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미용실의 숨은 ‘무림 고수’를 만나다.

미용경력 20년을 걸어온 남자 헤어 디자이너의 삶

검토 완료

최규진(sachkey)등록 2011.12.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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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에 위치한 작은 미용실 '보그헤어'. 동네 어르신은 물론 어린 학생들도 드나드는 이곳은 번화가의 그곳보다 다소 허름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미용실 안에서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헤어 디자이너가 홀로 가위를 놀린다. 뒷모습만 보니 영락없는 여자인데 알고 보니 중년의 남자다. 볼수록 신기해서 물어보니 게다가 독신남이다.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보그 헤어의 유일한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원장인 전인수 씨(42)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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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음악을 잠깐 했었는데 체질에 맞지 않았어. 밤무대도 뛰었는데 매일 밤낮이 뒤바뀌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돈 벌자고 잠깐 한 눈 팔아 응시한 디자이너 자격증을 하루 만에 땄는데 오랫동안 묵혀놨어. 그러고서 군대에 갔는데 우습게도 이발병을 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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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미용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20년이 지난 프로 디자이너다. 지난 10년을 고향의 미용실을 전전하다가 3년 전부터 서울의 형과 함께 살기로 한 이후로 상경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걸은 '보그헤어'는 지인의 소개로 찾은 자리라고 한다. 그가 처음 일을 배운 곳은 헤어디자이너들의 성지인 '명동 마샬 미용실'. 전 미용협회 회장인 하종순 씨에게 일을 배운 그는 학교나 학원 강단에도 여러 번 선 유명 인사다. 과거 연예인들도 많이 봤다는 말에 연예인을 담당해봤냐고 하니까 그 시절에는 '스텝'이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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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텝' 다음에 '시아기(しあげ.끝손질, 마무리라는 일본어) 디자이너', '오리지널 디자이너가 있'고 실장이나 팀장이 있는 거지. 처음 '스탭'때에는 바닥부터 닦아야 돼. 아무나 머리 못 자른다니깐. 지금도 대부분 큰 미용실에 가면 머리 잘라주는 사람들은 단골손님 빼고는 다 '시아기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면 되. 이때는 나도 실수가 많았어. 싱글링(가위질)을 하다가 귀 한번 잘라봤지. 이제 일한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뒤통수를 자를 때면 신경이 바짝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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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르던 도중 귀를 건드리며 장난 섞인 웃음을 지어보이는 전 원장은 이내 다시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는 미용이 마치 수학공식과 같다고 한다. 약 십 만개나 되는 머리카락을 규칙적이지만 무궁무진한 모양으로 꾸밀 수 있다는 게 정말 오묘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손에 쥔 가위를 보여주며 '이걸로 전 세계를 다갈 수 있는 게 이 일'이라며 남다른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남자 디자이너로써 여풍이 거센 미용 업계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긍정적이었다. "옛날엔 아주 힘들었지. 아직도 7:3정도로 여자가 많아. 그래도 결국 실력이 좋아야 손님이 찾는 거지. 어디 안 힘든 일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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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번화가의 유명 미용실을 전전하며 화려한 수상경력까지 갖춘 그가 동네 미용실에서 일 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는 돈이 있으면 누구나 브랜드의 옷을 사고 싶은 법이라며 대형 미용실을 선호하는 손님들을 선입견에 비유했다. 그는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오히려 동네에 숨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들을 추천했다. "옛날보다 지루하진 않아. 매일 똑같은 '할머니 파마'를 해도 손님은 항상 다르다니깐. 물론 길거리의 대형 미용실이나 브랜드 미용실에 가면 대우는 좋지. 하지만 미용은 늘 일손이 부족해서 어딜 가나 환영받아. 결국 자기가 만족하기 나름이야. 나만해도 내 성격에 못 이겨서 수차례 짐 싸들고 나왔어. 지금은 더 큰 자리로 옮길 욕심도 없어. 그냥 더 늙으면 고향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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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장의 시원한 손놀림으로 머리까지 감고 나니 제법 단정하게 짧아져있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기자에게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다. 그 어느 유명 미용실에서 자른 것보다 훨씬 잘나온 머리에 두말할 것 없이 만족했다. <최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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