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복지가 대세다. 정치권에도 온통 복지 바람이다. 그리고 뉴스에는 잘 보도되지 않지만 직원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작은 기업들이 늘고 있다. 물론 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며 착취를 일삼은 대기업들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면 직원 복지야 말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상황을 G교육에서 실제 경험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이 글을 썼다. 지난 2004년 6월 G교육에 입사했다. 'G수학'으로 잘 알려진 출판사로 주로 어린이용 학습교재를 전문으로 만들어 내는 출판사다. 당시 G교육 안에는 성인 단행본 팀도 있었는데, 나는 그 팀의 기획자로 들어갔다. G교육은 서울 방배동에 5층 규모의 사옥을 가지고 있었고, 방배동 본사 직원만 해도 60명이 넘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파주의 물류창고를 비롯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직원들을 포함하면 100명이 넘는 큰 회사였다. 한 솥밥 먹기 운동입사한 지 서너 달쯤 되었을까? 회사 내 인터넷 게시판에 공지가 떴다. 직원 모두에게 80킬로그램 쌀 한 가마씩을 나눠줄테니 배달 받을 주소를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알아보니, 파주에 회사 소유의 논이 있는데, 거기서 수확한 쌀을 '한솥밥 먹기 운동'의 일환으로 해마다 수확 철이면 한 가마씩 나눠준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20킬로그램으로 나누어 4포대씩 나눠줄테니 각자 보내고 싶은 곳의 주소를 적어내면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처가 될 곳을 비롯해 몇 군데 나눠 보내 톡톡히 인사치레를 받았다. 또 몇 달이 흘러 연말이 되었다. G교육에서는 대기업에서나 주는 것으로 알고 있던 성과급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입사한지 겨우 6개월 째 되던 나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게도 6개월에 해당하는 만큼의 성과급을 주었다. 거의 3백만 원에 가까웠다. 그리고 성과급과 별도로 모든 직원에게 50만원이 더 주어졌다.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니 한복 값이란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50만원으로 한복을 한 벌씩 해 입고, 1월 2일 모든 직원이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행사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직원들은 1월 2일 모두 한복을 입고 출근을 했고, 점심식사 뒤 옥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물론 새로 한복을 맞춰 입은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원래 집에 있던 한복을 입고 오거나, 없는 사람은 빌려와 입었다. 그러니까 '한복 값'이란 말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3월이 되었다. 또 경리과에서 직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렸다.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니 3월이니 아이들 학용품이나 사 주라고 사장님이 주는 특별 보너스라고 했다. 또 몇 달이 흘러 5월이 되었다. 역시 모든 직원들에게 50만 원짜리 봉투가 주어졌다.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돈이 많이 들테니 그 돈으로 아이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부모님들 모시고 밥이라도 한 끼 먹으라고 사장님이 주는 돈이라고 했다.원래 G교육은 두 달에 한 번씩 정규 상여금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여금이 없는 달에 이처럼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50만원씩 나눠 주었던 것이다. 오늘은 사장님이 어느 식당으로 갈까?직원들에 대한 G교육 사장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G교육에는 자체 식당이 없어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로 몰려 나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가는 곳이 늘 거기서 거기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식당 안에 회사 동료들이 여러 테이블을 차지하고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사장님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직원들은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 좋아 했다. 왜냐하면 그날 그 식당에서 먹은 직원들의 밥값을 사장님이 모두 내 주었기 때문이다.한 번은 회사 맞은편에 새로 식당이 개업을 했다. 당연히 동료 직원들이 많이 갔는데, 그날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은 G교육 직원들은 20명도 넘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좀 늦게 사장님이 식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날도 사장님은 모든 직원들의 밥값을 계산했다. 식당을 나서면서 사장님은, '돈이 2천 원 모자랐는데 주인이 깎아 줬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나 역시 G교육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번 식당에서 사장님을 만났는데,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밥값을 내 주셨다. 물론 다른 직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장님 우리 팀 회식 때 오셔요G교육은 회사 차원의 회식도 참 많이 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팀별 회식을 하고 연말이나 특별한 날이면 회사 전체 회식을 했다. 이런 회식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직원들을 위한 회식 자리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일단 평소 잘 가기 힘든 고급 식당에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빠지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팀별 회식을 하게 되면 사장님이 돌아가면서 참석을 했다. 일반적으로 사장이 참석하는 회식을 직원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G교육은 사장님이 참석하는 팀별 회식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우선 더 고급 식당에서 하기 때문이고, 더구나 직원들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기로 유명했으므로 직원들이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압권은 늘 마지막에 있었다. 회식은 늦어도 10시 안에 끝났는데, 회식이 끝나면 사장님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모든 사람들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며 2만 원씩 주셨다. 사장님의 택시비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입사한 첫해 연말 전체 회식을 회사 근처 호프집을 통째 빌려 했다. 그날 술을 마시는 동안 '오늘도 과연 사장님이 택시비를 줄까?'그런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쳐갔다. 보통 팀별 회식을 하면 사장님이 손수 2만 원씩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에 쥐어 주었는데, 전체 회식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식이 끝나고 사장님은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런데 잠시 뒤 경리과 직원이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알고 보니 돈 가방이었는데, 택시비를 위해 현금을 2백만 원 이상 찾아와서 결국에는 모든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짠돌이 사장님 직원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푸는 사장님이었지만 자신은 쩨쩨할 정도로 아끼고 소박하게 사셨다. 당시 사장실은 5층 건물의 3층에 있었는데(지금은 바로 옆 건물로 옮겨갔고, 5층 건물의 5층에 사장실이 있다), 자신의 사무실을 3층에 둔 이유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실제로 사장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늘 계단으로 걸어 다녔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만난 적이 많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되도록이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직원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본 적도 없다. G교육 사장님의 절약정신을 단적으로 경험한 적도 몇 번 있는데, 거의 소설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어느 날 외근을 했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예의 50만 원짜리 사장님 특별 상여금 봉투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기분 좋은 얼굴들이었고, 나 역시 생각지도 않았던 특별 상여금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잠시 다른 부서에 볼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있던 돈 봉투가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혹시 서랍 안에 두고 갔나 싶어 조심스럽게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층에는 20명 이상이 일을 하고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대 놓고 돈 봉투가 없어졌다고 말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칫 일이 크게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해야 했는데, 갑자기 옆 자리의 동료가 빳빳한 10만 원 권 수표 다섯 장을 흔들어 보이며 "돈이 없어졌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해요?"하면서 웃었다.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리과 직원이 올라와 각자의 책상 위에 수표가 든 봉투를 올려놓고 내려갔는데, 잠시 뒤 다시 올라와 봉투 속의 수표만 가지게 하고 봉투는 모두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까닭인즉, 봉투는 재활용할 수 있으니 사장님이 다시 거둬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봉투만 가져가고 수표 다섯 장만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보니 보기가 그랬는지 옆 자리의 동료가 차마 내 서랍을 열 수는 없고, 자기 서랍 안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회사가 잘 되도록 기도한다는 아주머니요즘 홍대와 연세대를 비롯해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관련 기사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고 한 까닭에 대학 캠퍼스의 낭만이 유지되는 것인데도 대학은 그들의 노고를 몰라주는 것 같아 남의 일이지만 화가 날 때가 많다. G교육 본사에도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얼핏 보면 6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은 아주머니였는데, 사실은 일흔이 넘은 할머니였다. 이 아주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청소를 하시는지 화장실이며 계단이며, 엘리베이터 안이며 정말 흘린 음식을 주워 먹어도 될 정도로 반짝 반짝 했다. 가끔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면 달려가 엘리베이터에 실어주곤 했는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자주 사장님 이야기를 했다. 계단에서 청소라도 하고 있으면 사장님이 지나가다가 '힘든데 대충 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늘 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G교육이 잘 되도록 늘 기도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회사가 잘 되도록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기도를 한다는데, 그런 회사를 당해낼 회사가 어디 있을까? G교육 사장님은 청소하는 그 아주머니에게 지나는 길에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뿐 아니라, G교육의 직원으로서 모든 혜택을 똑같이 베풀어 주셨다. 회식이나 상여금 뿐 아니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 워커 삽에도 아주머니가 함께 하도록 했다. 회사가 잘 되면 직원들의 노력때문이고, 회사가 못되면 사장 탓 2005년 5월 성인 단행본 팀이 독립해 본사에서 나가는 바람에 사장님과 오랫동안 같이 근무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경험했던 G교육 사장님의 회사 경영 마인드는 정말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2007년 G교육을 그만 둔 뒤로 사장님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가끔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있다. 언젠가 인사차 찾아가 의례적으로 사업은 잘 되시는지 물었더니 경기가 안 좋아 예전만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다가 "회사가 잘 되면 직원들이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고, 회사가 어려우면 사장이 잘 못해서 그런 것이다"고 하셨다. 모든 공은 직원들에게 돌리고, 잘못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경영자. 그리고 가능하면 직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경영자야말로 그 회사를 가장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G교육이 있게 한데는 이러한 경영자의 높은 경영 마인드 때문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G교육을 떠났지만, 나 역시 늘 G교육이 잘 되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 #복지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