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유시민과 이정희를 평해본다

[서평] 이정희, 유시민, 이정무 <미래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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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reltih)등록 2011.10.05 14:06
지난 9월 25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는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에 관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 건은 의결정족수인 2/3에 단 15표가 모자라는 510표(64.8%)로 부결됐다.

지난 6월에 출간된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와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유시민, 이정희, 이정무 저, 민중의소리 펴냄)는 출간 때부터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놓고 진보 진영에서 의견이 격하게 엇갈리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진보>가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실제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는 책을 만든 이들에게 관심법을 쓰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쨌든 9월 25일 당대회는 이런 논란을 어느 정도 일단락 지었다. 그래서 당대회 결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필자도 조금은 정리된 마음으로 <미래의 진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혹여나 정치인 이정희와 정치인 유시민의 인간적인 매력과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미래의 진보>를 읽으려 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목차에도 잘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이슈에 대한 두 정치인의 견해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그러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필자가 쓰는 서평도 다소 무겁고 밋밋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았다. 결국 장고 끝에 두 정치인의 대담을 기초해서 각각에 대한 인물평을 쓰기로 했다. 지금부터 쓸 내용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독자 분들의 취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둔다. 혹시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달라. 정치란 원래 당파적인 것이니.

진정성, 이정희가 지닌 양날의 검

"가끔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지요. '착하게 살아야지'(웃음) 기질보다는 노력의 결과라고 봅니다.(웃음)"

그녀 자신의 말대로 정말 이정희는 착하다. 필자가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서 그동안 보아온 모습도 그러하다. 만약 이정희가 자신의 착함을 연기하는 것이라면 그는 국내 최고의 연기자다. 그녀의 착함은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거짓으로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성이 항상 누구에게나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이정희 대표는 2010년 10월에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서 홍역을 겪었다. 그녀의 '진정성 있는' 대답은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개혁성향의 언론들까지 비난을 했다. 그 상황에 대한 질문에 이정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시의 입장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배경이라는 차원에서 말씀 드릴게요. 일단 저는 이런 이분법이 싫어요. 늘 남북관계, 한미관계에서는 방어막을 치는 게 일반적인 수사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더하지요. 나는 북을 비판하지만 무엇을 정부가 잘못했다, 나는 반미는 아니지만 이것 이것은 미국이 문제다. 딱 전제를 하고 들어가요. '나 이런 사람 아니야, 의심하지 마',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도 늘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게 속상해요. 전제에 묻히고 싶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호적인 사람들도 'A라고 이야기하면 되잖아, 안 그러면 B로 몰리게 돼'라고 충고를 해요. B로 몰리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이분법을 깨고 싶은 것이 많아요."

사실 이번 9월 25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논란이 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도 이정희의 진정성과 관련이 있다. 사실 이정희 대표는 2008년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영입되면서야 민주노동당에 입당을 한 늦깎이다. 그 이전에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를 지지했으며 2007년 대선 예비경선에서 한명숙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정희 대표의 해명대로 당시에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열린우리당과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런 정치적 성향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모멘텀을 만들어냈고 적지 않는 반대와 우려 속에서도 통합을 굉장히 '진정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정희 대표는 아마도 여건이 조성되면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도 굉장히 '진정성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본다. 만약 연립정부 추진이 본격화된다면 민주노동당은 또 한 번 엄청난 홍역을 겪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정희의 진정성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 진정성이 어떻게 정치화되느냐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는 현실주의자, 유시민

어떤 사람은 유시민을 '불온'하다고 평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유시민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다. 단언컨대 현실주의자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만 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주의자의 머릿속에는 정치적 계산만 가득 차게 된다.

현실주의자 유시민은 FTA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입장이) 바뀌었다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통상개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입니다...(중략)...FTA,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중략)...어찌 되었건 당시 협상단에서 최선을 다해 협상을 했고, 당시로는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자고 하는 게 제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비판을 하는 분들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현실주의자 유시민은 무상의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보다 현실적으로, 좀 더 솔직하게, 말 그대로 무상의료를 하면 수요 증가와 공급부족, 가격 상승 압박 등으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 같은 공급자 통제방안도 이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병원과 의사 등 공급자들의 반발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환자의 수가 빠르게 높아가는 상황에서 무상의료 실현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 외에도 책에는 현실주의자 유시민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많다. FTA 안 하고도 문제없이 잘 사는 나라 많다. 오히려 FTA 했다가 경제 망가진 나라들이 있다. 우리보다 GDP가 절반밖에 안 되는 베네수엘라도 무상의료 하면서 MRI 공짜로 찍고 암 치료 공짜다. 현실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언제부터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됐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현실주의자가 된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됐다. 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은 실망만을 부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획회의> 305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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