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고 여성문제만 나오면 싸움닭이 된다네요"

[인터뷰] 베네수엘라 여성활동가 야나이르 레예스

검토 완료

임승수(reltih)등록 2010.12.01 14:26
필자는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알렸다. 이 책에는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과 지도자 차베스의 투쟁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하지만 항상 뭔가 아쉬웠다. 지도자 차베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층에서 활동하는 베네수엘라의 숨겨진 혁명가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던 게다.

최근 필자는 <베네수엘라 스픽스(VENEZUELA SPEAKS!)>라는 책의 번역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책에는 베네수엘라 풀뿌리 활동가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번역한 내용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생생한 속살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기자 말

야나이르 레예스(Yanahir Reyes), '여성의 첫걸음' 시민협회(안티마노, 카라카스)

분주한 안티마노 지구의 기차역은 카라카스 서쪽 지역의 다른 역들과 비슷하다. 거리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노점상들이 커피, 엠파나다, 복권, 주방용품 팔고 있다. 야나이르 레예스는 지프를 타고 인근의 산동네로 15분 정도 지프를 타고 들어갔다. 학교가 없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정 중 마지막 목적지이다. 아래쪽 큰 길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 그녀는 수돗물도 없고 수백 가구가 주름진 양철지붕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사는 다른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곳은 안티마노 지역의 라 페드레라 빈민가이다. 야나이르는 여성주의자이며 지난 3년간 이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베네수엘라서 성차별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민 자치 공동체 사업에서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여성활동가 야나이르 레예스(Yanahir Reyes) ⓒ PM press


여성들은 볼리바리안 혁명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다. 여성들은 주민자치평의회나 각종 위원회들, 그리고 다양한 기층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사업들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70%가 여성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볼리바리안 혁명에서 활발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우월주의(machismo)'과 미인에 대한 집착은 나라 전역에 걸쳐 여전히 확고하다.

베네수엘라에서 미인은 그야말로 돈이다. 광고에 나와 술부터 휴대폰까지 모든 것을 파는 흰 부피의 잘빠진 모델들은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디서나 미용실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극빈층이 사는 곳에도 말이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미인대회가 끝없이 열리면서 한 해에 수백만 달러씩 쏟아 붓는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2004년에만 화장품 구입에 10억 달러를 넘게 쓰면서 라틴아메리카 최대 소비국이 됐다. 성형 수술이 일상화되어 있고 15살 베네수엘라 소녀들의 통과의례(La Quinceañera)에서 선물로 성형수술을 해주기도 한다. 무슨 계급장이나 되는 양 성형수술 붕대를 공개적으로 감고 다닌다. 성형수술 관련 은행 대출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은 여성주의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렇지만 28살의 야나이르는 젊은이로는 드물게도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미(美)에 대한 집착을 비판한다. 2005년 이래로 그녀는 학교가 없는 빈민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동체 교육 사업인 '여성의 첫걸음' 시민협회(Asociación Civil "Primeros Pasos de Mujer")에서 일했다. 그녀는 또한 가까운 카리쿠아오(Caricuao)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페롤라에서 여성주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밀레니엄 여성 이야기(La Milenia Palabra de Mujer)를 만들었다.

야나이르 레예스와의 인터뷰

여성주의자가 되다

저는 일상에서 남성과 여성 간에 불평등을 알게 되면서 내 자신이 여성주의자라는 자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자각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됐죠. 아버지는 나가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만 있으면서 딸들을 돌보고 다리미질하고 빨래하고 닦고 청소하곤 했죠. 아버지는 혁명좌파운동(MIR - Movimiento de Izquierda Revolucionaria)이라는 게릴라 운동에 몸담고 있었어요. 정치적 관점이나 삶으로는 아버지를 존경했어요.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리 모두한테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배신감이 들었어요. 가족 모두에 대한 배신이었죠.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자신의 엄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겠죠. 정말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비겁자에 남성우월주의자였다는 점입니다. 아버지의 우유부단함이 우리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줬어요. 아버지를 통해 그 여자를 알게 됐어요. 저의 친구이자 멘토로서 말이죠. 나는 좀 제멋대로였는데 그녀가 내 공부를 도와줬어요. 그녀는 나를 바로잡아주려고 했는데 그녀가 아버지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탄로 난 겁니다.

이렇게 집안일을 통해 성차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도 살고 그 다른 여자와도 살면서 상황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저는 13살이었어요. 지금은 제가 일정부분 해결했습니다. 아파트를 사서 아버지는 갈 수 있고 어머니는 머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 카라카스에서 집을 얻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모욕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이 종종 있습니다. 부모님은 몇 년간 이런 식으로 살다가 지금은 결국 헤어지고 어머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죠.

사회규범

우리는 혁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쇼핑몰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자동차, 옷, 술을 삽니다. 제대로 된 게 아니죠. 우리는 '사람(humanism)'보다는 '소비(consumerism)'에 더 많은 열정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문 지상에서 그리고 곳곳에서 공공연한 성차별주의가 나타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혁명이 진행 중인 이 나라에서 여전히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건 정부의 책임입니다. 정부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 책임이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는 피해를 입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렵죠.

젊은 사람이든 오랫동안 이런 현실을 보아 온 노인이든 자신들을 짓누르는 이런 소비주의에 대해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우리사회의 악(惡)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부패한 정치인에게 매우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것을 만천하에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TV에서 볼 수 있도록 말이죠. 당신이나 저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낸 세금으로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받습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단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부자가 됐어요. 그들은 매달 그렇게 많은 돈을 받지만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이런 일이 용인되고 있습니다. 좀 달라져야죠.

제 집안일에서도 그렇듯이, 우리가 혁명 과정에 도움이 안 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각자 자신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예로 들어 보죠. 여기에서 크리스마스는 소비주의로 가득 찬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좋아요. 저항하자고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겁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을 위한 날입니다. 여기의 가족 전통에서는 선물을 사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선물이 있지요. 따뜻한 포옹 말입니다. 가족이 함께 해변으로 갈 수도 있고 집에서 머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항할 겁니다. 더 많은 가족들이 이렇게 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세상은 이런 변화가 필요해요.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소위 서구식 '민주주의'로는 변화가 너무 느립니다. 그저 계속 같은 자리를 돌고 돌 뿐이에요. 법률이나 제도는 관료제 앞에서 무력화되고 공동체들은 자신의 완전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국가의 부르주아적인 요소들을 깨뜨리고 민중에게 권력을 줄 때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정의(正義)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틀을 깨다

제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어요. 그리고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와 함께 미국으로 갔어요. 주위에서 말이 많았지요. 하지만 언니는 굴하지 않았어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이미 어른이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권리가 있어. 여성으로서!" 여기 분위기에서는 남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못합니다. 언니의 예는 저에게 매우 중요했어요. 언니는 매우 진지하고 단호한 여자였어요. 우리는 자매로서 당연히 서로 다른 점도 많았지만 살면서 많은 부분 공감하기도 했어요. 언니가 좀 더 보수적이고 세련됐죠. 언니는 교회에서 결혼했고요, 뭐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요. 이렇게 길들여져 왔죠. 점잖게 얘기하자면, 이런 식으로 자라온 거죠.

어린 시절에 언니의 일은 저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남들과 다르고 싶었어요. 공부하고 싶었죠. 저 자신을 위해서 많은 것을 얻고 싶었습니다. 혼자서만 살 아파트를 갖고 싶었어요. 여행도 가고 싶고요.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여성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여성들과 일했습니다. 사회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여성들이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저는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여성에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어요.

지역공동체에서 일하기

지역공동체에서 일하면서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에 나섰습니다. 누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나 보면요, 그건 대부분 여성입니다. '집에서(En Casa)'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계속 하고 있고요, 제 친구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아이문제, 가족문제, 그리고 여성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국을 만든 사람들이 저보고 여성문제만 나오면 싸움닭이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사람들은 저를 여성주의자라고 불러주지 않았어요.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제가 물었죠. "이 방송 프로그램을 여성주의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면 무슨 문제가 있냐?" 그들은 여성주의가 다른 방향으로 남성우월주의(machismo)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베네수엘라에서는 사상으로서 여성주의를 정의하기 위해 오랜 기간 투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디에나 과할 때도 극단적일 때도 있죠. 하지만 여성주의의 본질은 투쟁도 아니고 사상도 아닙니다. 여성주의의 본질이란 여성주의 조직들과 여성의 권리를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페롤라 라디오 사람들 중에 근처에 살아서 이미 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저에게 여성문제를 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날로 저는 제 자매와 함께 '밀레니엄 여성 이야기(Milenia Palabra de Mujer)'를 시작했어요. 제 자매는 1년간 저와 함께 했는데요. 아버지는 제 프로그램을 싫어했습니다. 여성의 권리나 여성폭력 문제는 이미 충분히 많이 다뤄진 주제라고 하시더군요. 진부한 주제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매일 여성이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얘기됐다고 말할 수 없어요.

경제적 종속

이 정부가 출범한지 10년 됐는데 제가 원하는 만큼 진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물론 가부장제가 500년간 지배해온 사회이고, 게다가 자본주의까지 더해진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변하지는 않겠죠. 우리 베네수엘라의 여성들은 자신의 투쟁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적인 장벽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한 남성우월주의(machismo)는 종종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듭니다. 이것이 여성이 직면하는 문제들의 근원이에요.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거나 여러 여자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여자들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여자들이 이렇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욕적인 상황에 처하면 무척이나 힘듭니다. 자신들을 위한 기회가 대폭 제한되지요. 학교나 직업교육프로그램이 있지만 많은 여성들이 그런 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애들을 돌보는 게 우선이니까요. 이런 제약들 중 일부는 자진해서 떠맡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제약들이 왜 생기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은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만으로 취급될 수는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수세기 동안 확장된 정치적 경제적 질서가 이런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이 받는 이중의 착취에 대해서 얘기하고 여성 폭력 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이 한 나라 혹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채로 다뤄져서는 안 됩니다. 마킬라도라(maquiladoras)(역주 -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조립·수출하는 공장)를 보죠.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죠?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성입니다.

단지 남자들은 남성우월주의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자로서 남성에 저항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미디어, 생산수단, 국가, 교회 등 모든 것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데에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남성우월주의는 단지 여성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남성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적어도 이곳 베네수엘라, 이곳의 빈민가를 보면 죽은 사람도 남자고 죽인 사람도 남자, 젊은 남자입니다.

여성, 민중 권력을 이끌다

여성이 지역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바꾸는 길입니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에서는 공동체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해서 공동 사업을 벌여내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저와 밀다 비나(Milda Vina)를 공동체의 교사로 임명했습니다. 저는 라디오 페롤라에서 밀다를 만났어요. 그녀는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으로 저를 추천했습니다. 안토니아 리베라(Antonia Rivera)와 루르드 히메네즈(Lourdes Jiménez)는 지역공동체 출신의 사람들인데 함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로 들어가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했습니다.

우리가 담당한 처음의 두 지역에서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초등학교 나이대의 아이들이 100명이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조사하면서 이 숫자는 점점 커졌지요. 단기간에 학교를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2005년 9월에 우리는 임시학교로 쓰기 위해 몇몇 가정집을 개조하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널빤지, 함석,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판잣집의 거실을 증축했는데요. 항상 문제가 발생했어요. 비가 오면 물과 진흙이 집으로 새어 들어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예상을 못했죠. 그래서 우리는 유아들과 임산부를 위한 공간인 루도테카(ludoteca, 역주 - 일종의 놀이방)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그 곳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는 그런 공간입니다.

루도테카는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콜롬비아 메델린(Medellín)의 빈민가에 있는 루도테카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루도테카는 거기서 주로 폭력을 줄이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죠. 루도테카라는 용어는 '놀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루도테카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유럽에도 루도테카가 있지만 주로 부자들을 위한 곳이죠. 아이들이 가서 노는 곳인데 변혁적인 사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루도테카라는 용어와 개념을 우리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요구에 맞춰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루도테카는 전통적인 학교와는 다릅니다. 지역공동체의 어느 곳이나 루도테카가 될 수 있어요. 망고나무 아래일 수도 있고, 빈민가의 방이 될 수도 있고, 버려진 길 한복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루도테카는 교수나 기관에서 운영하지 않습니다. 인민들이 운영합니다. 부모님들이 참여하는 것이죠. 놀이를 통해 가족이 함께 모이는 공간입니다. 가족은 교육과정, 그러니까 배우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모든 것은 아이들과 가족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짜여 집니다. 이런 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루도테카는 단순히 칠판과 책상이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인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공간입니다.

루도테카는 또한 가족 간의 감정적 유대를 강화시키고 놀이를 교육(변혁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지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성적 교육을 실시합니다. 유아교육이란 전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나면 이 아이들이 현재의 변혁과정과 미래의 혁명과정을 담보할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라 페드레라에서 최우선 과제는 유아를 위한 공간을 여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8세에서 15세까지의 아이들도 많습니다. 빈민가에서 일어나는 폭력 때문에 아이들이 놀 권리를 빼앗깁니다. 어른이 돼서야 놀 수 있죠. 어머니가 일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7살짜리 소녀가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이 억눌립니다.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일, 이 정서에 도움이 되고 즐거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단계는 존중받는 삶 속에서 아이들이 건전한 어른으로 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대중 교육(Popular Education)

우리는 학교가 공동체에 의해 운영되고 어머니들이 공동체에서 교사가 되는 좋은 사례들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여성 조직들을 지원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시몬 로드리게즈 국립 부속 대학(UNESR - Universidad Nacional Experimental Simón Rodríguez)에서 교육학 학사를 받았습니다. 볼리바리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하나인데, 대학생이 졸업할 때 자신이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를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저와 UNESR의 몇몇 학생들은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라 페드레라에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실습한 내용으로 우리는 그 곳에서 사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빈민가의 여성들도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업은 어머니들에 관한 것이었고 어머니들이 그 사업의 주인이었습니다.

우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우리가 만든 공간에 데려 왔습니다. 이후에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엄마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게 된 것이죠. 처음에는 각기 다른 빈민가에서 온 10명의 여성이 참여했는데요. 지금은 일 문제나 이사를 간 사람이 있어서 8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참여한 여성들은 이전에 이런 식의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와 밀다가 하는 것을 관찰할 뿐이었죠. 하지만 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동요를 배우고 아이들과 노는 법을 배우고 임산부를 도와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들을 가르친 게 아니고, 자신들이 실천을 통해 배웠죠.

학교는 공동체가 심각한 인권 문제들, 예를 들어 수도, 교육, 안전, 여가, 식생활 및 다른 필수적인 일들을 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조직하는 것을 돕습니다. 루도테카는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폭력과 가부장제 및 자본주의의 악순환에서 피할 수 있는 쉼터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남성우월주의의 영향을 돌아보고 서로 뭉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육습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때로는 양육습관에도 남성우월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들과 딸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에 대한 얘기를 하는지 억압적인 얘기를 하는지 말이죠.

이 공간이 아이가 태아일 때부터 15세까지의 대중 교육에 대한 연구의 장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식으로 대중 교육(Popular Education)이 퍼져 나갑니다. 이런 제도들이 공동체의 지혜와 희망에 기반하고, 그 가운데 가족과 공동체의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말이죠. 이런 식으로 우리 여성은 자신이 겪는 억압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은 여성들이 여성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을 하면서 남성들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남자들도 이런 일의 결과로 더 성장할 테니까요. 더 많은 남자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아이들 문제는 여전히 엄마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지거든요. 이런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첫 걸음

지금 우리는 법률에 근거해서 '첫걸음(Primeros Pasos)'이라는 시민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첫걸음'은 처음에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조직적인 틀을 갖추게 되는 가운데, 우리가 일을 추진할 때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런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들은 당장 먹고 살 문제를 고민하느라 이런 일에는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여성들이 이런 기본적인 요구들과 아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의 점심값이나 교통비, 아이들과의 외출비도 드니까요.

우리는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여전히 실제로 우리를 지원해주지 않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부르주아 교육 정책을 고수하거든요. 교육부 사람들은 교육이란 단지 교실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공동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산꼭대기의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은 교육을 받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는 거고요.

하지만 우리는 푼드아야쿠초(Fundayachcho)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푼드아야쿠초는 교육부가 관리하는 재단입니다. 이것이 우리 정부 안에 있는 모순입니다. 푼드아야쿠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업을 이해하지만 교육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거죠. 그들은 우리에게 십만 볼르바르(Bolívares Fuertes)를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종자돈으로 어머니들이 자원봉사자로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기뻤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검토해 달라고 제안서를 넣었는데 빈민가 사람들로서는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정부기관에서 답신이 왔거든요. 이 기관과의 관계는 아주 좋아요. 함께 많은 일을 해왔거든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원도 받았습니다.

문을 '조금' 열다

차베스와 함께 이 문을 열었습니다. 여성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실제 관심은 그저 성평등 언어를 쓰고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문화를 바꾸려면 더 큰 투쟁이 필요합니다. 여성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투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여성의 가치를 매기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책임을 나누는 '가족 부담(family load)'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심장부로 가야합니다.

차베스 정부는 빈민가 여성과 주부를 고려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난이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 새로운 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국가여성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여성개발은행(Banmujer)은 사회-생산적(socio-productive) 대출을 제공합니다. 2007년에 폭력 없는 삶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통과되면서 여성과 가족에 대한 보호조치가 강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체제로서의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를 통해 확립된 폭력의 다양한 형태를 조사했습니다. 2009년에 여성과 성평등부가 생긴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하지만 관료제는 좋은 의도를 삼켜버린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국가기구를 강화하기만 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공동체들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투쟁은 계속해서 국가기구와 인민권력을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미래

저는 제 삶 속에서 진보해왔습니다. 좋은 일이죠. 하지만 저는 또한 두려움을 가지고 미래를 봅니다. 눈가리개는 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것을 실현하지 못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를 극심한 자본주의적 고통에 밀어 넣는 경제적 종속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내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이 투쟁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공격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가치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지닌 대중 교육(Popular Education)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추구하는 사회주의, 진정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닌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부에는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개량주의자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요소들이 혁명을 이끌지 못하도록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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