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육과학기술부는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선정하면서 이승만 독재, 박정희 중심의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전두환 신군부정권 등 독재와 민주화 관련 주요 내용들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 역사교과서집필기준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변경내용(교과부제공) ⓒ 노영필
'어안이 벙벙해진다.'는 게 사람들의 분위기다. 2008년 건국 60주년 논란에 이은 제 2막이라고들 손가락질 한다. 우리 광주는 5.18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자긍심을 넘어 미래세대의 나침반이 될 역사교육에 대한 의도여서 그 충격은 더 큰 것 같다. 그토록 긴 세월 진상을 밝히기 위해 희생과 상처를 얼마나 안았던가. 나아가 5.18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를 얼마나 성숙시켰던가.
경악할 일이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변경의 충격을 만들었으니 나라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아니겠는가. 급기야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은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성명서를 냈다. 애초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과정으로 나라의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친일청산이 그랬고, 분단 이후 대미의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균형잡힌 사회적인 가치로 정착한 것이 아니라 한 쪽을 눌러야만 반대편이 살 수 있다는 생존전략만이 사회논리를 지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다 알다시피, 올 여름 5.18민주화운동의 자료가 인류가 공유해야 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반년도 못 되어 벌어진 평가절하사건이니 그 충격이 또한 크지 않겠는가. 필자를 두렵게 하는 건 우리 현대사 속에서 4.19, 5.18은 정말 역사 속에 숨겨야 할 만큼 부끄러운 사건이라는 발상을 목격하고서다. 서구 민주주의는 수백년의 시간이 걸려 만들어졌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해 애써 시간을 공들여보려는 의도된 시행착오의 시험일까. 그럴 여유가 있는 사회분위기는 아닐진대 말이다.
"역사가의 과제는 단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실증주의 사학의 대표자인 랑케의 주장에 대해 E.H. 카아는 "사실은 스스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 때만 말한다."며 역사가의 해석이 있어야 역사적 사실이 성립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란 과거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해석의 교환이며, 역사가와 사실 간의 계속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임을 강조한 말이다.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의 위험성은 수많은 역사적 사료들 중에서 어떤 사료를 취할 것이냐는 역사학자들의 주관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단지 "집필기준을 너그럽게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역사학자들이 과연 여러 가지 정치적 입장이나 계급적 입장 등을 배제하고 절대적인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예에서 잘 보았지 않는가. 역사서술을 너그럽게 풀어준다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문제 앞에 세계 평화를 우선하는 큰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는 아량이 넘치는 역사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더욱 다양한 견해를 가진 역사 연구자와 교육자들이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만큼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키워야 하는 교육용으로 쓰인다는 사회적 기능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와 일본의 독도 문제 등의 역사적 갈등을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신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역사적 가치 앞에서 아량을 베푸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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