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마곡사의 풍광은 산벚나무 꽃이 아름다운 봄철이 최고다. 그래서 일명 춘마곡추갑사(春摩谷秋甲寺)라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마곡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겨울철이 제격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이 끊어진 자리, 모든 영화가 끝난 자리에서 보면 그동안 아름답게 포장되었던 겉치레들은 다 사라지고 결국 보잘것없는 본모습만 남기 때문이다. 우리 사찰의 역사에서 임진왜란은 중요한 전환기였다. 임진왜란 전후로 해서 산사의 90% 이상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마곡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재건사업은 전적으로 사찰의 몫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장치, 설화 등을 창조해 내는데, 마곡사에도 3가지 설화가 전해져 온다. 영산전에 들어가 천불 중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분이 자신의 반려자가 된다거나, 대광보전에는 앉은뱅이가 만들었다는 삿자리와 이를 다 짜고 걸어 나갔다는 설화가 있다거나 그리고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서면 마곡사 대웅보전의 기둥을 몇 번이니 돌았냐고 물어본다는 등 얘기가 그것이다. 그 중 흥미를 끄는 대목은 대광보전의 앉은뱅이 설화다. 공교롭게도 삿자리가 지금도 대광보전 마루에 깔려 있고,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 건 대광보전 현판 우측에 있는 용머리 기둥이다. 통상 용머리의 갈기는 좌측에 있는 용처럼 휘날리는 것처럼 표현하는데, 이건 뭐란 말인가. 우측 용머리의 갈기는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마치 삿자리처럼 엮여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용머리는 처음 보는데, 삿자리 설화와 결부되어 묘한 감흥을 준다. 아마 앉은뱅이는 진짜 앉은뱅이가 아닐 것이다. 앉은뱅이는 모든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적 불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일는지 모른다. 우리의 이 텅 빈 마음자리를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대자연인으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다는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든 시련에 닥치기 마련이다. 시련에 빠졌다고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아갈지 지혜를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앉은뱅이 용(龍)처럼 이 위기를 기회로, 이 시련을 발판으로 전화위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용 #마곡사 #대광보전 #용머리 기둥 #앉은뱅이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