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산을 아느냐?

산에 오르며 나는 자연과 사람 사이 그리고 욕망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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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eurocom)등록 2011.06.13 10:05
"생로병사" -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입니다. 부하면 벗이 모여들고, 가난하여지면 벗들이 적어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말은 다들 아시다시피 제나라의 유능한 재상인 맹상군이 총애했던 그의 3,000 식객 중의 한 사람이던 '풍환'이 진나라와 제나라 왕 사이에서 농간을 부려 맹상군을 다시 빈객제나라의 재상으로 앉혔을 때, 몰려든 식객들을 물리려 한 맹상군에게 한 충고의 말(고언)입니다.

제나라 땅 설 마을의 제후였던 전영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죽자 설薛의 제후가 된 맹상군은 빈객들을 자신과 같이 예후하여 그 수가 3,000을 헤아렸고, 신분의 차별 없이 퇴청 후에는 그들과 저녁과 술을 즐기며 세상사를 논했다고 사기열전에는 전합니다.

명성이 알려진 맹상군을 진나라 왕이 초청하여 재상으로 삼으려 하다가 주위 신하들의 반대로 거꾸로 옥에 가둬 죽이려 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대접만 받던 빈객들 중, 개소리 좀도둑과 닭 울움을 잘 내는 성대모사의 달인들이 있어 무사히 살아 제나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조나라의 한 고을의 읍주가 그의 키작음을 빗대어 흉을 보자, 그를 사랑하던 빈객들은 그 고을에서 맹상군을 흉 보았던 사람들을 몰살하기도 하지요.

맹상군은 빈객들을 자신보다 더 우대하며 그들이 가진 능력을 인정해 준 참사람이었고, 그의 빈객들 또한 맹상군이라는 현자를 알아 그로부터 인생을 조화롭게 같이 한 현명한 재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뭇 사람들의 입에 맹상군의 사람됨과 사귐이 회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 중,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반갑고 즐거운 것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렵고, 힘들고, 때론 더럽고, 유치한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실상을 생각하면 살아가는 동안 만남이라는 것은 연속 사방무늬처럼 흔한 것인데 말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부부의 연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도 영원한 만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그 인연에 목말라하고, 목매이고, 매달립니다.

신약에서는 적그리스도를 네로라고 합니다. 이 지구상에 생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간은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탄생은 종교상의 창조설과 과학상의 진화설의 충돌은 차치하고 진실은 어떻게 생겨난 것입니다. 아직 어떤 과학자도 100% 사람의 탄생과정에 해답을 내리지는 못합니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은 과학상의 설명이지, 원숭이와 인간의 유전자가 99% 같다고 해서 원숭이가 인간의 종족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태양이 존재하여 태양계가 그 질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아무리 지구온난화와 인간들의 무분별한 지구 파괴가 계속되어도 이 나라의 심한사온은 다소 열대의 영향을 받는다 해도 존속할 것입니다. 높지 않은 지역 산을 아이들과 같이 오르다 문득 사람이 그리워 사람과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가 생각 나 스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해 자문해 보았습니다.

6월의 햇살은 마치 대기권의 안정 층을 파괴한 괴력으로 따갑게 이마를 자극하고, 자외선의 정열은 피부의 노화와 피부암의 원인제공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듯 가시광선을 마구 쏘아댑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다보면 살갑게 달라붙는 수줍음 많은 바람이 전신을 애무하고, 농도 깊은 산소로 무장한 나무들이 맹상군의 3,000 빈객들 못지않게 대접해 줍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나무도 바람도 다들 자신만의 이름과  명성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낙엽활엽교목들의 활약이 눈부신데(?), 우리나라의 산에는 대부분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 왕벚나무, 잔털벚나무 등이 가장 많이 자생하고, 물론 군데군데 서어나무, 이팝나무 등도 보이지만, 역시 가장 많은 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른 우리의 나무 중의 나무, 친근한 벗과 같은 소나무입니다.

정상에 올라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저 북녘의 민둥산들과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세계4대 갯벌 중의하나인 천연의 바다생물군의 보고인 강화갯벌의 위용과, 고려 고종을 살리고 죽은 손돌의 무덤이 있는 덕포진을 보며 억울하게 죽어간 고려 조 한 뱃사공의  넋에 위로를 드려봅니다.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한다는 5월과 6월, 산의 푸름과 바라보이는 풍경의 서두를 것 하나 없는 느긋함의 정경이 삶의 고달픔과 애잔함에 차양을 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가 애지중지, 아비규환하며 얻으려하는 그 많은 전리품인 아파트(집)도, 농토도, 땅들도, 모두 한갓 성냥갑이나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이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자신이라는 귀한 존재를 송두리째 내던지며, 마치 '메시아'의 도래가 두려워 젊은 선지자인 여호수아를 빌라도에게 팔아버린 유대의 광신자들이나,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의 주인공처럼 공동묘지로 달려가 미친 듯이 땅을 팝니다.

경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여유와 권력은 맹상군처럼 빈객들과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원천이 됩니다. 동물은 배가 고파야만 살생을 합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신보다 연약한 동물을 해할 수밖에는 없는 것, 이것이 약육강식, 자연 순환의 이치입니다. 사람도 동물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이성 인격체인 사람은 동물과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살생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배고프지 않아도 살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생활과 남들보다 더 찬란한 개인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은, 때로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옵니다. 살생이라는 것은 죽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한, 권력의 야욕을 거대한 탐처럼 세우기 위한 본능적인 투쟁도 이름 합니다. 단 몇 %의 엘리트들을 위해서 희생되는 대다수 존재들의 허무함, 좌절감, 낭패, 패배주의 모두 살생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 같은 삶의 추구를 목표로 했다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실험도 종국에는 독재의 그늘을 걷지 못하고 밀실권력들의 헤게모니만을 양산하다가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지금 그래도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중 최고라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비교적 능력이라는 잣대가 이성으로 허용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 최고의 민주정은, 노예제와 여성의 참정권 제한 등의 몇몇 제도만을 제외하면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로마정치였습니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고 어렵습니다. 자칫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무턱대고 준비 없이 내려가다 보면 무름 연골에 심한 무리가 와 부어버리는 현상이 종종 발견됩니다. 언젠가 저도 11월에 준비 없이 운동화 차림으로 설악산을 오른 친구와 내려오다, 그의 무릎이 즉석에서 부어버리는 바람에 무려 7시간 이상을 산에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경험 없이 산에 오른 아이들에게 조심조심을 강조했건만, 결국 한 아이가 미끄러져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경사도가 가파르지 않아 별 탈은 없었지만 위험한 일이었지요. 등산 중의 고마운  시원시원하고 살가운 바람도 아이의 실족을 막아주지는 못하더군요.

산에서 본 나무와 바람, 그리고 자연의 깊이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원할하게 조정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인 관계의 미숙이 불러오는 불안정한 생활의 리듬과 사회적인  존재의 미약함에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지천명이 다가오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라는 카오스(혼돈)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에 차가운 괴리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내려오는 하산 길.

올라가면서 만난 우리 토종의 고마운 나무들이 안녕히 가시라고 목례를 합니다. 어느새 늦게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과 등산길의 수목들과 꽃들에게, 그리고 고마운 바람에게도 정겹게 인사하며 내려오는 자신을 바라보는 어색함. 욕망의 자제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자연의 고마움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는, 오늘도 자연이 만들어 준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교류가 주는 목마름에 물을 선사해보는 알맞게 좋은 하루입니다.

덧붙이는 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무게 달기
*기사라기 보다는 이야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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