는 국립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하고 10여년동안 교직 생활을 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다.

책읽기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A씨는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 중 하나로 "일부 교회 목사님들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마귀가 들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교회에서 정신장애 초기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긴다"는 것을 말했다. 정신장애는 초기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고 숨기다가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신장애는 신체장애와는 다르게 본인이 숨기려고 하면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만성이 되거나 중증이 되어서 타인이 보기에도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이미 병이 많이 진척된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런 현상은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신체장애와는 다르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자기 가족의 병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B씨는 딸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1994년 부산에서 처음으로 정신장애인 가족협회를 만들 때 그 자리에 함께 했다는 B씨는 그 때 그 자리에 왜 갔는지를 설명했다. 당시 자신이 대장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생명 선고를 받았는데,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딸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가고 난 후에 딸의 삶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자리에서 누군가 먼저 나서야 하는데 자신이 가장 급박한 사정이었기에 대표를 맡으면서 당시 일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정신장애인 가족모임이 만들어지게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B씨는 16년이 지난 지금, 건강하게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역시 정신장애을 앓고 있는 딸을 둔 C씨는 현재 Family Link 사례강사로 일하고 있다. C씨의 딸은 정신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는 중복장애인인데, C씨의 명함에는 "장애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 딸"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놀라운 것은 1급 청각장애인인 C씨의 딸은 웬만한 의사소통은 물론 노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C씨의 표현으로는 "어려서부터 내놓고 키워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D씨는 자기 고백으로부터 시작했다. 자신은 사회복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대학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자신이 하는 일은 힘으로 환자들을 제압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팔을 꺽고, 사지를 묶고 하는 일을 하면서 '내 힘이 이만큼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신장애인들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그 때의 일을 참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 갔을 때 NAMI(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를 만나서 정신장애인들의 자조모임과 가족들의 모임, 활동을 보면서 많은 각성을 했다고 한다.

이 날 행사에 늦게 참여한 박종운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 때 많은 역할을 한 변호사이다. 그런데 자신은 정신장애인들에게 원죄를 가지고 있다며 처음 말을 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드는데 당시로는 정신장애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동법에 정신장애인들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의 원죄의식이 지금 KAMI에 참여하게된 동기라고 한다. 박변호사는 "정신장애인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는 것이 장애인인권운동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며 아직도 수많은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 정신장애인 정책에 대해 한탄했다.

한국정신장애연대 (KAMI : Korea Alliance on Mental Illness) 는 미국의 NAMI 활동에 감격한 한 변호사의 제안과 열정으로 시작되었다. 검찰공무원으로 일하던 당시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심각해지고, 그로 인해 자의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고백한 권오용변호사는 현재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자의입원한 당시에 스스로 상태가 좋아졌고, 이후 활동을 위해서 퇴원을 해야겠다고 했음에도 자의퇴원이 안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퇴원 후 정신장애인들의 다니는 사회복귀시설 현장에서 일하는 여기동씨(현재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부총장)를 만나면서 급격하게 속도가 붙었다.

현재 한국정신장애연대(KAMI)는 비영리단체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선희씨는 가족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데, 그로인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따로 월급이 없는 상태임에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가지 누구보다 열심히 단체 일을 하고 있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의 보살핌과 희생이 없이도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한국정신장애연대(KAMI)가 할 일이 많다. 아니 이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첫 발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대표를 맡은 김정진 교수는 "한국정신장애연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아름답다. 여러분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정신장애인들의 미래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한다"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감당하겠다며 어려운 책무를 맡아갈 것을 대신 표현했다.

2010년 5월 29일 출범한 한국정신장애연대(KAMI)는 2010년 10월 8일 - 9일, 이틀동안
충남 공주 청벽산 아래에서 가을소풍을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5월29일 서울 종로에서 출범식을 진행하고, 청계천까지 걷기 행사를 하는 이른바 KAMI Walks 행사를 갖고, 청계천에서 광장을 열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열어놓는 이 광장에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고, 가족들의 이야기, 복지시설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마구 나오며 그동안 못해온 정신장애인의 이야기로 청계천을 가득 메웠다. 그 광장을 생각하며 소풍에 오는 길에 시적 표현을 많이 하시는 A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간단하게 말했다. "생각해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 하겠어. 정신장애인 = 미친놈들이 광장에 나온거지"

이번 소풍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 교수, 변호사, 병원직원, 사회복지사, 간호사, 보건소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장애인들을 이웃으로 바라볼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을 다짐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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