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쯤 교육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살피던 중 논문의 서론 부분이 너무 비슷한 두 권의 책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아! 이런 게 표절인가'라며 마치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처음엔 내가 뭔가 대단한 문제를 발견한 것 같아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표절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어딘가에 알려야 하나?'라며 알리게 될 경우 벌어질 파장이나 당사자가 받을 불이익 등 의혹 제기의 부담감이나 온정주의 같은 것으로 인해서 이것저것 고민하다 좀 더 생각한 후에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메모를 해두고는 그 후로 줄곧 잊고 있었다. 근데 최근에 우연히 신문에서 독일 국방장관이 표절 논란으로 사임하게 된 기사를 읽고 3년 전 일을 떠올리게 됐다. 정직의 가치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표절 문제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한 독일 지식인∙시민 사회의 태도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나도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표절이 의심 되는 논문을 출간한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표절 논문을 출간한 당시인 2004년에는 한국청소년개발원)' 게시판에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후 한 달이 지난 어제 해당 논문에 대해 표절을 확인했다는 답변을 댓글(!)로 통보 받았다. 3년 전 기억에 의존해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내 문제제기가 옳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어 기뻤지만, 그러나 표절에 대처하는 해당 기관의 태도가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몇 가지만 지적해보고자 한다.(1) 내가 3년 전, 10분 만에 표절을 의심했던 글에 대해 표절 확인을 하는 데에 한 달이나 걸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당 논문은 대략 30쪽 안팎의 소논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당시 서론만 보고서 표절을 확인했지만, 본론이나 결론 등 논문 전체에 걸쳐 신중하고 엄밀한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한 달까지 걸릴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2)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표절 확인을 했다면 표절 검증 결과를 밝히는 방식은 내가 문제제기한 글 밑에 달랑 6줄 댓글로 해당 도서의 절간, 출판 중지, 시중에 나온 책들에 대한 반품 조치 등만을 밝힐 것이 아니라(이런 과정은 당연한 조치들이겠다), 해당 연구원 누리집 첫 화면에 일정 기간 팝업 창이라도 띄워서 '우리 연구원이 발간한 저작물에 실린 어떤 논문에 표절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이러이러한 검증 절차를 거쳐 이러이러한 부분의 문제를 확인했으며, 표절을 한 저자에게는 저러저러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앞으로 해당 연구원은 논문 심사에 좀 더 신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는 사과 글 정도는 올려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기관도 아니고 연구기관이라면 표절 문제를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나?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표절을 한 것은 아니지만 표절 논문을 선정함으로써 논문 심사에 있어 일정 정도 부주의한 과실이 인정되기 때문에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시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다 책임감 있고 신뢰감을 주는 모습이며 향후 표절 문제에 대한 보다 엄정한 의지를 보여 주는 방법이 아닐까? 해당 기관이 출간한 책의 표절 문제에 대해 누가 볼 지 알 수 없는 누리집 어느 구석 페이지의 문제제기 글 아래에 그것도 옥션 상품 문의에 답하는 것처럼 내 개인적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달랑 6줄 댓글로 무성의하게 답변하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표절 문제가 있었는지, 이 기관이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표절과 관련한 내 문제제기에 대해 연구기관으로서는 이미 공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3) 논문 표절이 확인 됐으면 표절을 한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해당 학교에 이런 사실을 알려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시나 의문이 들어 해당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의 학과에 문의해서 '국책 연구 기관으로부터 이러이러한 문제로 표절 확인을 받은 교수에 대해 통보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전화로 물으니까 전화를 받은 관계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답했다. 다른 통로로 표절 사실이 통보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표절 문제의 재발 방지 노력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무조건 언론을 통해 바로 터뜨리는 것보다 일단 해당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할 텐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아무래도 표절 문제에 대해 그렇게 큰 문제의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4) 끝으로, 표절을 한 교수는 이번 문제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재직하는 기관은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사람 취급 제대로 못 받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인권을 고민하신다는 분이 남의 글을 거의 한글 프로그램의 '붙여넣기' 하듯 제 글인 양 책을 내 인세를 받아 먹으면 이건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표절한 교수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인권문제를 고민해줄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표절 자체도 문제지만, 표절을 하더라도 특별한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 부분도 아닌 글을 엮는 첫 부분인 서론 부분부터 표절을 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친구 과제물을, 몰래 베낀 것도 아니고 그 친구의 동의하에 베꼈다가 걸려서 부모까지 교장실로 불려가던 미국 청소년 드라마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데, 과장이 섞이기 마련인 드라마일지라도 한국과는 다른 교육 현장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학생도 아닌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더더욱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연구윤리 자세에 대해 항상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아래는 내가 표절 제기한 글과 한국정책연구원의 답변이 있는 글을 연결한 링크다. http://www.nypi.re.kr/bbs/viewbody.np?code=qna&page=1&id=87&number=87&keyfield=&keyword=&category=&BoardType=&admin=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논문표절 #연구 윤리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