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조좌파는 누구?

좌파의 딜레마와 한국좌파의 시대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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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욱(arock)등록 2011.02.23 13:45
원조 좌파의 나라, 러시아에서 15년을 지나다 보니, 좌파의 모순을 사람들의 행동양식에서
찾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원조좌파는 1917년에 권력을 장악하고 1991년 붕괴될 때까지 84년 동안 지구의 반 이상을 직접, 또는 위성국을 통해 지배했다.
거의 매일을 또는 많은 밤을, 돈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돈 걱정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좌파의 구호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리고 짧은 동안이었지만 그런 세상이 있기는 했다. 러시아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10여년이었다. 그러나 짧은 몇 년의 환희는 결국 빵 한 봉지와 고기 한 덩어리를 구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온 종일 줄을 서 기다려야 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1. 공산주의 이론의 모순
공산주의는 인류를 유혹하는 달콤한 바이블이긴 했지만 다음 세 가지에 태생적 모순이 있었다.

(1)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인간이 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이 맞는지 그 반대로 "성악설"이 맞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본능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할 때 가장 열심이다, 그런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받는다"는 좌파의 명제는 노동력의 생산성이 도저히 자본주의에 미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실컷 일해야 남의 주머니만 채워준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세뇌"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함이 증명되었다.
물론 "인간의 사리사욕"이 최고선으로 간주되는 사회도 문제이긴 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아예 없앨 수 있다는 전제 역시, 불가능을 가능하다 본 원천적 오류였다.

(2) 무신론의 모순
볼쉐비키는 신을 부정하였다. 단순 부정이 아니라 교회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을 지었다. 성 바실리 성당을 부수고 다른 건물을 지으려 하자 지반이 약해서인지 자꾸 무너졌다. 그러자 볼쉐비키들은 거기다 물을 채우고 수영장을 만들어버렸다.
신은 없다, 죽으면 그만이다고 생각하자 러시아인들은 이 세상에서 나쁜 짓을 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감시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거대한 감시조직을 만들어도 사람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나쁜 짓 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고 그저 게으른 것은 처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게으르다고 욕하려면 나 자신은 부지런해야 되는데 만인이 그럴 수는 없었다.
결과는 이 모든 걸 통제하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비대한 관료조직과 또 필요 없는 각종 규정이 거미줄처럼 만들어졌고 이것 자체가 고비용, 비능률의 원천이 되었다.
또 국영인 회사가 판매걱정, 부도, 파산될 걱정이 없으니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공급은 수요를 창출"하는 시스템이 되니 공장설립이 시장원리나 수요공급의 원리로 세워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위주로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니 예를 들자면 자동차를 만드는데 차체는 4000 km 떨어진 우랄의 마그니토고르스크에서 만들고, 바퀴는 남쪽으로 1000 km 떨어진 흑해에서 가져오고, 유리는 동쪽으로 9000 km 떨어진 극동에서, 조립은 모스크바에서 하는 식이 되어버렸다. 구소련 시대에 차를 한대 사려면 돈이 아무리 있어도 "빽"을 써야하고 또 아무리 빽을 써도, 몇 달, 심지어 2년 이상 기다려야 했다.

(3) 일당독재의 모순
볼쉐비키의 "볼쉐"는 영어로 말하면 many 혹은 much의 비교급인 "more"에 해당하는 말이다.
1905년 3차 전당대회 이후 레닌이 중심이 된 이들은 집권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집권 이후에도 반대정당을 허용치 않았다.
그리하여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권력구조가 비민주적 독재체제로 가게 되었다.
반대당의 등장을 배제하고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권력에 있어 반대자가 전혀 없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최고권력자가 오류를 범하는 경우 시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이런 체제 하에서는 최고권력자가 노령이나 병으로 죽지 않는 한 예외 없이 장기집권 한다. 이 과정에서 부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민중은 말만 주인일 뿐, 실제는 소수의 당 서열이 높은 공산당 간부들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결국 현대판 귀족정치에 다름 아닌 것이다.

2. 한국좌파의 원조

흔히들 한국 좌파의 시초는 1925년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창당을 시조로 삼는데 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강력한 좌파가 있었고 그 정체는 "애국좌파"였다.

2.1. 독립운동의 요람-연해주
19세기 중엽, 조선에서의 고된 삶을 뒤로하고 노령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1902년에는 32380 명에 달했다. 일제의 조선침탈이 노골화되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많은 의병, 항일지사가 연해주로 넘어왔고, 안중근,이상철,이용,최지형,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이 비밀결사, 의용군을 조직해 일본군과 싸우거나 투쟁하였으며 50 을 헤아리는 이들 단체의 물질적, 정신적 지원세력은 바로 조선에서 이주한 이민들이었다.

2.2. 러시아혁명과 열국개입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 전역은 곧 혁명세력(적군)과 반혁명세력(백군)간의 치열한 싸움터로 화했다. 이에 10만명이 넘는 재러 조선인들은 1918년 6월 "전러한족중앙총회"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열고 이동휘,최지형을 공동대표로 뽑은 다음 내전에서 중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피를 튀기는 전장에서 적,백 아닌 중립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런 와중에 공산혁명이 자국에 파급될까 우려한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이태리,일본 6국은 45만명의 백군을 지원, 적군을 섬멸키 위한 파병을 단행하였다(1918년 8월). 특히 일본은 시베리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어, 나머지 5국과의 협정을 무시하고 미국이 요청한 수의 10배가 넘는 7만명을 블라디보스톡에 상륙하여 침략의도를 노골화하였고, 나머지 5국이 콜챠크제독을 지원하는 것과 달리 별도로 Grigory Semyonov 를 앞잡이로 내세워 시베리아 괴뢰 정부인 White Transbaikalia를 세웠다.

이런 판국에 일본에 치를 떨던 연해주 한인사회가 적군에 가담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적군에 가담하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본군,백군의 연합세력과 대항하여 싸웠으며 45개 단체, 1만여 독립군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표적 전투 중 하나는 1920년 3월12일 니콜라예프스크 항에 머물고 있었던 일본군을 볼셰비키군과 합세 전멸시킨 것이다. 이에 일본의 시베리아주둔군은 이주한인 민간인들의 집단촌인 신한촌을 습격하여 대학살에 들어갔다.

다른 전투는 1922년 하바로브스크 부근 볼로차에프카라는 곳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은 한인 의용부대를 이끌고 영하 35도의 혹한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빈약한 무기, 다 헤어져 걸레처럼 된 천으로 몸을 가리고, 8천명의 백군과 일본군을 공격, 섬멸함으로써 일본군이 극동에서 철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이 전투가 백군과 적군의 마지막 전투였다) 그러나 그 대가는 "이용"부대의 장렬한 전원 전사였다. 이때 한인의용군이 백설이 휘날리는 전투 속에 불렀던 "아아~ 고향생각 간절한데, 돌아갈 길은 막막하도다……"로 시작되는 노래는 지금도 그곳 러시아주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다.

이와 같이 흘린 의용군의 피 덕분에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동휘 선생을 만난 레닌은 "공산당 이론에는 어둡지만 훌륭한 혁명가"라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소개하고 또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약속하고 또 일부를 실천에 옮겼다.

2.3. 한국좌파의 시대구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이들 초창기 조선좌파는 "애국좌파"라 불러야 할 것이며 오늘날의 잣대로 당시 분들을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크게 분류하여 그 뒤 1925년 박헌영의 공산당 창당으로부터, 1946년, 조선정판사 사건으로 공산당이 남한에서 불법으로 낙인 찍힐 때까지는 "이념 좌파"라 부르는 게 옳겠고,
김일성이 등장하여 당시까지 북한에서 주민들 간에 아직 남아있던 초창기 애국좌파들에 대한 존경심, 향수 등을 교묘히 악용해 정권장악의 도구로 삼고 또 세습까지 한 것은 "세습좌파" 혹은 "사이비 좌파"라 부르는 게 정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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