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도시, 그리고 모든 지역에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 사상, 그리고 생각이 뭍어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과 지역의 정서에 창조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부여하여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을 때, 나라는 의미는 비로소 문화적인 가치를 갖는 문화다양성의 창조적 주체자가 되는 것입니다.나에게 창조적인 원천을 제공하는 시공간적 정신과 문화의 씨앗은 도처에 있습니다. 당연히 제일의 영향력은 책이겠지요. 최초의 통합 중국의 패권자 진 시황제였던 '영정'의 분서갱유도, 네로황제 시절 로마의 대화재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역사서를 칠주야 동안 불태웠던 파렴치에도 책은 살아남아 나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 모두에게 창조의 원천을 전해줍니다.여기 인터넷이 있습니다. 1969년 냉전기에 미국에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ARPANET이 80년대를 지나면서 대학의 학문 교육의 일환으로, 그리고 90년대에 상업적인 포털 시스템으로 변환되면서 이제 인터넷은 전자책의 기능과 모든 지식의 총아로서의 기능까지 혼재한 미디어의 총아로 이 또한 나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창조적인 원천의 보고입니다.각종 음악이나(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쟝르는 없지요. 클래식, 현대음악, 랩까지 다 듣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미술 전시회, 사진전, 영화, 연극,뮤지컬 등등과 라디오와 TV 매체까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과 다름없이 나의 창조력의 원천에도 가장 중요한 창조적인 원천은 물론 자연(自然)입니다. 더불어 눈으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의식을 고양하고 생각이라는 감각을 불어넣는 혼이 될 수가 있겠지요.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한 창조력의 원천이 있습니다. 아니 별로 창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창조력의 원천이라는 단어는 생경하고 부끄러운 일이고, 제 너절한 머리를 지탱하는 잡학, 잡설의 아우라에 비교적 아름다운 지식을 통째로 전해주는 다큐멘터리의 최고봉,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입니다.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를 경험했고, 우주의 탄생과 멸망까지도 지켜봤으며, 태양계에서 하나 뿐인 신비의 푸른 별, 지구 곳곳의 신비로움과 경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구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같고 다름,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사라진 지구상의 생물과 동물들의 모습에서 분노와 슬픔을 느꼈습니다.미국 지리학회에서 매달 내는 단행본에는 세계의 동물, 지리, 문화와 때로는 목숨을 건 사진기자들과 영상기자들, 그리고 작가들의 모험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세계의 뱀을 찾아 목숨을 건 모험을 즐기는 친구를 볼 때, 파충류에 목숨을 거는 여인을 볼 때, 도구 없이 자연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기인을 볼 때, 나의 상상력과 무딘 감성은 그들의 모험과 글만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교양과 지혜에 만족하고, 상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험을 통해 전달하는 감동에 전율합니다.나는 오늘 또 하나의 지구상의 나라와 문화를 보았습니다. 페루, 안데스 인디오의 나라. 판쵸와 두 갈래 머리의 그저 맘씨 좋은 옆집 아주머니 같은 여인들, 그리고 이 노래 '앨 콘도르 파사'. 오늘 나는 '콘도르'라는 새가세계에서 가장 큰 날 것이라는 사실(무려 날개를 펴면 3m가 넘는다.)과 안데스 산맥 그 높은 고원에 자리한 잉카 문명이 정복자 스페인인들의 발 아래 무참히 무너진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그랜드캐년보다 더 크고 웅장한 골짜기에서 살고 있는 '콘도르'의 위용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이었습니다.더불어 옥수수와 감자를 먹으며 한 달을 기다려 '콘도르'를 생포하려는 잉카의 후예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전통축제일에 맞춰 콘도르를 생포하여 스페인의 상징인 소와 싸우게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루밤바 계곡의 마추픽추도 바로 이 '콘도르'가 날개를 펼친 모습을 형상화하여 건설되었다고 하더군요. 페루인들은 전설의 새 '콘도르'가 자신에게 상상력과 삶의 희망을 전해주는 구세주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원지대에서 얼어죽은 말을 먹으려는 육식 새인 콘도르가 말을 먹어 날지 못할 때, 생포하여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는 그들은 그렇게 죽은 말 옆에 움막을 짓고 한 달 여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그러나 낮에는 주로 코카인 잎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몇 마리 남지 않은 '콘도르'를 기다리며 밤에만 옥수수와 감자로 기다리던 그들에게 끝내 축제 당일까지 '콘도르'는 죽은 말을 먹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2년 전, 간신히 생포한 '콘도르'를 이용하여 정복의 상징인 소를 '콘도르'가 등에 올라 타 쪼아대는 축제를 끝내고 다시 광할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필름을 끝으로 영상은 끝나지만, 나는 축제에 사용할 그들 인디오들의 영원한 구세주인 끝내 콘도르를 잡지 못하여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원주민들의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한 슬픔을 보았습니다.스페인의 지배로부터의 슬프고 아픈 역사를 지워보려는 잉카 후예들의 모습은 부질없고 못난 일인지도 모릅니다. '콘도르'의 위용은 가히 상상을 넘는 것이었고, 콘도르와 잡아 투우하는 소를 쪼게 하는 원주민들의 한풀이는 통쾌하기까지 하였으나, 오천 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인 우리가 과거 수 천 년간 이민족의 발굽 아래 저들처럼 신음했을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저 먹먹할 따름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의식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지난 기억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우리가 만든 것이고 또 가능한 자신에게 닥친 액운은 밀어 내야하듯 지난한 역사도 잊어야겠지만, 어디 우리에게 중국과의 군신의 굴욕외교사와 일제강점기가 잊혀질까요? 그리고 G20인 지금도 계속되는 주체성 상실의 외교전은 또 무엇으로 보답할까요.이럴 때는 '한단고기'나 '부도지'그리고 '천부경' 등 고증되지 않은 우리의 민족사학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내가 광대한 문화민족인 '한민족'의 뿌리를 가진 천상 '조선 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원 지대에 사는 민족 중 하나인 잉카의 후예들도, 자신들을 정복하고 고난에 살게 한 스페인에게 '콘도르'로 하여금 소를 쪼게 할 정도로 결코 아픔을 잊지 않고 극복하려 재연의 의식을 거행하는데, 지금의 우리에게는 왜 그런 의식은 다 사라지고, 그저 지난 일은 잊어야 하고 잊고 살아야하는 것이 당연한 그런 질서에 순응하는 세계관에 길들여졌을까요? 그저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문득 느낀 생각 #잉카 #콘도르 #페루 #내셔널지오그래픽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