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 원 세대의 비상식적 사회 혁명론

[서평] <고어라운드> 청년들이여 세상을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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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ideaed)등록 2011.09.29 14:55
"정규직이면 살고, 비정규직이면 죽는다!"

만성불안증에 걸린 이 시대 청년들의 머릿속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저마다의 꿈을 저당 잡힌 채 어떻게든 정규직 티켓을 따기 위한 우리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겹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40%가 안 되고 정규직이라 해도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계열사 일자리는 박봉에 불안하기만 하다. 그나마 있던 좋은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고,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 목록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스펙 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단연 학벌이다. 한해 무려 1000만 원이 넘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도권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따야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해버린 대학은 인간으로 대접을 받기 위한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 한 사람에 대한 인상과 평가는 무엇보다도 학벌로 정해진다.

시민권처럼 되어버린 빚내는 대학졸업장은 워낙 비싸 아르바이트로 벌어서는 턱도 없다. 등록금만 한 해 평균 1500만 원이 넘는다. 방세에 교통비에 식비에 이런저런 생활비를 합하면 아끼고 아껴도 2000만 원은 우습다. 가끔 외식도 하고 영화관도 가고, 젊을 때 연애라도 하려 하면 2500~3000만 원도 바라본다. 이 돈 4년이면 억은 그냥 넘는다. 

물론 국립대는 사정이 좀 낫다. 하지만 서울의 유일한 국립대였던 서울대는 법인화를 앞두고 있다. 덩달아 국립부산대와 국립부경대는 통합논의가 한창이다. 이어서 법인화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국립대 비율이 가장 낮고, 고등교육 예산 지원비율도 가장 낮아 OECD 평균에 접근하려면 국립대를 새로 세워도 모자랄 형국이다. 그런데 오히려 대학경쟁력 강화 운운하며 국립대를 줄이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대학 교육조차 사학재단의 횡포에 시장화된 지금 국립대를 줄이려는 진짜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부산대 총학생회는 8월 11일 오후 부산대에서 "부산대와 부경대 통합에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고 입장을 밝혔다. ⓒ 부산대 총학생회


올해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값등록금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은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반값등록금 공약을 뒤엎고 지난 6월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 달 뒤에는 명목등록금 인하 대신 소득구간별 차등지원을 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10월이 다가오는 지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지난 22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학업포기 대학생 증언대회'에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제적위기에 몰린 학생들은 눈물로 어려움을 호소해야 했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빚쟁이가 된다. 정부와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엔 눈을 감은 채 빚을 권하고 본다. 돈이 없으면 대출받고 취업 후 이자와 함께 갚으란 얘기다. 하지만 빚과 이자를 갚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100:1은 기본, 심지어 1000: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생존티켓을 따기 위해 오늘도 청년들은 도서관에 앉아 토익책을 편다. 그들은 스펙에 미치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열의를 불태운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스펙을 이긴다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단기인턴, 국토대장정, 해외봉사 활동 등을 하며 기업에 열정적으로 충성하고, 열렬하게 구애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만큼은 바늘구멍을 통과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훌륭한 인재이자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물론 이와 달리 사회에 부조리를 느끼고 불의에 분노하고, 자본의 노예가 되길 거부하는 청년들도 곳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시장지상주의 나라에서 반기업적 태도는 혐오의 대상이 될 뿐이다. 활동가와 투사들이 모여 저항하는 단체는 친북좌빨로 매도당하고, 활동가가 되지 못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듣기 싫으면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 삼성맨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와 삼성맨을 부러워하는 친구 앞에서 자본을 비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등록금, 아니 당장 밥을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친구 앞에서 사회 구조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하는 것은 사치가 될 뿐이다. 이래가지곤 설득은커녕 성향을 숨기며 적당히 맞장구쳐주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기득권이 내세우는 구조의 논리에 지치고 지치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어'라고 체념하고 만다. 희망을 크게 가졌을수록, 세상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의지가 크면 컸을수록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는 사회와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 냉소를 흘린다. 이어 난 뭘 해야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에 잠긴다.

이런 우리세대는 '88만 원 세대'라 이름 붙었다.

<고어라운드> 88만 원 세대의 제 2라운드는 이제 시작

<고어라운드> '고어라운드'는 착륙을 시도하던 항공기가 위기를 피하기 위해 궤도를 수정해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말한다. ⓒ 라이온스북스

이를 지켜보던 열혈청년 이승훈은 화를 내면서 <고어라운드>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사회청년세대에게 불어 닥친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마지막에는 88만 원 세대가 꿈꿔야 할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는 책의 제목대로 88만 원 세대의 제2라운드는 이제 시작이라고 외친다.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를 필두로 무수히 많은 청년담론 책들이 팔려나갔다. 한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절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바라본 청년세대의 문제점 진단에 불과했고, 어설픈 위로를 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한계가 드러나 있었다.

이에 반해, <고어라운드는>는 청년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저자가 보여주는 지독한 현실은 여태껏 출판된 책들의 기성의 저자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보다 더 뜨겁고 더 날카롭게 가슴 한 구석을 큰 고통으로 후벼 판다. 그리고 저자는 순응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했다고 변명할 것인지 묻고 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저자는 물질적인 부가 곧 행복이라는 공식은 사회체제의 세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 또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5%만이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갖가지의 기준과 자격증을 요구하며 장사를 한다. 이렇게 가다간 성형수술도 취업조건이 될 듯하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해질수록 행복은 점점 줄어들고, 세상은 또다시 얼토당토않은 여러 가지 조건을 더 만들어내고, 다시 우리는 거기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몇몇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의 토익점수가 바로 성실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모든 지원자가 성실했는지 토익이 변별력이 떨어지자 '토익스피킹' 열풍이 불고 있다. 훗날 취업준비생들이 영어를 잘 말하게 되면 '토익라이팅'이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야한다. 이것을 부수기 위한 잠재성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우리세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멍청한 열정가가 바꾼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먼저 순응주의를 버리라 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지"라는 말은 문제제기와 해결을 막아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라 지적한다. 우리가 자유로워 지고자 한다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의 장벽을 우리 세대가 힘을 모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썩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은 타협에 등 돌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성화 되어 있는 긍정이데올로기와 낙관주의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저자는 경제지표가 다시 상승한들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얼굴을 땅속에 처박은 채 가장 얌전한 사냥감이 되어주는 타조의 모습은 근거 없는 낙관 속으로 도피하는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냉소주의야 말로 우리들의 심장을 갉아먹는 세 치 혀라고 말한다. 냉소주의자들의 특징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며 이들은 뭔가를 바꿔보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의욕을 잃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잘 안될 때마다 "그것 봐, 안 되는 거라니까"라고 비웃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건국 이래 몇 백번은 냉소주의의 수렁에 빠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희망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똑똑한 냉소주의자들이 아니라 멍청한 열정가"라고 역설한다.

"우리 인생과 시대는 우리가 책임지자"

책 말미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교육시스템에 의해 '분류'된 것이지 우리 인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며 거대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변혁을 꿈꾸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의 기준과 상식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금 대한민국 20대들이 해야 할 도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긋지긋한 삶의 무게를 그대로 짊어지고, 이 절망의 사슬을 그대로 걸고, 나 자신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스테판 에셀은 최근 <분노하라>는 책에서 이 시대의 청년들은 총대를 넘겨받아 분노하라고 호소했다. 자신이 나치즘에 분노했듯 청년 모두가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는다면 우리는 참여하는 투사로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일갈한다. 무관심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를 잃게 되는 것이자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청년들이여, 착한청년이 되지 말자. 순한 양이 되길 거부하고 분노를 표출하자. 그리하여 역사 앞에 당당해지자! 우리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저 통장의 잔고가 우리의 이름을 대변하지 못하도록,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졸업장이 우리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내 인격도 가능성도 모르면서 서류상의 숫자들로 나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나를 넥타이 맨 바보로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 인생과 시대를 이제는 우리가 책임지자.

미흡해도 우리 인생과 시대는 우리가 책임지자. 그 한마디가 하고 싶었다. <고어라운드>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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