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일이다. 진보 교육감이 언론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분명 사건의 전후맥락이 있을 법한데 '모교지원비 과다책정'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사과까지 있었다. 역사에서 진보에 대한 신뢰성은 시민들 앞에서 도덕적인 모습으로 확인될 때 담보된다. 물론 평소 교육감의 인품을 가까이 지켜본 필자로선 스스로 저지른 과오는 아니었을 터이기에 더욱 유감스럽다.
어느 조직이든 최고 책임자로서 '청렴결백'하기란 참으로 어려우리라.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를 하며, 각종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해 검증되고, 선거를 통해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자리가 크면 클수록 권력의 크기만큼 불의에 늘 유혹받을 수 있기에, 일을 혼자만 할 수 없기에,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조직의 실수나 구조로부터 착오를 일으킬 수 있기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왜 내게 상큼한 실수로 다가오지 않는 걸까.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머릿속에 오버랩되는 것은 조선조의 왕 정조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세력을 19년이나 중용하면서 정치를 했던 인물 정조. 이번 일을 정조와 결합시킨 것은 엉뚱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이고 침소봉대(針小棒大)일 수 있다. 역사적인 현실도 다르고 시대적인 상황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왜 죽었고, 왜 정조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계속 채워온다. 그가 떠오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사실 당선자 시절부터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취임준비위원의 일선학교 예산운영과 관련된 현장간섭, 조직개편과정에서 정책기획단의 위상문제, 지역교육장 임명문제, 급식비확보에 따른 예산편성의 균형문제 등 진보 교육감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연이어 일어난 일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유는 간명하다. 필자는 그만큼 비합리성이 우리를 옭매고 있었기 때문이지, 손대지 않아야 할 문제들을 손대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이해는 그렇게 깊은 사유를 거칠 만큼 진지하게 이해해주지 않는다. '나쁘다'는 결과만 회자되어 눈덩이처럼 굴러갈 뿐이다.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보수나 진보가 거기서 거기'라는 말만 듣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을 한번 더 쉽게 설득시켜야 하고 양보와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진보가 어려운 것 아닐까.
얼마 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라는 상표를 달고 5%를 밑돌던 지지세로 일약 45일여 만에 39.8%의 지지로 당선의 감격을 만들었다는 자신에 찬 교육감의 소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생각보다 보수적인 교육관료들이 많은 우리 지역의 개혁전선에선 한 줄기 빛이고 소금 같은 당선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번 사건 앞에 더 민감하고 관심이 쏟아지리라.
진보라는 머리띠만으로는 만사형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일이다. 흑백논리를 넘어서 개성의 다중성을 기반으로 복잡한 사회가 된지 오래다. 현실 속의 우리 사회는 따스한 이해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합리성이 생명력을 갖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패와 부조리 앞이라도 대통령을 뽑아줄 정도로 사람들은 여유자적하다. 그러니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만만치 않다. 적군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만 고집하고 공감을 불러오지 못한다면 개혁의 완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정조가 떠오른 것일까. 정조는 즉위 후 세도가 홍국영에게 정치를 맡기고 자신은 정치현실에 등을 돌린 사람처럼 창덕궁 후원에 파묻혀 버렸다. 암중모색을 한 것이다. 바둑판의 수계산처럼 칩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도 도서관에 파묻힌 정조를 본 대신들은 나약한 문인쯤으로 생각했을 터이고, 정조는 은인자중 하면서 5년 동안 신진관료를 길러냈다. 자기의 손발이 되어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신하들이 생기자 정조는 규장각을 확대하여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한편, 비로소 개혁의 칼을 들었다.
지난해 당선자 취임준비위원회가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정조의 통치술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진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슬로건보다는 당위적인 구호만 앞세웠다. 한 마디로 너무 급했다는 세평이다. 진보의 갈 길이 급하기는 하다. 할 일도 너무너무 많다. 그 급한 것이 이번 일의 발단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다. 여전히 진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학교현장에선 볼멘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선학교는 빠르게 복지부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는 자발적 역량을 끌어내야 함에도 말이다.
진보는 새로운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특정집단의 가치를 넘어 생명과 평화, 문화와 예술, 느림과 영성, 환경과 생태, 지역의 공동체를 담는 가치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 진보교육감을 넘어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교육감, 혁신적인 교육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문화교육감, 희망의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감으로 거듭날 때 주변들의 잡음들을 바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당선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현장은 각종 현안 사업이 폐지 내지는 취소되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대안이 분명하지 않는 조치들은 현장의 동력을 죽이는 일일 수도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함께 하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번 모교지원비과다지출 건은 1년 안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그러나 큰 사고를 예단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부분에서 읽어지는 법.
지금껏 야심찬 모습으로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5개월여의 당선자 신분으로 보여준 감동적인 준비과정으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끈을 던져주었던 것처럼 진보교육감의 집권이 곧 진보진영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광주지역의 주간지 '시민의 소리' 게재한 글을 수정하여 실었음
2011.05.01 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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