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없어도 금품? 자리 제공하면 처벌?" 국내외 사례 살펴보니

만약에... MB가 박근혜를 총리로 임명했어도 처벌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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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hs1578)등록 2011.10.18 15:37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서울교육감과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 등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본 사건에 대해 "재판부에서 해석을 절대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말은 아니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사전 약속 없이 사퇴했더라도 나중에 이익이 제공되면 처벌할 수 있다는 법 해석이 있다"고 언급했다.

금품이나 자리 제공에 대가성이 없으므로 무죄를 주장하는 곽 교육감 측과 배치되는 입장도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판례가 전혀 없는데 일본 대법원 판례에는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곽 교육감 측은 관련법 해석과 관련, 별도의 입장을 준비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재판부가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제공한 것이 대가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대가성이 있었거나 이를 미리 알았다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가성이 없었다면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이 여전히 유·무죄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재판부는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법 해석을 밝힘으로써 처벌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곽노현 교육감측과 박명기 교수측이 어떤 별도의 법해석 관련 자료를 제출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국내외의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가성 없이 사퇴한 후보에게 사후에 금품이나 자리를 제공한 것에 대한 처벌 유무에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외 사례 살펴보니.... 대가성 없어도 처벌 가능할까

문제의 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제1항 제2호는 "후보 사퇴 대가를 목적으로 금전 등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약속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후보자를 사퇴한 자에게는 일체의 금품이나 향응,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불법인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데 국내외의 비슷한 사례들을 통해서 현실을 살펴보자.

[사례1] 미국 오바마는 힐러리 선거비용 갚아주고 국무장관 임명

2008년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 경선 진행 중 버락 오바마 측은 힐러리 클린턴에게 후보를 사퇴하고 11월 본선에서 러닝 메이트(부통령)으로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의 조기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곽노현 사건에 대한 우리 검찰 논리라면 "직위를 대가로 한 후보 사전 매수" 시도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는 경쟁 후보였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또한 우리 검찰의 논리에 의하면 "사퇴를 대가로 한 직위 제공"이다.

또 오바마는 6개월 동안 진행된 후보 경선에서 엄청난 선거 비용을 지출한 힐러리에게 대통령이 된 후 선거 비용을 대신 갚아 주었다. 대한민국 검찰의 잣대라면 "사퇴한 후보에게 사퇴를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경쟁 후보였던 힐러리에게 부통령직을 줄 테니 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것, 또는 당선 후에 국무장관직을 준 것도 후보 매수라고 처벌받지 않았으며, 선거 비용까지 갚아 준 것 또한 후보 사퇴 대가를 목적으로 한 금품 제공이라고 문제되지 않았다.

[사례2] 러시아 푸틴 총리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역할 맞바꾸기 합의

더 재미있는 예도 있다. 지난 9월 러시아에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은 당 대회를 열어서 현 총리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내년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다.

푸틴은 연설을 통하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에게 내년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는 대신 총리로 출마하라고 요구했다. 곧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을 통합러시아당의 대통령 후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화답하여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하여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임명할 것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 검찰 논리대로라면 노골적인 후보 매수이며, 총리라는 직위를 대가로 한 후보 사퇴다.

대통령은 총리로, 총리는 대통령으로 자리바꿈을 사전에 약속하는 러시아 사례를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러시아에서 대통령 경선에서 직위 제공을 대가로 사퇴를 요구해도, 그리고 사퇴를 하고 그 직위 제공을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물론 각 나라마다 처한 정치적, 역사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우리 현실에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미국이나 러시아를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아 보인다.

[사례3] 후보사퇴 김근태를 장관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무효?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김근태 등 7명이 출마하여 한창 진행 중이던 2002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당시 3월 김근태 의원이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후 2004년 김근태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이 사건에 현재 검찰의 입장을 그대로 적용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를 사퇴한 김근태 의원에게 장관이라는 자리를 제공한 것"으로 공직선거법 위반이 되어 대통령 당선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던 사람은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시 검찰이나 언론, 한나라당은 한번도 김근태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을 사퇴 후보에 대한 공직 제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례4] 6.2 지방선거 김두관 도지사와 강병기 부지사 등 야권 단일화

이런 사례가 가장 많았던 것은 지난 6.2 지방선거다.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무소속)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 강병기는 여론조사를 통해 김두관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다.

강병기 후보는 사퇴했고 김두관 선거운동본부장을 맡았고, 김두관 당선 후 경남도청 정부부지사로 임명되어 지금도 부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강 후보가 사퇴하였고 선대본부장과 정무부지사라는 "공사의 직"을 제공받은 것이 명백하지만 누구도 불법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재 공직선거법 제232조가 금품 등 경제적 이익과 공사의 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곽노현과 박명기 사건과 판박이 사건이다. 반한나라당을 내세운 야권이 단일화를 통하여 공동정부 또는 역할분담을 하여 사퇴 후보측에 역할을 맡긴 경우는 지난 지방 선거 곳곳에서 있었다. 왜 검찰과 언론, 한나라당은 문제 삼지 않았을까?

[사례5] (가정) 만약 MB가 박근혜를 국무총리로 임명했다면?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MB와 박근혜 간 치열한 후보 경쟁이 있었고, 결국 MB가 후보로 확정되었고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을 일단 접어야 했다.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한나라당 일부에서 'MB대통령-박근혜 총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친박과 친이의 화해를 위해서 MB 정부 총리들이 바뀔 때마다 박근혜 총리 카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박근혜의 거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과연 당시 박근혜 의원이 총리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보수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했던 박근혜 대표에게 MB가 국무총리라는 직위를 제공하거나 제공받은" 혐의로 MB와 박근혜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정말 코미디 같은 주장이다.

여전히 대가성 입증이 처벌 여부의 핵심 변수 될 듯

미국과 러시아 등 외국의 사례에서뿐 아니라 국내의 이전 사례를 살펴보면 사전 대가성 약속이 없었다면 처벌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가성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검찰과 한나라당도 "만약, 박근혜를 MB 정부 총리로 임명했다면 이를 사퇴 후보에게 공직 제공혐의로 처벌하자고할 건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힘들어 보인다.

재판부가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대가성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있다는 점을 밝힌 시점에서 처벌을 위해서는 여전히 사전 대가성 입증이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국내외 사례도 수없이 많아 보인다.

곧 곽노현 교육감 변호인 측에서 이에 대한 해석과 근거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 교육감측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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