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로 향한 고민은 백수를 낳고 백수의 고민은 이직을 낳는다

국제나그네의 독일아리랑- 백수! 그대는 생각하는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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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삼(jys010959)등록 2011.06.04 17:10
수구초심의 나이는 아니지만, 오랜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고  본향인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최종 결정을 내린 후 그 '종결자'로서 나는 배수의 진을 쳤다. 다니던 일 터에 사표를 던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조금씩 경제가 회복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국가 파산선고를 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칼, 등의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뒷치닥거리에 바쁜 선진독일도 실업자가 넘쳐나는 요즈음이다. 더더구나 이민국가가 아닌 독일에서 머리 까만 동양인이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 하는 것' 보다 어렵지는 않지만, 까다롭고 버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나그네가 망명 이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가까스로 둥지를 튼 곳은 상대적으로 타 주에 비해서 꽤나 보수적인 바이에른 주 이다. 바이에른 주는 히틀러가 처음 정치를 시작한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권교체를 해 보지 못한 주다.

프랑켄들의 '묻지마' 지지하에 독일 정당 중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사회당(CSU)의 철옹성 같은  단단한 결집을 타 정당에서 감히 넘 볼 엄두도 못내는, 기독교사회당 출신의 주지사만 배출했던 곳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양철북의 저자 귄터그라스가 네오나찌의 보이지 않은 배후라고 지목해서 한 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에드문트 슈토이버가 최근까지 십 수년간 주지사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독일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구질구질한 불황의 시대'에 외국인이, 그것도 오십대의 나이에 '겁대가리' 없이 사표를 집어 던진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배수의 진, 그리운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내나라 내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과 소박한 소망의 산물이었다.

오십대 사오정! 사표를 내고 스스로 백수가 되다

나그네는 '어떤 일'에 쉽게 몰입하고 쉽게 꽂히는 성격은 아니다.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그렇고 그런 일들은 물이 흘러가는 것 처럼 자연스레 시류에 맡기고 거의 내 의지를 반영하지 않지만, 결정과 행위의 여파가 주변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장고에 들어간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곧 행동으로 이어지고 변명거리를 만들어 뒤로 물러나지 않게끔 가능한한 배수의 진을 친다.

그리고 모든 걸리적거리는 일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맹목적으로 집으로 향하는 '강풀만화의 좀비'들처럼 단순화 시킨다. 사표를 던진 것도 그런 맥락의 한 조각이다. 현재 나그네에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 만이 지고지순한(?) 진리인 것이요 다른 것은 다 부차적인 것이다. 나그네는 이제 '강풀만화의 좀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그네가 회사 책임자에게 사표를 낸 날, 책임자 콘라드 슈테판씨는 사표를 던진 속내가 단순히 처우개선 문제인줄 알고 사표를 반려할 이런저런 제안을 했지만, 나그네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경직된 얼굴로 계약해지서를 작성했다.

"헤어 조!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요. 지금 취직을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스스로 그만 두겠다니...스스로 사표를 냈으니 앞으로 돌아올 불이익은 당신이 전적으로 감수해야 할 거요. 이게 우리 회사에서 노동청에 제출해야 할 당신과의 계약해지서요. 자, 사인하시오."

계약해지서에는 감정이 다분히 섞인 문체로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쌍방간의 노동계약이 만료되었다' 고 적혀 있었다. 따라서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사가 해고를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사표를 낸 것임에랴. 독일은 실직을 하면 일 년 동안은 기존 급료의 7할 정도의 실업수당을 노동청에서 지급한다. 기본적인 국가의 의무요 당사자들에겐 그 동안 노동의 댓가에 대한 당당한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파산이나 해고에 의한 실직이 아닌 스스로 그만 둔 경우는 예외다.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만 둔 경우라도 회사측에서 노동청에 제출하는 계약해지서 내용에 따라 실업수당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회사측에서 인정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어서 사표를 낼 경우는 노동청 담당자의 재량에 의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독일식 고무줄인 셈이다. 나그네는 회사측에서 전혀 호의적이지 않게 계약해지서를 작성한 까닭에 그 알량한 고무줄 덕도 보지 못했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어쨌거나 나그네는 실업수당 한 푼도 못 받는 실업자가 되었다. 물론 사회보장청(Socialamt)에 최저생계비 지원요청서를 제출하면 최저생계비는 지원 받을 수 있다. 독일은 합법적 체류자가  실직상태에서 생계 위협을 받으면  사회보장제도에 기인한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준다. 이는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사회보장청의 최저생계비 도움을 받을 의향이 아직도 전혀 없다. 십 여년 전,  3년간의 망명수용소 생할을 청산하고 정식으로 독일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무렵,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회보장청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담당공무원의 냉소와 '썩소' 어린 눈 빛을 나그네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 독일 사람들도 도와주기 바쁜데 거지 발싸게 같은 동양놈이 어딜 거져 먹을려고?'

자!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수의 진은 거의 완벽하게 쳐졌다.  '고향 앞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 동안 비축(?)해 논 알량할 정도의 통장 잔액이 달랑거리기 전에 '내나라 내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만약 그 때까지 돌아가지 못하면 나그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팔아 어쩔 수 없이 남의 나라에서 빌어 먹거나(독일 당국으로 부터의 최저생계비 지원)
수 많은 나날들을 고민하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어렵사리 결행한 배수의 진을 스스로 철회하고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나그네는 분단의 현실이 낳은 이시대의 '마지막 정치망명자' 신분을 꼬리표 처럼 달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처럼 비행기표만  구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고향 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나그네는 한국인 여권도 아니요 그렇다고 완벽한 독일인 여권도 아닌 망명자 여권을 가지고 있다. 처음 나그네가 망명을 했을 당시에는 매 2년 마다 갱신을 해야 했다. 지금은 3년차 마다 갱신을 한다. 왜냐하면 나그네는 언제라도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그네는 역시 독일 국적을 취득할  의향이 전혀 없다. 이전 기사에서도 잠간 언급을 했지만, 무슨 거창한 목적의식 때문은 아니고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물론 독일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을 오가는데, 그리고 그리운 어머니와 지인들을 만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실정법과는 무관한, 지구상에서 대단히 힘이 센 나라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독일 국민일 테니까. 나그네는 주변으로 부터 독일국적 취득 권유를 종종 받아 왔다. 그런 권유가 나그네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은 일으켰을 지언정 격랑의 파고로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오지 못함은 나그네의 그릇이 그만큼 작다는 반증인 듯 싶다.

주변머리 없고 융통성 없는 백수의 하루는 지옥이었다

각설하고, 나그네가 독일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독일 당국에 망명 여권을 반납하고 한국 당국으로 부터 한국 여권을 발급 받아야만 한다. 그러하자면 현실적으로 독일 주재 한국 공관에 파견나온 공안 책임자나 한국의 관계 당국과 직접 접촉을 해서 적당한 타협을 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적당한 타협이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러 '내나라 내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전례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관계 당국이,

"잘 결정 했오. 우리는 아무 조건도 없소. 자! 여기 한국 여권이 있으니 조국에 돌아와서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고 그 동안의 불효에 용서를 빌고 효도 하면서 잘 사시오."

이렇게 나오겠는가?  나그네의 생각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아닐 것이다. 최소한 준법서약서나 반성문을 반대급부로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나그네는 반성문을 써야 할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상식적이지만 반성문은 잘못을 한 사람이 그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 쓰는 것이다. 분단 이후 거의 모든 정권에서 운동가들을 전향과 비전향으로 이간질 시켜 왔다. 그 잣대가 '정말 웃기지도 않은' 당시 정권에서 강요했던 준법서약서나 반성문이라는 종이 한 장 이었다. 그 종이 한 장으로 사람의 양심을 재단질 하고 갈기갈기 찢었던 인권살상을 자행했던 것이다.

국가를 빙자해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양심을 종이 한 장으로 재단질하고 진정성으로 함께한 동료들을 이간질 시키는 행위는  파렴치를 넘어 인간 양심에 대한 중대한 범죄에 다름아니다. 역지사지! 만약 이 글을 역대 정권에서 감옥에 갇힌 운동가들에게 준법서약서나 반성문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전향과 비전향의 이간질을 시킨 파렴치한 행위에 가담했던 분들이 본다면 과연 그때 그 대상이 당신 이었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는 분명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감히 단언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지만, 엄혹했던 시절에 온갖 협박과 공갈에 의해 강요된 준법서약서와 반성문에 의한 전향과 비전향의 차이는 그 종이 한 장의 차이 보다 더 얄팍하다는 것을! 또한 그것은 양심과 개인 의지의 무게가 아니라 당시 처해 있던 운동가 개개인의 상황이 천차만별이었을 것이었다는 것도 안다.

예를 든다면 가족이 있다든지, 아니면 혼자만 감당해도 된다든지, 또는 오랜 징역살이에 심신이 쇠약해 졌거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거나...이런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이용해 비록 종이 한 장이지만  사람의 양심을 흔드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반성문은 그 행위를 강요한 자들이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그네는

"그까이꺼 종이 한 장?  그게 뭐라고. 그래, 써 주지 뭐, 싹 무시해 버리고 예전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

하면서 강요에 의한 반성문을 쓰고 나와서 더욱 더 당당하게 소신 껏 사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나그네는 엄혹했던 지난 시기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국가보안법상 금단의 땅인 북녘 땅을 밟았다. 강조 하건대 아무런 정치적 목적도 없었다. 다만  언제 '땅나라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지 모를 이인모 선생의 간곡한 요청으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 놓은  모든 것 벗어 던지고 저승 꽃 만발한 그의 앙상한 손을 잡고 왔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때 나그네가 머물고 있던 아르헨티나에서 당시 한국 당국에 '이인모 선생을 만나러 북한에 들어가고자 하니 허가해 주시오' 한들 허가 해 주었겠는가? 그리고 허가 받고 들어가서 북한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과 나그네의 경우에 무슨 특별한 차이가 있는가. 과문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그네는 아직도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 이후로 나그네는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북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나그네는 그들을 더 이상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그린피스 회원으로 마인강변의 이름 없는 들풀하나로 살아왔다.  그러나 훗 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되는 '그 날', 북녘 들판에 핀 민초들은 많이 만나서 뜨거운 포옹을 하고 싶다. 그러나 관료들은 아니다.

나그네는 지금 의도적으로 한국 당국과의 개인적인 접촉은 애써 피하고 있다. 왜냐햐면 서로 불편하고 어색한 장면이 연출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치 오래 된  옛 날, 꿈 속의 한 조각 처럼 아련하기 만한 그리운 조국 산하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한국의 관계당국과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수속을 밟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접근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이 나그네에게 귀국허가를 주는 대신 요구할 반대급부 때문이다. 그 급부에 맞닥뜨렸을 때 이제는 혼자가 아닌 나그네는 과연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자신할 수가 없다.

나그네는 스스로 사표를 던진 후 붕어빵 아들내미 똥가리도 없고 엄지엄마도 없는  썰렁한 나만의 보금자리에 틀어박혀 사표를 낸 사유에 합당하는, '내나라 내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현실적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다. 당국과의 개인적인 접근은 이미 내려 놓았고, 무슨 다른 묘안이 없을까? 그러나 막상 돌아간다는 결심을 하고 배수의 진으로 과감하게(?) 사표까지 던지고 말았지만 무슨 묘안이 있겠는가.

말 그대로 아무런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고 아는 지인들에게 공표까지 하고 말았다. 지인들에게 여기저기 공표를 한 이유도 배수진의 일환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그네가 올해 안에 두 분을 뵈러 들어가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내일 당장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것 처럼 뛸 듯히 기뻐하셨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치고 나가자는 심산이었지만, 사실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것이다. 오직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내나라  내 땅'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일 터도 없는 상태에서 외출은 커녕 산책도 삼가하고 하루종일 홀로 집에 있으면서 이궁리 저궁리를 해 보지만 마음만 조급해 지고 답답함만 가중 될 뿐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거대하고 견고한 옹벽에 갇힌 장발쟝의 암울한 절규만 신음이 되어 꽉 다문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올 뿐이었다.

온갖 잡다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그네의 신경조직을 무참히 유린하고 처절하게   피를 흘리며 끝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악몽을 수도 없이 꾸었다.  그 악몽 중에는 년 전에 간암에 걸려 이녘 땅 어느 병원에서 나그네와 극소수의 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쓸쓸하게 '땅나라 소풍'을 마치고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는 듯한  이주희 형의  모습도 있었다.

'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약속도 단단히 했다. 올해 안에 돌아가서 엄니가 해 주시는 따뜻한 밥 한끼 알싸한 풋고추에 된장 듬뿍 찍어 맛있게 먹겠노라고... ‚ 그런데 방법이 없다. 길이 없다. 방법, 방법, 방법, 찾아야 한다.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왼종일 어둠이 아닌 어둠, 마음의 심연 속에서 나그네의 온 몸을 칭칭 동여메는 이무기의 포로가 되어 잡다한 생각들과 싸우느라고 배고픈 줄도 몰랐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는지, 이틀에 두 끼를 먹었는지 기억조차 가물했다. 내키지 않은 방법을 가까스로 생각해 내고는 이내 '아니야 이건' 하고 포기하고 또 다른 타협 방안을 떠올리곤 '정말 아니야, 이건'  하고 길고 긴 한 숨으로 날려 버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쓰디쓴 토악질만 나올 뿐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 달, 두 달...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어둠의 심연도 길어지고 건강하던 나그네의 몸도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몸무게는 십킬로 이상이 빠졌고 50대의 중후함(?)을 자랑하던 볼록배는 밋밋한 쪽배가 되었다. 그리고 얄팍하게 비축해 둔 생활비도 바닥이 났다. 조국으로 돌아갈  방도는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모든 것이 꼬며만 가고 있었다.

고립무원, 물론 주변엔 나그네 이외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고역이었다. 잠도 잘 오지 않았지만, 잠자리에 들면 내일 눈을 뜨고 하루가 밝아 오면 또 무슨 잡다한 생각으로 홀로 하루를 보내나 하고 생각하니 그냥 깨어나지 말고 그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소스라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고 엄지엄마와 똥가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어쨌거나 고통의 심연을 벗어나야만 했다.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마음속 고통의 심연을...
우회적으로 나의 귀국 의지를 천명하기로 했다. 이른바 언론플레이였다.  나그네가 현재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귀국의지를 조금씩 언급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는 재정적으로 어려웠던(물론 지금도 어렵겠지만) 초창기 때 오마이뉴스의  청탁으로 '창사2주년기념특집' 기사를 작성해 보낸 인연이 있다. 그 때 나그네는 독일 전역을 돌며 취재를 했는데 오마이뉴스는 어려운 재정임에도 불구하고 취재비를 두둑히(?)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독일 여러 구역을 돌며 숙식비, 교통비, 그리고 원고료 등을 포함하면 가난한 나그네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나그네는 혼자였고 오마이뉴스의 고군분투와 노고를 생각해서 어려운 재정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사양하고 모든 경비를 자비로 충당했던 인연이 있는 친근한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 때 인연을 맺은 기자가 김경년 기자다.

나그네의 졸고가 간간히 오마이뉴스에 오르내리던 어느 날, 서울 소재 어느 공중파 방송국의 이른바 교양프로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와 우리 가족을 취재하겠다는 것이다. 그 때 오마이뉴스의 위력을  실제적으로 실감했다. 그러나 나그네는 잠깐의 고민 끝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그 공중파 방송의 현재 속성상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로 흘러버릴 공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그네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적으로 귀국의사를 천명하고 직간접적으로 나를 아는 분들께 도와달라고 정식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기사를 보고 다른 공중파 방송인 M방송국의 노조출신 PD님으로 부터 또 정식 취재요청이 들어왔다. 그 방송국의 노조출신인 현 강원도지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그네가 그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응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공교롭게도  곧 이어 '낙하산출신'이라고 인구에 회자되는 사장과 PD수첩으로 대표되는 분들과의 싸움에서 그 분도 그 프로의 담당을 그만두고 대기 상태로 있다는 답신이 왔다.  그 분은 미안하다면서 다른 프로를 맡더라도 나그네의 귀국을 도와주겠단다. 고마운 일이다. 그 분도 현재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텐데. 이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냉혹한 현실에 굴복한 사오정 백수, 다시 빵공장의 막내가 되고

나그네는 지금 인내와 고통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가까스로 빵공장에 취직을 했다.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수진으로 사표를 내고 스스로 백수가 되어 집에서 홀로 몇 달간을 지내며 조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모색해 보았지만, 아직도 그 길은 요원하고 조금 모아 놓은 생활비는 집세 등으로 야금야금 다 까먹어 버렸다. 나그네가 이직을 다시 결심하게 된 것은 홀로 된 백수는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거니와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몸은 물론 정신까지 황폐화 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겪었음에랴.

천우신조인지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머리까만 동양인이 현지 젊은 사람들을 제치고 다시 취직을 하였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일단 생활고 걱정에서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 만큼은 잡생각이 틈입할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한다. 물론 이젠 젊은 나이도 아닌데 전공도 아닌 새로운 일을 현지 이삼십 대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죽을둥 살둥' 버둥거리고 있기는 하다. 특히 빵공장이란 것이 여간 일이 고되고 많은게 아니다. 엄지엄마는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 잘 됐네, 여보! 독일 빵이 얼마나 맛있게요. 한국에서 독일 빵은 인기도 좋으니까 빵 만드는 기술 배워오면 참 좋겠다. 응!"

대규모 빵공장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다만 인간은 거대한 자동화 기계의 부속품으로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나그네는 앞으로 짬짬히 몇 달간의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들어간 독일 빵공장의 풍속도에 대해서 글을 올리려고 한다. 그리고 언제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갈지 아직은 요원하지만, 생활이 나를 속일지라도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받아 안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몇 달간의 자의에 의한 백수 생활과 오십대에 새로 이직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일과 새 일 터의 삶은 나그네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고 가르쳐 주었다. 그 동안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 참! 꼭 언급해야 할 말이 있다. 나그네의 귀국의지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님이신 전종훈 신부님과 김용철 변호사를 도와 '골리앗' 삼성과의 싸움으로 유명한 이덕우 변호사님께서 신경을 써 주시고 계신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직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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