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인턴제, 우리도 마찬가지다

2011년 4월 15일치 한겨레 오피니언

검토 완료

이주영(imjuice)등록 2011.05.10 11:41
토요일 아침이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걷어내고 신문을 펼쳤다. 제목이 '인턴제'로 시작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불공정한 인턴제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나선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클레그 부총리가 속한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무급 인턴을 '부리고' 있"는 현실도 소개한 뒤 "영국 인턴들의 82%가 정식으로 채용되지 못한 채 일을 끝마쳤다"는 조사 내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대로 끝내긴 아쉬웠다. 그것이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야당 초선 의원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입법부 업무를 체험하고 배울 생각에 들어왔다. 그런데 들어와보니 입법 관련 업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주로 홈페이지 관리, 우편물 관리 및 발송, 명함 관리, 사무실 정리, 개인 심부름 등을 한다. 한 선배는 "자기 방(사무실)에선 의원을 위해 '손수' 도시락까지 싼다"며 몸서리를 쳤다. 의원 뒤에서 짐을 한가득 들고 다니는 사람 중엔 인턴도 있다.

국회 인턴은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 한 보좌관은 "1년 이상 인턴으로 일하면 정식 보좌직에 지원할 자격이 된다"고 조언했다. 보좌진 공석이 난 의원실에서 채용 공고를 내면 직접 지원한다. 하지만 채용은 그다음 문제다. 인턴에서 또다시 인턴으로 채용돼 일하는 경우도 있다. 사무실당 인턴 직원 한 명의 계약 기간은 최대 10개월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방법을 '잘' 쓰면 연장도 가능하다.

국회 말고도 많은 곳에서 인턴을 채용하고 있다.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지난해 공공기관 청년인턴의 정규직 채용 비율이 3%에 그쳤다. 청년인턴의 정규직 채용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기관도 60%에 이르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부터 '학습보조 인턴교사' 제도를 도입했다. 정교사 정원은 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인턴교사는 올해 1만 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취업준비생 등을 5개월간 채용하는 '행정인턴제도'는 잔심부름 수준의 업무만 맡기는 한계 때문에 예산 낭비라는 비난을 들었다.

인턴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회사나 기관 따위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이라고 나온다. 한 마디로 정식으로 일에 합류하기에 앞서 겪는 실습 과정이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선 인턴이란 단어가 잘못 쓰이고 있는 듯하다.

고용주들은 인턴이란 단어로 청년들을 끌어들인다. 청년들은 알고 있다. 비정규 계약직을 '경험'으로 포장한 것도, 잡역을 '수련'으로 합리화한 것도 전부 다 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자신들의 열정을 값싸게 이용하고 외면해도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맵찬 현실이다.

오늘도 청년들은 자기소개서에 경력 한줄 더 쓰려고 바동거린다. 꿈꿔왔던 일을 해볼 생각에 설렌다. 혹여 정규직의 기회가 올까 기대한다. 인턴 본연의 의미대로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