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학원강사의 진짜 '먹고 사는' 이야기

[사람 & 사람] 사교육노동자, 채식주의자 박미선씨

검토 완료

정규철(go2thewest)등록 2011.12.09 17:39
사람 & 사람
'사람&사람'은 우리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연재 코너입니다. 때로는 나와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낯선 모습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빌어 우리 사회를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기본이라는 철학을 '이야기'로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박미선, 29세
TAG > 비정규직, 사교육노동자, 채식주의자

합정역 근처에 재미난 이름의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은 "좋아서 하는 가게". 맛있는 안주는 물론이고, 1800원이면 시원한 맥주 한잔도 마실 수 있다. 일과 후의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위해, 우리는 이렇듯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맥주 한 모금. 그 아름다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는 가게로 들어섰다. 라는 건 실은 거짓말이고,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이런 '예쁜' 카페에 선뜻 들어선 것은 순전히 오늘의 '영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게 안에는 신기한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열띤 토론, 아니 열띤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 오늘의 '영희', 박미선(가명)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대충 눈치를 보다가 몇몇 분들이 담배를 피러 나가는 담배타임을 이용, 다짜고짜 그를 불러내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규철 기자 (이하 정) : 재밌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던데? 무슨 모임인가?

박미선 '영희' (이하 박) : 동물권과 생명권, 육식과 채식 등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정 : 안 그래도 아까 옆에서 들어보니 다들 채식주의자분들이었던 것 같다. 요샌 고기보다 야채가 더 비싸서 채식도 돈이 많이 들지 않나? 아무래도 경제매거진 기자다 보니 이런 게 궁금하다.

박 : 아니다. 채식을 시작한 이후 식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일반 식당에는 많지 않아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게 되었다. 또,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내 건강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싼 유기농 야채를 고집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채식을 다만 건강 때문에 하는 분들은 식비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기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인터뷰 내용을 몰래 검토 중인 박미선씨를 몰래 도촬했다. ⓒ 정규철


정 : 그렇다면 미선씨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 : 몇 년 전 TV에서 광우병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공장식 축산업으로 길러진 소나 돼지들이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끔찍했다. 억지로 살을 찌운 돼지가 철창 안에서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먹고 싸기만 반복하다가 죽어가고, 소들이 병에 걸려 도미노처럼 쓰러져 죽고 하는데,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이 저런 공장식의 기계적인 대량살육이 벌어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 내가 굳이 고기를 먹어야 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이 단순히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생산과 공급, 소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일 뿐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있거나 아프다는 감각은 배제시켜버린 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해서, 생명체를 끊임없이 공급하고 팔아치워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 자신이라도 여기에 참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 : 그런 비정한 자본주의 안에서 본인은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박 : 현재 토플 강사로 일하고 있다. 3년 정도 됐다. 말하자면 사교육노동자다.

정 : 같은 사교육노동자라도 토플 강사라면 일반 보습학원 강사들 보다는 급여가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비정함은 조금 덜 느끼지 않겠나.

박 : 뭐, 연봉으로 치면 대략 3, 4천 정도는 될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서 사교육 노동자 치고는 꽤 괜찮은 급여를 받고 있다. 물론 모든 사교육 노동자가 그렇듯이 4대 보험 따위 없는, 비정규직인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사실 사교육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250만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사교육노동자들의 고용상태는 너무나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이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 건강검진 같은 복지는 물론이고, 4대보험이 없는 건 당연하고, 자질구레한 수당이나 보너스도 없이 일한다. 계약서를 쓰긴 하지만 별로 실효성이 없다. 을의 입장에서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자세하고 합리적으로 작성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업무 이외의 무리한 걸 요구하거나, 임금체불이 벌어져도 어디 호소할만한 곳이 없다. 나도 강의를 오래하면서 방광염이 생겼는데 피곤하면 재발한다. 워낙 오래서있고 마음대로 화장실 갈수도 없어서 생기는 병인데, 이마트에서 계산 하시는 분들도 많이 걸린다고 하더라. 지난 3년 동안 아파서 쉰 것도 딱 한번이다.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 : 사교육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엄청 많은데, 사실 사교육 시장 자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아서, 강사들의 노동권이라든지 근무여건 같은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박 : 맞다. 하지만 사교육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더 배우고 싶은 것을 더 배울 수 있는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물론 특목고나 토플 대상의 사교육 시장이 여론에 두드려 맞는 건 지식자본과 지식권력의 측면에서, 고소득-고학력이 세습되고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교육 시장이 커진 것은 시스템이 그렇게 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비판의 대상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생계를 겨우 유지해 나가는 사교육 노동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비판의 대상이 좀 더 명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교육도 자본가들의 문제를 빼놓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 : 물론 계급적으로 봤을 때는 당신도 비정규직이며 프롤레타리아트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연봉이면, 일단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은 아니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나름 재테크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 : 재테크까지는 아니고, 3년 전부터 적금을 들어 매달 꽤 큰 액수를 붓고 있다. 유학을 가기 위해서다.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다녀오면 토플 영어강사는 물론이고 운 좋으면 대학 강사자리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집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사람이 나라서, 몫 돈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내가 손을 써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다. 실은 아버지가 올해 4월에 은퇴를 하시고 큰 빌딩에 경비를 하고 계신다. 합정동에 안경점을 하시다가 그 쪽 지역이 재개발이 되면서 장사를 접으셨다. 물론 빚이 많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딱히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생계를 꾸려나가고, 그러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물론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긴 하지만, 운이 조금만 따라주지 않으면 굉장히 살기가 힘든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고 사는지 모르겠다. 매주 열심히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난 충분히 이해된다.

정 : 얼마 전 서울 시장 투표도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 경제상황도 좀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가?

박 : 글쎄, 정권 바뀐다고 사람들 사는 게 크게 나아질 거라고는 기대는 안한다. 일단 FTA도 결국 하게 될 것 같고,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서민들의 생활이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거나 나아진 적은 과거에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나 사상이나 이념을 통해서 세상이 살기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작게,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선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먼저 나서서 연대를 하고 마음을 모아 서로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색 낼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그래서 두리반에도 가고 철거민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단돈 만원이라도 내고 철거민들을 위한 공연도 보고 그랬던 것 같다. 또 오늘처럼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도 하고, 이런 작은 연대와 만남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 : 토론이 다시 시작된 것 같다. 다시 가봐야 될 것 같은데?

박 : 아니다.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저 사람들 지금 쓸데없는 얘기 하고 있다.

미선씨는 '쓸데없는 얘기'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은 분명히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를 테면, 경제매거진에 실어도 별로 문제가 없을 만한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먹고 사는지, 그것을 왜 먹는지, 혹은 왜 먹지 않는지, 한번쯤 고민해 볼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우리의 삶의 문제이며, '먹고 사는 것'이 곧 '경제'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우리의 삶과 그만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문제다.

아무튼 나는 미선씨와 인터뷰가 끝난 후 채식주의자들 사이에 껴서 혼자 오징어 덮밥을 시켜먹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왠지 '이 메뉴가 제일 싸서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덧 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휴먼경제(http://www.human-biz.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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