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측 입장보완)"증거조작으로 억울하게 7년간 감옥살이”

[인터뷰] 고성옥씨, “범죄경찰을 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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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wadans)등록 2011.11.07 14:46
"증거조작으로 억울하게 7년간 감옥살이" 
[인터뷰] 고성옥씨, "범죄경찰을 타도한다!"

 지난 10월 16일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고성옥씨라는 분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억울합니다 도와주세요... 증거조작으로 억울하게 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제 누명을 벗겨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저는 제가 겪은 일이 너무 억울하여 현재 아고라에서 서명운동 중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께 염치없지만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방관만 하셔서는 안되십니다. 반칙이 원칙을 지배하는 일에 결코 방관하지 말아 주시어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저는 제주에서 신문배달을 하던 중 강도를 쫓다가 오히려 범인으로 엮여 강도로 누명을 쓰고 지난 7년 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이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그는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97쪽의 자료를 첨부해서 내게 보냈다.

나는 지난 2주간 그가 보내준 이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무죄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법조인이 아니고 그가 무죄라는 '증거'도 없다. 내가 아는 단 한가지 사실은 그가 너무 억울해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이 기막힌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주고 싶었다.

다음은 지난 11월 3일 고성욱씨와 서울시내 한 사무실에서 만나 나는 일문일답이다.

- 먼저 생년월일과 간단한 약력은?

1956년 7월 5일 생이다. 2004년 9월 사건당시 나는 49세였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농사를 하면서 많은 빚이 생겨 가산이 압류되어 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집수리, 도배, 신문팔이, 택시운전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 억울하다고 하는 사건개요는 무엇인가?

2004년 9월 8일 새벽 4시경 나는 제주도에서 신문배달을 하다가 "강도야" 소리를 듣고 진범을 목격하여 쫓아갔다. 그런데 피해자집 아래층에서도 참고인이 그 소리를 듣고 내 뒤에서 쫓아 왔다. 먼저 쫓아간 나는 커브에서 진범을 놓치자 진범이 나올만한 과수원 골목에 숨어서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뒤쫓아온 술취한 목격자는 그 사정을 짐작도 못하고 그사이 신고받고 출동나온 경찰에게 진범도 안 보이고 내가 커브에서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진범이라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술취한 목격자가 피해자에게 자기가 피해자집 현관에서부터 범인을 쫓아 갔다고 스스로를 공치사하는 거짓말을 하였다.(사실 그 참고인은 피해자집 현관앞에서 70여m 떨어진 사거리에서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는 경찰에게 그 말을 믿게하여 집앞 대면 시 참고인이 먼저 지목하고 피해자가 따라 지목하여 내가 누명을 쓴 사건이다.

그들 논리대로 라면 나는 현행범이나 마찬가지인데 나에게는 피해품도 없었으며 단 내가 낮에 일하는 집수리팀에서 장판깔고 도배도 하는 카터칼을 늘 조끼주머니에 소지하였는데 그것이 범행도구로 오해하여, 별다른 증거가 없자 나를 범인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 그러나 경찰의 주장은 다를 수도 있다고 있다고 봐서 나는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공소장을 읽어 봤고 그 공소장엔 이 사건의 개요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피고인은 2004. 9.8. 04:20분경 제주시 연동 xxxㅡxx 소재 다세대 주택 xxx호 피해자 xxx(여.41세)의 집에서 평소 신문배달을 하면서, 위 집에 남자가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피해자의 집에 둘어가 금품을 빼앗고,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열려져 있는 대문을 통하여 3층에 올라간 후, 잠겨져 있지않은 작은방 창문을 열고 집안에 칩입한 다음, 피해자가 거실에서 잠을 자다 인기척을 느껴 잠에서 깨어나자, 피해자의 가슴에 흉기인 카터칼 1개를 들이대며 '조용히 해. 돈 있으면 내놔'라고 위협하여 반항을 억압하였다.

피해자가 '돈은 없고 반지와 목걸이 밖에 없다'.라고 하자, 피고인은 '그러면 그것이라도 내 놔라'고 하여 피해자가 '현재 거실에는 없고 방안에 있다'고 하여 피고인은 한손에 피해자의 목뒷 부위의 옷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위칼을 등에다 들이대면서 안방으로 끌고들어가 화장대 서랍속에 있던 피해자 소유의 크리스찬 디올 14k반지(2돈)1개 이삽오만원 상당과 14k목걸이(1.5돈)1개 십만원 상당 등 합계 삼십오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았아 이를 갈취하였다.

계속해서 피해자를 강간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침대 위로 올라가라'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이제 저의 집 아저씨가 올 때가 되었다 신고를 하지 않을테니 그냥가라'고 하자, 피고인은 운동화 신은 발로 피해자 옆구리 부위를 1회 세게 걷어차 피해자로 하여금 침대위에 올라가 눕게 한다음 피고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화장대 위에 있던 수건을 피해자의 얼굴을 덮으면서 '너 만지고 갈려고 한다. 니네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너를 죽여 버릴것이다.' 라고 하면서 장갑낀 손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던 중 옆집에서 '털각'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를 확인하기위해 거실로 나가면서 피해자에게 따라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피해자가 따라 나오는 척 하면서 피고인이 거실로 나가는 손간 안방문을 안에서 잠그고 '강도야 사람살려'라고 소리치며 구원을 요청하자, 이에 놀라 검거 될것이 두려워 도망가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허리부위 등 다발성 좌상 및 찰과상을 가하였다.

- 이렇게 경찰의 공소장 내용과 선생님의 주장이 불일치 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한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경찰은 나에 대한 범죄증거가 없자 증거조작을 하여서 누명 을 씌웠다. 재판 당시에는 돈이 없고 힘이 없는 나의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조작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 후에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다. 무려 경찰관 9명 이상이 이 사건의 조작에 가담하였다. 그래서 손을 거칠 때 마다 가짜 증거가 불어났다. 감옥 속에서 이 경찰들을 일곱 번이나 고소했는데 검찰은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봐 주고 있다. 당시 내가 감옥속에 있다는 약점을 간파하여 어떻게든 공소시효를 넘겨 실체적 진실관계를 깊이 파묻으려고만 했다

과연 이것이 민주법치국가인가! 힘이없는 자는 억울하더라도 징역을 살아야하고 센놈은 국가의 녹봉을 받아 가면서 희희낙락하게 산다는 게 말이나 되나? 과연 그 경찰들이 혐의가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혐의가 없다면 그들이 나를 가만 놔두겠나? 감옥살이 하는 그 동안에라도 당장 나를 무고죄로 잡아다 추가로 5년 형은 더 살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못하는 것이 경찰의 범죄혐의가 명백하다는 증거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제발 도와달라. 여러분의 목소리를 검찰청 한 곳으로 모아 수사를 하도록 하여 주기를 요청드린다.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한다. 반칙이 원칙을 지배하는 일을 방관해서는 안된다.

- 이 사건의 가장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또 경찰이 강도누명을 씌운 동기나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순전히 술취한 목격자의 어설픈 허위진술을 사실 확인도 없이 믿고 피해자의 말 역시 경찰이 사실로 알고 나를 체포하였다, 그러나 증거가 없자 사건을 조작하게 된 것이다. 경찰서 수사과에서도 손을 거칠 때 마다 조작한 증거가 불어나서 결국은 범인을 잡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사건이다.

모두들 나를 진범이라고 말하고 있어 경찰은 틀림없이 나를 진범이라고 쉽게 예단하여 악간의 증거조작은 죄의식없이 하여 그것이 수사관의 손을 거칠 때마다 불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런것은 또한 경찰이 오랜 관행으로 해온 것이며 정작 국과수 감정인 모발감정은 진범의 모발임을 알았음에도 지금에 와서 실체를 밝히면 그동안 수사관의 어이없고 조작한 증거가 드러날까봐 조직상 관계가 깊은 국과수는 교묘히 경찰의 편을 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경찰은 법정에서 증거조작이 드러날까좌 기를 쓰고 위증하게 된 것으로 추정 할 뿐이다.

- 그 후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했는데 교도소에서 겪은 가장 큰 고통과 어려움은 머엇이었나?

교도소에서는 많은 제약과 교도관들의 위압으로 증거수집을 위한 정보공개 청구가 어려웠다. 심지어 서류복사 등도 제때에 해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 동료들과는 이질감 때문에 여러차례 소송하는 사이 서류도 잊어버리고 방생활을 게을리 한다는 등 이유로 지꾸 시비를 걸어와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지난 7년간 받은 고통과 어려움을 말로 다하기는 불가능하다.

- 석방 된 후 현재까지 어떻게 지내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에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낮에는 대학교 앞에서 저녁에는 시내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막노동을 하고 있으며 서울에서도 12일간 각 대학교 앞에서 아고라 청원게시판에 댓글을 올려달라고 학생들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너무 답답하여 속이 폭발할 지경이다. 

- 향후 언론, 법조계, 인권운동가 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도움을 주면 좋겠는가?

그동안 검찰에 7번 고소도 했고 청와대에 2번했지만 청와대는 국민권익위로 국민권익위는 대검찰청으로 대검찰청은 해당 검찰청으로 보내지지만 결국 칼쥔자 검찰은 불기소만 반복했다. 국가인원위는 이미 확정판결 받은 사건이라 해당이 안된다고 하였다. 나는 다시 청와대로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었다고 다시 진정하면 결과는 또 반복하여 마찬가지로 돌아왔다. 그밖의 참여연대 민변 등은 아무런 답도 없다. 내가 보낼만한 곳은 전부 보냈지만 답이 없다. 나 혼자로서는 너무 힘든 싸움이다. 정의를 사랑하는 여러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회적 여론을 모아 검찰에서 수사를 하도록 하여 주면 원이 없겠다. 나는 너무 억울하다. 제발 도와달라.

* 지금 현재도 고성옥씨는 경찰을 고소하여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으나 과거에 7차례나 불기소 처분한 사례로 보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비관적 입장이다. 기자는 11월 7일 제주지방검찰청 담당자인 L 검사에 이사건에 대한 검찰측 입장을 문의하였다. 이에 대해 L  검사는 "현재 수사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힐수 없다" 고 답변하였다.

덧붙이는 글 검찰측 입장을 추가 보완하였습니다.
고성옥씨가 보내준 97쪽의 자료를 첨부합니다.
첨부파일 고성옥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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