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령들 죽어서도 차별 받는다

[국립묘지 집중해부④] 6·25 참전경찰, '징계면직' 이유로 호국원 안치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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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ideaed)등록 2011.09.03 17:44
"5공 군사반란세력의 핵심 고 안현태씨는 현충원에 기습안장하면서, 6·25에 참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나의 부친은 자유당 정권 때 '징계면직'을 받았다는 이유로 호국원 안장을 거부당했다. 이러한 처사는 힘없는 소시민은 죽어서도 차별받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서울 동대문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소의영(58)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6·25 참전경찰도 국립호국원에 안장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5월 전남 완도 선산에 모셔두었던 부친을 국립호국원으로 이장하기 위해 이장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소씨의 부친 소길환 선생은 경찰학교를 나와 1949년 5월에 경위로 임관하여 전라남도 해남, 부안 등지에서 경찰학교 교관을 지냈다. 그는 경찰신분으로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1953년 8월 퇴직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경찰에 입문하여, 한국전쟁 4년 간 경찰로 복무한 뒤 1953년 7월 이루어진 정전협정과 거의 동시에 퇴직했다.

국립호국원의 안장기준에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 소속의 의용경찰 및 기타 사실로서 참전사실이 확인된 자'를 포함하고 있어 소길환 선생은 명실공히 '참전유공자'로 호국원에 안장 될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소씨는 국가보훈처의 심사위원회에서도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안장불가 판정을 받게 되어 소씨가 이천호국원 현충과에 문의해보았더니 "경력증명서의 퇴직사유에 '징계면직'으로 되어 있어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묘지 안장 결격사유로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을 정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1959년 민주당 일원들 모습 앞줄 가운데 장면 전국무총리, 앞줄 우측 국회의원 김선태 무임소장관,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소길환 선생 ⓒ 김민석


이에 대해 소씨는 사진을 보여주며 부친이 "퇴직 후 25세의 나이로 민주당적을 가지며 자유당 정권아래에서 장면 부통령을 도와 야당정치인으로 활동할 정도로 정의롭고 강직한 성격을 가졌던 분"이라며,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벌어진 공비토벌 작전 중에서는 양민학살과 관련된 부당한 명령도 부지기수인데. 부친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러한 명령을 따르지 않아 징계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벌써 60여 년 전 일이라 남아 있는 자료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국가보훈처의 심사기준에 대해 "안현태, 백선엽 나아가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친일세력과 군사쿠데타 세력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이름 없이 목숨 바쳐 싸웠던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서 천수를 다 누리고 간 사람은 현충원에 안장되고, 힘없는 사람들은 막연히 징계면직을 당했다는 이유로 호국원에 안장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죽어서도 누리는 권력의 횡포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정택 이천호국원 현충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살인과 강도 등의 반인륜적 범죄는 호국원에 절대 못 오지만 그 밖의 죄명 중에서는 국가보훈처 안장대상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구제되는 경우가 있다"며 "안현태씨는 안장심사위원회에서 나온 판결문을 바탕으로 적법하게 한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는 5·18민주묘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에 실형을 받았다는 이유로 망월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5·18 유공자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이사는 "이제껏 상습도박이나 사기죄 같은 작은 과오만 남아 있어도 국가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심의를 받을 수 없었다"며 "5공 권력형 비리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안현태가 국립 현충원에 들어왔다는 것은 고무줄 잣대로 심의가 이루어졌음을 뜻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심경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도 "범죄 형량이나 벌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는 법이 있어 5·18 유공자들 중에도 5·18묘지에 안장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며 "고 안현태씨가 안장 심사 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렇듯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호국영령들과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민주화영령들은 죽어서도 차별받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대역죄를 저질러도 사면 복권되어 현충원에 묻히고, 힘없는 소시민들은 작은 죄에도 국립묘지에 한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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