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고 이소선 열사' 학내 분향소 강제철거 통보

정치적이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학교에 보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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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산(ghtks7)등록 2011.09.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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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리, 포이동, 두리반... 그야말로 철거가 유행하는 세상이다. '강제철거'의 바람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 결국 대학교 내에까지 들어왔다. 학교 내에 마련된 '故 이소선 여사' 분향소 강제철거 통보가 그것이다.

지난 9월 5일 서강대 대학생사람연대는 학내에 故 이소선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차렸다. 한 시대를 노동자와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 가신 분에 대한 예의로, 80년 민주화 운동 당시 목숨 바쳐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동문 선배 '김의기 열사'가 모셔진 곳 옆에 분향소를 차렸다. 지난 3일 간 많은 학우들이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 했다.

분향소에 마련된 방명록에는

"실천 없는 배움만 남은 대학에서 햇빛이 부끄러워 글을 남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 위에서 걱정할 일 없는 세상 되도록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어머님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대학 들어와 처음으로 읽은 책이 전태일 평전인데, 그의 삶이, 분신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고 살아 있다 생각합니다. 그의 뜻을 받드신 어머니 편히 쉬십시오."

등 고인을 기억하고, 그 뜻을 잊지 않겠단 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던 중 분향소 설치 3일째 되는 오늘, 학교 측에서는 "내일 국제인문관 준공식에 관련하여 학내에 귀빈들이 많이 참석하시니, 의기촌에 설치된 故 이소선씨 분향소를 철거해 달라. 만일 거절 시 강제철거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故 이소선 씨의 분향소의 경우, 정치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다. 둘째, 아무리 민주화 투사라 하더라도, 학내 동문도 아닌 사람을 왜 굳이 학내에서 분향소를 설치하느냐. 셋째,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을 비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귀빈'들이시기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향내가 그리도 거슬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학내 신축 건물 준공식에 오는 '귀빈'들이시라면 얼마나 높으신 분들일지 감이 오기도 한다만.

이를 통해 학교는 돌려서 말한다. 정치적이지 말라고. 학내에서 정치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다면 묻는다.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그 '정치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며, 그 사람들이 느끼는 그 불편함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이냐고.

고 이소선 열사는 아들 전태일 열사를 먼저 보낸 후 반 평생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래 '노동자'라는 표현까지도 불편하다면...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이 법을 몰라서 당하는 일이 없도록 '노동교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자신의 아들처럼 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헌법이 말하는 '민주와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를 만드신 분이 고 이소선 열사다. 그렇다면, 이렇듯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반평생을 살다 가신 그 분의 분향소를 보며 불편한 마음을 가질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학교는 누구를 위해 분향소에 켜진 촛불을 끄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 답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너무도 명백하며, 학교가 누구를 배려하고자 하는지 또한 그렇다. 다만 글로 쓰기 부끄러워 다 담지 않는다.

학교가 제시한 협상안이 있다. "그렇다면 내일 행사 기간 중에만 잠시 철거하고 다시 분향소를 설치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아 지독히도 아름다운 학교여.

우리학교 화장실 각 칸마다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서강 교육은 가치 지향적이다."
"서강 교육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명한다."
"서강 교육은 능동적인 생의투신을 위한 준비이다."

서강 교육 헌장이다. 우리 학교의 교육 헌장은 채 화장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분향소를 설치한 우리는 학교의 그 협상안을 거절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올곧게 반평생을 살아오신 분을 모시는 분향소가, 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철거되어야 한다면 이는 곧 그 분의 삶을 배반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 한다. 학교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교육헌장의 내용을 화장실에서 꺼내 지키려 한다. 아침이 되면 학교 측에서는 분향소를 철거하려 할 것이다. 학교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9월 8일 내일 오전, 의기형님의 앞에서, 그리고 촛불이 채 식지 않은 故 이소선님의 분향소 앞에서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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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부디 채택이 되어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철거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아무데서나 사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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