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쓸쓸한 주말 보내기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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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jirisani)등록 2011.09.28 13:30
서울살이 6개월 째, 9월 들어 세 번째 주말입니다.
뇌리 속은 온통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으로 구성된 남녀 학생 대여섯 명의 노숙사건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쯤인가? 일찍 출근한 저희 사무실 직원이 화장실 문을 무심결에 열었는데 대여섯 명의 중학생들이 화장실 바닥에서 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참 별 놈들도 다 있다'하고 그날은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 날 역시 아침에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그 어린 녀석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그 말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어떤 친구는 "후배들을 때렸다고...", 또 어떤 녀석은 "담임선생님께 대들다가...학교에서 징계 받고 집에서는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학교는 못가고 집에서는 부모님께 쫓겨나고 오갈 데 없어 남의 사무실 화장실을 무단점거 하고 있었는데 질풍노도와도 같다는 그놈들을 미워할 수도 격려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참으로 난감한 한 주일이었습니다.

보호받는 나무 . ⓒ 지리산아이


▲  무료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별 의미없이 올라보는 산길인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야무지게 방호시설을 해놓았습니다. 이놈들은 그래도 그 아이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무2 . ⓒ 지리산아이


▲ 이 나무 저 나무 할 것 없이 아주 꼼꼼하게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서울시내 . ⓒ 지리산아이


▲  저 밑 어디에선가는 "서울 시장 보궐선거가 어떻고 모 교육감이 그럴 줄 몰랐네 아니네, 어떤 종교가 좋네 나쁘네, 그런데 나는 절대로 아니네"하면서 겉으로는 평온하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아픔은 전혀 염두에도 없을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노을 . ⓒ 지리산아이


▲  주말의 해가 서산으로 기웁니다. 오늘밤에는 그 아이들이 또 우리 사무실 화장실을 찾을 것인가? 몇 푼 쥐어준 돈으로 오늘은 굶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고개 숙인 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킨텍스 . ⓒ 지리산아이


▲  새날이 밝았습니다. 잘 아는 후배의 전화로 이곳 일산 킨텍스를 찾았습니다. '좋은학교박람회'라고 쓰여 있는데 전국의 좋은 학교들만 골라서 모아놓았습니다. 좋은 학교에서는 좋은 학생들만 있는지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그야말로 좋아 보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각 학교 부스 . ⓒ 지리산아이


▲ 전국의 좋은 유. 초. 중등학교가 다 모였습니다.

장기자랑 . ⓒ 지리산아이


▲ 재간 있는 학생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 ⓒ 지리산아이


▲  이 순진하고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학생들도 잠시 후에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자던 그 녀석들을 만난다면 배고픈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 일산에도 학교와 가정에서 냉대 받고 길거리를 헤매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로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께 대들었다고 후배를 두들겨 팼다고 우리 모두가 미워하고 방치해 버린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너도 나도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스킨십 한번이면 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풀어지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마음을 얼게 하고 행동을 난폭하게 한 것은 결국 말 잘하는 지도자요, 이 사회에서 폄하된 선생님들이요, 생계를 위해 물불을 가릴 겨를이 없는 학부형과 이 땅의 모든 어른들 아니겠습니까?

표 한 장 얻기 위한 말잔치 끝에 선심용 예산이나 전시용 시설로 내 책임은 다했네 하시지 말고 단 한사람이라도 보듬어 달랠 수 있는 진실된 제도적 장치가 참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십자가와 까치집 . ⓒ 지리산아이


▲  제가 우연히 찍고 가끔 들여다보는 사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이름 모를 들풀도 다 먹여주고 입혀주신다고 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지만 하물며 그 녀석들도 예수님의 모습을 한 사람인데 철딱서니가 없으나마 순진한 구석이 있던 그놈들을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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