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항상 변화해왔다. 사람들은 역사가 변화하는 것을 두고 발전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퇴행이나 퇴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변화도 있었고 가치판단을 내리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질서나 힘을 무력하게 하면서 새로운 힘이 등장하면서 역사는 변화했고 새로 등장한 것 역시 다른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서 무력해졌다. 세상을 뒤흔드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는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그것을 반대하는 힘에 몰락했다. 왕이라는 일인에 의해 유지 되어온 독재는 혁명에 의해 무너졌지만 질서가 급격하게 해체되자 또 다른 독재자를 낳기도 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나타내는 한 척도인 '노출'에 대한 사회의 태도도 여러 양상을 띠며 변화해 왔다. 일제 점령기나 군부 독재 시절(박정희의 집권기)에 경찰은 자를 들고 다니며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재곤 했다. 당시에 규정한 길이보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여성은 즉결 심판을 받았다. 사회의 건강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옷을 입는 행위는 개인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엄숙한 사회적 분위기 - 물론 독재 정부의 강압적인 규정이 밑바탕이 된 - 탓에 무시됐고, 그 객체가 여성이라는 이유도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일에 보탬이 되었다. 군부 독재가 종식되고 여성들의 입는 행위를 통한 표현의 자유는 계속 신장했다. 치마길이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여성들의 노출 수위는 매우 높아졌지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동반한 이러한 여성의 '노출'은 다른 벽에 부딪힌다. 단적으로 말해, 과거가 노출을 더 허용하라는 것을 요구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도로 노출을 삼가라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비키니' 논란도 그렇다. '나꼼수'에서 출연자들이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언급에서 끝났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실제로 한 여성이 출연진의 요구대로 비키니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시끄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비키니' 논란에서 '나꼼수'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의 '성 상품화' 흐름을 반대하는 입장과 일치한다. 남성은 오랜 시간 여성을 성적 도구와 상품으로 이용해왔고, 최근의 경우처럼 남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여성을 향한 발언들이 이러한 관행과 궤를 같이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좀 더 짧게 입고 싶어 하던 여성들의 자유가 배척 받던 시절과 여성을 더 벗게 만들려는 현재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성 중심의 생각이 항상 바탕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군부 독재 정권은 여성에게 엄숙함을 요구했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기를 원했다. 물론 철저하게 남자들의 시각에서 비롯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벗은 사진과 영상, 아직 앳된 소녀들의 야한 가무는 남성에게 팔기 위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여자의 노출을 대하는 모습은 변했다고는 하지만 바닥에 깔린 사고가 변하지 않았다. 여성이 원해서 벗었다고 해도 그 것이 어떤 남자의 발언이나 요구 - 매우 간접적일지라도 - 와 관계가 있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은 여성의 성을 남성 입장에서 가벼이 여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꼼수비키니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