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밴드에게서 이 나라 진보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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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zuno68)등록 2011.07.25 14:21
주말 저녁에 티비를 켜면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토요일 밤에 하는 [탑 밴드].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밴드의 꿈을 꾸고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락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곡에 따라 다양한 편곡이 등장하고 있는 중에서도 관객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압도하기 위해 가수들은 락이라는 장르를 선택하곤 한다. 이것을 봐도 락이라는 것이 아주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은근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밴드가, 그것도 락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어필되어 소위 돈벌이를 하기는 쉽지가 않다. 몇 주 전에 전설의 락스타들의 현재를 살펴보는 다큐가 하나 방영되었다. [탑 밴드]나 [나는 가수다]의 흥행 바람을 타고 락 밴드의 전설들을 찾아나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한 이들 모두가 한 시절을 풍미해 왔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게다가 그들의 어려움은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애틋함을 넘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데, 아마 이런 것이 나 혼자만 느끼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락 밴드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 생활고에 못 이겨 다른 장르로 옮기거나, 또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소위 대중가요라는 분야의 노래를 부르는 사례도 나왔다. 이런 경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같은 동료로부터 배신했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장르의 노래를 한 가수들도 그 점을 너무도 당연하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락 밴드는 꼭 이 나라 진보정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락 음악이 갖고 있는 자유와 저항의 정신... 이런 정신들에 대한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이것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지켜줘야 할 필요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벽을 쌓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기 시작한다면, 락의 정신은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음악이 갖고 있는 보편타당성은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나라의 진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선명성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선명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배척하기 시작한다면, 이들은 선명성은 갖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중과 함께 하는 정치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락 음악이라는 것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끼리만의 벽을 치는 순간, 비주류의 음악으로 변질되고 일부들만의 음악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락 음악이란 것은, 젊은 치기의 한 때의 열정으로 하는 음악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락 음악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의 희귀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나이가 들어 더 성장하면 밥벌이를 위해 음악에서도 멀어지게 되기도 하고, 그냥 듣기 쉬운 대중가요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가치가 변질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유와 저항 한번 외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가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와 저항이라는 것은 젊었을 때 한번 쯤 해볼 수 있는 치기어린 행동으로 취급받고 만다. 자유와 저항은 변질되는 가치가 아니다. 다만 젊었을 때와 표현 방식은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을 예전의 모습처럼 하지 않는다고 배척하기 시작하면, 결국 배척받은 사람들은 자유와 저항 정신마저 그냥 남의 것으로 여기고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있다. 락과 힙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지만, 이들이 시작된 바탕에는 똑같이 자유와 저항이라는 코드가 있다. 이들이 노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락을 하는 사람과 힙합을 하는 사람의 기본 메시지가 다르지 않듯이,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한다고 그들의 본질마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야권은 통합논의가 한참이다.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정당과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정당이 통합 논의를 하려 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려는 세상은 노동자와 시민이 다른 세상이 아니다. 시민이 곧 노동자이고, 노동자도 곧 시민이다. 그런데 노래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이를 사과하고 증명해야 한단다.. 밖에서 보면 그저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밖에서는 대형 기획사(?)가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 걸 그룹 음악도 내밀고, 뽕짝도 디밀고, 심지어는 자기들이 락 음악에, 힙합도 하는 사람이라며 모든 장르의 음악에 두 손을 대고 있다. 아마 인기만 끌 수 있다면 비키니를 입고서 락 음악을 하고, 반짝이 자켓에 힙합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영혼도 가치관도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맞서 싸우면서 그들에게 이기려면, 락 음악이든 힙합이든 어떤 장르를 선택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들에게 우리의 음악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울리는 그런 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서로 자신들의 장르가 더 나은 것이라고만 주장하며 싸우려들면 과연 그들의 음악을 진정성이 있는 음악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저들처럼 깊이도, 울림도 없는 겉절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느냐가 아니고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내 음악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락 음악이든 힙합이든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각자의 장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람들이 합쳐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의 정당 이름으로 각자의 락을 하든 힙합을 하든 내가 추구하는 정신을 잃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 다양성을 가진 정당이 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제 개인블로그에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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