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으면 무덤가에서 춤을 추겠어요"

슬픈 화인(火印)... 가슴에 박힌 못을 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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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llalghll)등록 2012.01.06 14:29
백발이 성한 노인네가 초라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아버지다. 그간의 모진 세월을 말해주는 듯 검버섯이 만개한 아버지의 얼굴은 오늘도 창문 저 너머를 향해 있다.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시느냐 여쭈어도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자식들에게 눈곱만치도 덧정 없는 저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가 보다.

기억 속 아버지는 노상 술 담배에 절어 있는 분이셨다.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건 다반사, 밥상을 뒤엎고 집안 살림을 깨부순 건 부지기수, 간혹 엄마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는 날엔 언니와 나는 초상 난 마냥 목 놓아 울며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매달려야만 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면 엄마는 언니와 나를 안고 아버지를 피해 도망쳤다.

그러기를 십 년. 사춘기를 지나 머리가 굵어질 무렵부터 언니와 나는 더 이상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다. 가족을 외면한 채 평생을 술에 절어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노가다며 청소도 마다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엄마의 삶은 하루하루가 눈물겹도록 치열했다. 삶이 고달파질수록 웃음은 점차 사라져갔다. 

유난히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던 겨울, 엄마는 결국 몸도 마음도 진토가 되어 스러져버리셨다. 한 많은 세상 평생을 풀뿌리처럼 못 박혀 살았으니 죽어서는 떠나겠노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엄마는 결국 검푸른 바닷길을 따라 가셨다.

술에 절은 아버지... 눈물겹게 살다 먼지처럼 간 엄마

그렇게 가여운 엄마가 가신 후, 언니는 기어이 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다. 당신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노라고, 되려 무덤가에서 춤을 추겠노라고 서슬 퍼런 악담을 씹어 뱉던 언니. 그때에도 아버진 안방에 앉아 술을 마시고 계셨다. 실로 대단한 분이셨다. 그 모습에 치를 떨며 나 역시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두고서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았다.

집도 아버지도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하던 즈음일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술에 취해 마주 오는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한 어르신의 보호자를 찾는 전화였다. 서둘러 달려간 응급실에는 염색조차 하지 않아 반백이 된 노인네가 초라하게 누워 있었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시는 동안 언니는 단 한 차례도 아버지의 병실을 찾지 않았다. 하긴 보호자를 찾는 경찰의 전화에도 그런 사람 모른다며 매섭게 전화를 끊어버린 언니였다. 아버지에게 받아야만 했던 언니의 상처는 회복불능이었다.

아버지는 꼬박 일 년을 병원에 계셨다. 그러다 갑작스런 퇴원이 결정됐다. 건강을 회복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게 치매 증상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한평생 자신밖에 모르고 사셨기에 저 홀로 천년만년 잘 사실 것 같던 양반이 치매라니. 어려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시더니 마지막까지 자식들 발목 잡으려는 구나. 하-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곧장 양로원에 모셔졌다. 언니도 나도 직장생활을 하느라 모실 형편이 안 됐을 뿐더러 모실 마음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뵙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는 하고 있노라 자위했다. 그렇게 계절이 순환하기를 오 년. 언니는 역시나 단 한 차례도 아버지를 찾지도 묻지도 않았다. 가슴에 맺힌 피 묻은 원망은 언니를 저 히말라야 만년설만큼이나 차갑고 모질게 만들었다.

아버지 마지막 길... 자식들 증오마저 안고 가야 하나

서글픈 유년시절 언저리를 회상하던 나는 아버지의 움직임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오도카니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신다. 그리고는 무심히 눈을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보신다. 그 시선을 따라간 하늘가에는 또 하루의 삶을 태운 해가 처연히 지고 있었다.

눈물이 나도록 따스한 노을빛에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언니와 나는 끝끝내 아버지께 사과를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신들 그 상처가 치유될까마는, 그래도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라 여겼다. 해서 나는, 그리고 언니는 용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싶어도 당신께서 용서를 구하지 않으시기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당신은 무려 아버지셨다. 내 아버지이기에 미워하고 또 온 마음을 다해 증오했지만, 그건 결국 채 받지 못한 부정(父情)에 대한, 이제는 그만 용서하고 싶은 딸들의 피 맺힌 절규였다는 것을 당신은 아실까.

하지만 그 남은 울분 한 자락마저도 이제는 그만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연 백발마저도 듬성듬성 빠져가는 아버지는 그 마지막 삶을 태우며 스러져가고 계신다. 머지않아 친지도 지인도 없이 외로이 가실 길에 자식들 증오마저 떠안고 가시게 한다면 그건 너무 모질지 않은가.

어느 영화에서 그랬더란다. 용서란 미움에게 방 한 칸 내어주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네 인생사 미움이 어디 있고 용서가 어디 있을까.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 스며드는 것이 미움이고 녹아드는 것이 용서인 것을. 미움도 용서도 결국은 서로 부대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겨지는 서글픈 못자국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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