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대한민국은 크고작은 국제행사에서부터 지역축제와 단풍놀이, 그리고 각양각색의 음악회까지 수없이 많은 행사들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축제의 계절이다.
국제영화제부터 시작해서 각 지자체들의 축제 그리고 단풍놀이 시즌과 맞물린 크고작은 음악회까지 연예인들은 아이돌스타든 추억의 스타들이든 하루에만 최소3~4곳의 빼곡한 행사일정을 소화하느라 파김치가되기도하고, 기획사들은 연예인섭외에 골머리를 싸메는 어쩌면 전쟁과도 같은 축제의 기간이 펼쳐지는 10월의 둘째 토요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이하 토고미마을)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작지만 소중한 의미가 있는 음악회가 열린다고 하여 찾아가봤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제목도 흥미로운 음악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띈다.
▲ 토고미 논두렁음악회 거리 현수막 화천군에서부터 마을입구까지 걸려있는 현수막에 쓰여있는 음악회의 제목이 친근감을 준다. ⓒ 김영우
마을주민이라 해봐야 2~300 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음악회라봐야 밤업소가수 한두명 와서 마을어르신들과 한두시간 즐기는 음악회이려니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현수막 맨끝에 쓰여있는 출연진의 면면은 나를 놀라게 했다.
70년대 한국 포크음악의 한 획을 그엇던 뚜아에무아의 이필원씨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역이면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유명한 이동원씨와 함께 "향수"의 듀엣으로 대중적인지도를 확보하고있는 테너 김현동씨, 지난 9월 열린음악회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던 제천바이오엑스포 열린음악회에서 열창을 했던 소프라노 강명숙씨까지... 이쯤되니 이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논두렁음악회의 규모(예산, 무대장치등)가 궁금해진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마을주민들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데 정작 음악회를 불과 몇시간 밖에 남지 않은 행사장에 무대가 없다. 의아스럽게 둘러보던 내 눈에 들어온것은 옛날 모습그대로를 유지하고있는 학교의 조회대에 음향엔지니어들과 조명엔지니어들이 무대장치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 조회대를 무대로 활용한 마을사람들의 재치(?)가 돋보인다 마을사람들과 마을을 찾은 손님들과의 명랑운동회에 기자는 마을이장의 부탁으로 난대없는 사회와 심판까지 보는 횡재수(?)를 누리기도 했다. ⓒ 토고미자연학교
기대와 우려반 그리고 신기함 반으로 무대를 살펴보던 내게 지난 4월 우연한 기회로 인연을 맺은 이정춘 이장이 검게그을린 얼굴로 특유의 멋적은 인사로 나를 맞이한다.
▲ 토고미마을 이정춘이장 논두렁음악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이정춘 이장 ⓒ 김영우
인사를 나누자 마자 기자는 "아니 이장님 무대가 왠지..."라고 말을 꺼내려하자 이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원도 특유의 유머스런 억양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니 왜요? 얼마나 좋아요. 아니뭐 돈많이 들여야 좋은 무대인가요? 훌륭하고 유명한 출연진들 계시고 손님들 맞이하는 마을사람들 정성이 있으면 되는거지, 그리고 시골사람들 주머니 쌈짓돈 모아서 하는 논두렁음악횐대 이만하면 훌륭하지 안그래요? 근데요 사실은 오늘 출연하시는 분들한테는 진짜로 미안하기도 해요. 저 분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무대에서 노래 해본적이나 있겠어요?" 하면서 기자에게 한사람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 논두렁음악회가 벌써 6회째 하는 음악회인데 첫번째인가 두번째인가는 정말로 유명한 가수를 초대했었어요 그때는 우리마을 논두렁음악회를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 해서 무리하기도 했는데... 마음같지 않더라말입니다.
가수야 노래하고 가면그만이고,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냥 마을 잔치로만 끝내버리고 나니 남는게 하나도 없더란 말입니다. 그 후로는 그냥 그야말로 마을 잔치 겸해서 무명 트롯트가수 한두명 불러다가 놀고... 그렇에 5년을 하다보니까 이제는 좀 이 음악회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끼리의 잔치로 끝나는게 아니라 도시사람들도 함께 와서 즐기고 농촌을 느끼고 소통하는 그런음악회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나긴했는데 돈이있어야 말이죠. 더군다나 올여름은 이노무 날씨때문에 농사일이 더 어렵게 됐고... 그렇게 고민만하고 있었는데 여기 이 양반이 고민을 해결해 주더라고..."
하면서 옆에 있던 한사람을 기자에게 소개한다.
이정춘 이장과 이런저런 연유로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익명을 요구한 김아무개씨는
"지난 6월경에 회사 식구들하고 MT겸해서 와서는 이장님 부부와 막걸리를 마시던 중에 음악회 말씀을 하시더군요. 잘하고 싶은데 돈이 없고 예년과 똑같이 하려니 안하느니 못할것같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중에 제가 한가지 안을 냈죠."
"이장님 그러면 이렇게 해 봅시다. 문화를 통한 도농간 교류확대라는 컨셉으로 그에 뜻있는 7080가수나 성악가들중에 제가 알고있는 몇몇분께 이야기를 해보께요. 그렇게 해서 몇분이라도 동참하시는 분이 있으면 좋은거 아니겠습니까?라고요. 근데 막걸리 마시고 호기있게 큰소리 치고나니 슬슬겁이 나기시작 하더라구요.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10월이 어떤달입니까? 온 나라가 축제다 행사다해서 연예인 섭외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이거 괜스레 책임못질 이야기 해서 실없는 사람되는 거 아닌가 하구요."
이야기를 이어나갈때쯤 음악회가 임박해 오는지 무대에서는 출연자와 음향스태프간의 오디오 체크를 위한 리허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피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걸어가던중 다시 바라본 무대는 아직 해가 지지않아서인지 초라하기가 그지없어 보인다.
그런 내 옆에서 김아무개씨가 슬쩍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리허설하고 있는 저분 테너 보이시죠? 저분 아니었으면 이 음악회 어떻게 했나 끔찍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말에 대한 책임은 져야 되겠고, 이장님이 내놓을 예산은 저분들 한두분 모시면 동날 예산이었는데... 그러면 음향도 조명도 어휴~."
이어지는 김아무개씨의 말에 의하면 커다란 걱정을 안고 무작정 테너 김현동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뜻밖에 김현동씨는 "그런 좋은 의미의 행사라면 출연료에 상관없이 무대에 설 수 있다."며 "시골분들이 성악(클래식)을 접해볼 기회가 많이 않을터이니 자기 혼자보다 여성소프라노 한사람이 더 있으면 훨씬 좋을것 같다'고 강명숙 교수께 이야기 해보고 왠만하면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흔쾌히 수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필원씨역시 뜻을 보태주었고, 지인의 소개로 전화를 한 유명가수 추가열씨는 자기도 가고싶지만 그날 방송과행사가 다섯개나 잡혀있어 도저히 힘들것 같다며, 자신이 직접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한 여성 신인가수를 소개해 주어서 오늘의 출연진이 완성이 됐다는 것이다.
이정춘 이장과 김아무개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서 이장이 그렇게 자신있게 음악회 자랑을 했겠거니 생각하며 나도모르게 "참 두분다 대~단하십니다."하며 이들의 무협담에 농이라도 던질렸더니 어느새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 세미트롯신인가수 엄지애 추가열씨가 만들어준 '변치않아요'를 부르는 신인가수 엄지애 ⓒ 김영우
음악회의 첫순서는 케이블 가요채널을 중심으로 방송활동을 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신인가수 엄지애씨의 무대였다.
추가열씨가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싱까지 해 주었다는 '변치않아요'를 시작으로 공연을 이어가자 무대앞 관중의 한 축을 이룬 자매결연 부대의 병사들은 환호로 답례했고 흥에 취한 마을 어르신 한 분은 연신 어깨춤을 추며 흥을 즐겼다. 노래한곡이 끝나자 병사들 중 한명이 엄지애씨를 향해 "사랑해요~!"라며 휘파람으로 추파(?)를 던지자 엄지애씨는 병사를 무대로 올라오게 한 후 자신의 음반을 선물하며 포옹을 하는 도발적 무대매너로 화답했다.
엄지애씨의 무대가 끝나고 이어지는 무대는 김아무개씨의 말대로 "추억"이었다.
▲ 7080포크세대의 대명사 이필원 자신의 대표곡인'추억'을 노래하는 이필원씨 ⓒ 김영우
70년대 '뚜아에무아'라는 국내 최초의 혼성듀엣을 이끌었던 '이필원'씨는 자신을 잘 아는사람이 없을것이라며, 그래도 이렇게 포근하고 정겨운 곳의 음악회에 초대해주어 너무 감사하다며 자신의 대표곡인 '추억'과 함께 뚜아에무아 시절 주옥같은 명곡으로 남아있는 '그리운사람끼리','약속'등의 노래를 선사하며 토고미 논두렁음악회를 추억으로 이끌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악회를 보면서 기자는 낮에 가졌던 걱정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초라하기 그지없던 낡은 조회대는 토고미마을의 청아한 공기와 잔잔한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가수들이 마치 작은 원두막에서 노래하는 듯한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관객들의 표정은 점점더 진한 향수에 젖어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필원씨의 무대가 끝나고 테너 김현동씨의 순서가 되자 기자는,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젊은 피의 병사들과 흘러간 옛노래가 생활이 되어있는 이 절묘한 관객의 조합에 과연 성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잠시 숨을 죽였다.
....... 은은히 퍼져가는 반주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테너의 굵은 음성으로 뿜어지는 '라노비아', '떠나가는배' 그리고 이어지는 소프라노 강명숙씨의 열정적인 무대......
▲ 테너김현동 김현동씨는 수많은 오페라 출연의 경험인듯 구수한 입담까지 겸비했다 ⓒ 김영우
▲ 소프라노 강명숙 성악에 문외한 기자까지도 그날 토고미에서 만난 소프라노 강명숙씨의 연주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 김영우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테너 김현동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이 부른 곡에 대한 설명과 강명숙씨 소개 그리고, 이제 둘이서 듀엣으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겠다는...
관객들은 말을 잃었고 청량한 토고미의 가을밤을 타고 들려오는 두 성악가의 목소리에 자신들을 맡겼다.
▲ 듀엣으로 천상의 하모니를 연출한 두 성악가 가을밤 두사람의 선율은 토고미의 청아한 밤 공기와 함께 마음껏 사람들 마음을 누볐다 ⓒ 김영우
두 성악가의 감동의 열창을 끝으로 음악회는 끝이났지만 아쉬움은 관객의 몫, 끝내 두 사람을 그냥보내지 않겠다는 작은 마을사람들의 바램은 앵콜로 이어졌고, 두 성악가는 토고미마을의 가족이 되겠다는 약속과함께 마지막 피날레곡으로 음악회를 갈무리했다.
음악회가 끝이나자 마을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바베큐파티를 즐겼고, 마지막 무대를 마친 김현동씨와 소프라노 강명숙씨는 늦은 밤까지 함께 남아 마을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족이 되었다.
▲ 공연후 마을사람들과 대화하는 두 성악가 이날밤 이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다 ⓒ 김영우
음악회를 통해 자신들의 마을을 알리고, 문화를 통한 도시민들과 교류를 원했던 토고미마을 주민들의 바램과 모든 스케줄을 포기하고 논두렁음악회을 채워준 출연진들을 보며 기자는 "어쩌면 이 토고미마을의 논두렁음악회가 도시와 농촌간의 교류확대를 위한 진정한모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정춘 이장은 "내년에도 이렇게 좋은 분들과함께 논우렁음악회를 열것이고, 이 음악회를 통해 도시민들과 마을주민들과의 끈끈한 정을 나누는 음악회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출연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치권이든 지자체든 누구나 할것없이 도농간의 교류를 이야기 하고, 문화격차해소와 문화향수 기회확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보여준 마음과마음이 모여진 논두렁음악회를 보며 기자는 바로 이런 것이 거창하지않지만 진심을 모아가며 도농간의 가교를 잇은 실험정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마을을 떠나기전 이장부인이 두 성악가와 나를 보며 하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내년봄에 가재 잡아놓고 연락드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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