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죽음, 목숨 건 용기를 푸대접하더니

황장엽씨의 죽음을 계기로 남북한관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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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jnk057)등록 2010.10.13 15:29
고 황장엽씨! 그는, 그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정권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왔더니 이제는 결국 쓸쓸히 죽어갔다. 그의 영전에는 변변한 조문객 하나 없었다. 나름대로는 북한 정권의 실체, 그 약점과 전략을 폭로하여 그것이 우리 민족의 생존과 통일에 기여하기를 바랐던 숭고한 뜻이 있었다. 다른 많은 망명자들처럼 북한에서의 비리나 개인적 사정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최고위층에서의 안일과 특권을 버린, 누구나 낼 수 없는 용기와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죽는 날까지 그는 참 쓸쓸했다. 신변 보호를 이유로 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고, 그저 고급 정보원(情報源)으로서 활용될 뿐이었다. 그가 북한을 믿을 수 없는 정권으로 규정하고 타도를 주장함으로써 설사 진보 정권 당시의 화해 정책에 방해가 되었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일부러 그의 입을 막으려고 한 것도 참 유치한 발상이었다.

또 따뜻이 대우하여 일자리도 마련해주는 등, 우리 국민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게 하지도 못 했다. 그의 호칭은, 우리 품에 들어온 지 13년이나 지나서 죽는 날까지 그저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일 뿐이었다. 북한을 탈출하여 지금 북한학 교수라든가, 북한 문제 전문가로 방송에도 버젓이 나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왜 황장엽씨는 마치 계륵(鷄肋) 같이 살다가 죽어가야 했을까?

만일, 지금이 냉전시대라면 그는 국가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마치 이웅평 공군 대위처럼, 아니 당연히 그 이상으로 대우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이 냉전시대가 아니라 화해의 시대라 해도, 그가 가진 북한 사회의 지식과 정보는 우리로서는 수백 수천의 국가 예산을 들여서도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철학이 우리의 정책과 상반된다면 그 부분은 보류하고 그의 전문 지식만을 활용해도 그는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북한에 대한 실상을 전하는 전도사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민족과 통일에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지난 민주당 정권 10년은, 정부의 정책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 이명박 정권에서는 지나친 미국과의 밀착 때문에 그는 당초의 꿈과는 전혀 달리 결국 너무나 쓸쓸히 죽어갔다. 만일 북한의 고위급들 중에 체제에 불만을 품고 통일에의 기여를 하고 싶은 인사가 또 있다면 다시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로 올까? 황장엽씨의 생활과 최후를 보면서 그가 우리나라로 망명할 생각을 다시 할까? 

이미 죽어간 사람이다. 세상에 더 이상 치졸할 수 없는 지도자들이 그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것인가를 두고 눈치를 보고 혹은 반대론을 편 자체가 너무 한심하다. 여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조문도 망설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게 과연 이 나라의 지도자들인가 하며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 3대 세습과 당 창건 기념식에서 붉은 빛으로 열광하는 북한의 행태에 몸서리가 쳐지는 사람이다. 그들은 오늘날 정말 섬찟한 조폭 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 조폭 같은 정권과 맞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만일 전쟁을 해서 저들이 두 손을 들고 나온다면 백번이라도 전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죽기살기식 행태로 보면 몇 백 킬로 내에 다 들어있는 이 나라에 일어날 전쟁의 참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붕괴와 무력 시위를 국시로 하고 있다. 6자회담으로 평화적 해결을 도모한다면서 결국은 그들의 백기 항복을 원한다. 아니면 그들을 말려서 내란이든 구데타든 북한 차제가 붕괴하기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그런 미국과 완전히 동조하여 오늘날의 살벌한 남북한 관계를 초래하고 있다.

지금의 남북한 관계를 보면, 벼랑을 향해 치닫는 코뿔소들 같다. 양측이 스스로 해결할 길이 전혀 없지 않을 터인데도,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죽기로 작정한 듯이 내달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분단 이래 처음으로 그것도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양측 정상들이 만났다. 그것은 우리 한반도와 우리 민족 앞에 가로놓인 무겁디 무거운 현실의 돌파구였음이 분명하고 외세의 개입과 내부의 분열 때문에 초래했던 분단의 아픔을 씻으려는 아름다운 노력이었다.

눈앞에 쌓여있는 엄청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물꼬를 터 놓았기에 개성공단이 이루어졌고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여행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북이 남과의 화해에 나서면서도 핵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 핵이 우려된다고 북한에 대한 강경기조로 돌아서, 끝내 금강산 길 막아놓고 개성 공단도 인질로 잡히게 했다. 이산 가족 상봉도 북한이 먼제 제의할 만큼 모든 주도권을 다 빼앗겼다. 도무지 미국의 힘을 빌어 전쟁 준비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비전도 정책도 없다.

그런데 핵 문제는 냉정히 생각하면 북한의 입장에서 생존 전략이었다. 그것을 하루 아침에 껍데기 벗겨 버리려는 것은, 전쟁으로 파괴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북한이라면, 미국의 위협 아래 불안해 하면서 돈 몇 천 억 준다는 약속에 쉽게 파기하겠는가?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미국의 평화 보장을 요구해 왔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의 고사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리 6자 회담을 하고, 핵 포기 대가를 운운해도 북한은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의 자위를 위한 핵문제를 하루 아침에 해결하려는 조급성을 버려야 한다. 꾸준히 접촉하고 그 폭이 확대되어, 한반도에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먼저다. 북한도 더 이상 굳이 핵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 내부에서 핵 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기 보다는 우리와의 경제 협력과 무역, 사회 교류가 훨씬 더 좋다는 주장이 득세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이런 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방과 발전이 없고는 통일도 없고 평화도 없다. 그 이외의 어떤 방법도 공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만일 미국의 의도대로, 또 이명박 정권의 의도대로 북한이 자멸, 붕괴한다 해도, 그 코밑에 있는 우리는 엄청난 혼란을 수습할 수 없고 또 뼈아픈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 흐름을 되돌려 놓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갈 것이다. 다만, 이미 많은 희생을 치르게 했고, 그 시간을 공연히 뒤로 늦춰놓은 실책은 훗날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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