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결혼제도 그리고 권력관계

본능을 감옥에 가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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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재(sbadco)등록 2012.02.11 11:23
성과 결혼제도 그리고 권력
요즘 나꼼수의 성적코드를 담은 발언에 대하여 논란이 뜨겁다. 혹자는 그 들이 마초적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 공격을 퍼붓고 다른 편에서는 그 정도의 농담을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다며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생각을 정리해보려고한다.

인간은 본시 짐승과 다를 것없는 본능을 지닌 존재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짐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제력과 문명화된 이성을 갖고있기도하다. 종종 사람들은 짐승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거나 잘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원시적 잡혼의 시대를 거쳐 모계사회를 지나 가부장적 부계사회로 발전(?)해왔다. 잡혼의 시대에는 성을 터부시하는 일이 없었다고한다. 사실 짐승과의 차이가 별로 없는 성생활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짐승들도 짝짓기를 할 때면 은밀한 장소로 숨어드는 것으로 봐서 방해받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프라이버시를 추구하였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점차 인간의 욕망은 권력을 추구하게 되면서 변화를 피할 수 없게된다. 당시의 거의 유일하고 가장 위력적인 생산의 수단이었던 인간이 모계를 중심으로 응집력을 갖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잡혼의 성격상 부계의 확인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수유를 받고 양육되던 상황이어서 자식의 성별에 관계없이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깊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중심으로 뭉처진 자식들은 그 숫자와 건강상태에 따라 어머니의 권력이자 생산수단이 된다. 역사를 통틀어 그리 긴 기간은 아니더라도 분명 그렇게 모계사회는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로 인하여 점차 수렵이나 채집은 물론 농경과 전쟁등에서 남성이 갖는 힘의 우위는 모계사회를 점차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부계사회가 시작되면서 여성에게는 수 많은 성적 억압들이 생겨난다. 여전히 중요한 생산의 수단이자 권력이기도 했던 인간을 묶는 수단으로 혈연은 위력적이다. 그런데 잡혼이나 성적 자유는 남성에게는 치명적으로 불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계의 확인만 가능하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것을 위해 여성에게만 一夫從事를 강요하게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순결이데올로기나 여성의 정조를 금과옥조처럼 받는 이유이다. 결국 권력을 유지하고 여성을 지배함은 물론 점점 잔혹해지는 정복전쟁들을 이어가며 횡포를 부리기 시작한다. 여성의 일부종사를 강요하면서도 일부다처제등으로 남성 자신들은 성적 자유를 누리는 양성불평등 또는 주종관계와 같은 부당한 관계를 오랜 세월 이어온 것이다.

이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일부다처제 같은 원식적 제도는 많이 사라졌고 양성평등을 옳고 지당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적으로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는 작동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러한 불평등을 당연히 여기는 남성들이 있다. 심지어 여성들조차 그러한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차별하는 경우가 남아있다.

성적인 문제를 터부시하고 순결이데올로기로 굴레씌우는 일, 여성에게 자신의 본능과 달리 성적욕구를 발현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모두 가부장적 권력유지를 위해서 남성이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것이라 하겠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성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불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강간이 아니라고 하는 판결이 나오는 일도 있다,과도한 노출이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주장하는 정신병자들도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거나 호감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면 헤픈 여자쯤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런 시각을 의식하여 여성들이 가급적 소극적이거나 수동적 태도를 취해야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성범죄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욱 이상한 눈길을 받는 2차 피해도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반문명적인 불평등은 저항의 대상이다. 순응해서는 안되는 잘못된 질서이다. 철저히 타파하는 것이 옳다. 무력한 개인이 여기에 저항하라고 강요할 일은 아니다. 너무도 큰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약자인 여성들이 연대하여 여기에 저항해야한다. 물론 양심있는 남성들이 함께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지금 여권신장이나 양성평등 운동을 하는 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에도 생각해볼 방향성은 있다. 남성을 좀 더 도덕적으로 억압하여 여성과 맞출 것인지 아니면 여성의 성적 억압을 좀 더 풀어서 맞출 것인지 애매한 지점이 있다. 또 수천년 동안 형성된 성에 대한 사고들중 무엇을 버리거나 수정하고 무엇을 현실로 인정하고 수용할 것인지도 쉽지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시각이 다르고 같은 성이라도 각기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자는 그간 형성된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의 잡혼시대로 돌아가자고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어지간한 것은 현실로 인정하고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사고를 교육으로 고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가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전자는 거의 정신세계가 아스트랄이고, 후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어렵고 스텝이 꼬이는 문제이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원칙 정도는 정할 수 있을 법하다. 하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억압된 여성의 성적 자유를 확대해 나가고 가부장적 굴레들에 저항할 권리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성에 관계없이 본능을 처벌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처벌하고 비판할 것은 타인의 성적자결권을 침해하였을 경우이지 특정한 본능을 가졌다는 것으로 비난받아선 안될 것이다. 이 것은 마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 본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나꼼수와 비키니 사건으로 들어가보자. 처음 비키니 시위에 나선 여성은 스스로 그러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가 없는 한 정당한 의사표현의 방식이라고 본다. 존중해줘야 마땅하다. 타인이 그 장면을 안볼 권리를 그녀가 침해한 적이 없다. 눈을 돌리면 그만이다.

나꼼수의 김용민이 정봉주 정력감퇴제를 운운한다. 주진우는 코피를 어쩌고 저쩌고 한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로 들리는 내가 이상한 인간일까? 문제는 여성문제에 민감한 분들의 입장이다. 성희롱을 입에 담을만큼 애민한 반응이 나온다.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것이 성희롱이기 위해서는 대상자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다. 하지만 본인이 희롱으로 느끼지 않았다니 당연히 무효이다.  

사실 이런 정도의 표현도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희롱이 맞다. 또 수감중인 정봉주가 고소하면 불법행위를 구성할만한 충분한 사건이 된다. 그러나 가능성이 0%이니 역시 무효이다.

다만 그간 가부장적 굴레가 강요해온 사고의 틀이 강박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여성들은 그러한 표현들이 불편할 수 있다. 남성들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을 세심히 배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부터 나꼼수는 그러한 품격없는 언어들을 계속 사용해왔다. 또 싫은 사람에게 듣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성적 자결권도 침해하지 않았다.

김어준이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성적 대상화 또는 객체화라는 비판은 좀 포인트가 맞지 않는다. 그런 방식의 비판이라면 이세상에 연애하는 모든 연인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물론 서로 허용한 대상화이니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허용부터 명토박고 사귀는 연인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먼저 대상화하여 볼수 밖에 없고 서로 대상화를 허용하기 전까지는 남남과 다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상대를 성적 대상이라는 것외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않는 경우도 드물다. 다른 많은 의미부여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학자는 "욕정대로 하면 짐승"이라고 비판한다. 욕정대로 하면 짐승이 맞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바로 인간의 자제력, 상대에 대한 배려, 문명질서를 생각하는 이성등이다. 그러니 누군가 섹시한 여성을 보고 달려가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만지기라도 한다면 짐승이 맞다. 상대의 동의가 없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범죄자들을 제외하고 보통의 인간들은 욕정대로 하지 않는다. 그저 순간 참 섹시하구나 그렇게 감탄사를 되뇌이고 곧장 잊어 버린다. 누가 욕정대로 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설정이다.

이번 사건의 전개를 바라보며 여전히 우리는 지배하고 있는 성에 대한 터부시 문화, 성에 대하여 가급적 본능을 숨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 여성이 성에 대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말할 수 있기를 바라기보다 남성이 여성들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는 것을 본다. 남성들이 권력을 얻고 유지 또는 확대해나가는 방편으로 만들어둔 덫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갖혀있는 것을 본다.

누구의 어떤 본능도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그 것으로 누군가의 성적 자결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본능은 무죄이다. 반드시 권력관계가 아니어도 성적 자결권을 침해하면 비판이 아닌 처벌을 받아야 맞다. 잘못 놓인 덫은 치우는 것이 옳다. 그 덫이 작동하는 언에서 사고하면 걸리게 마련이다. 잘못된 질서에는 순응하는 것보다 저항하는 것이 옳다.

P.S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성적대상으로 볼 때 오로지 섹스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종종 한다고 한다. 그거 대부분의 경우는 오해이다. 다른 모든 관계를 접어두고 그 짓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성범죄의 경우는 예외.

남성은 우리사회가 순결이데올로기나 정숙이라는 틀로 여성들을 평가하려드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되었고 여성들이 섹스만이 아닌 다른 좀 더 고상한 관계맺음을 원하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그 것도 생각하는 관계와 그 것만 생각하는 관계사이에서 남녀는 대립한다.

덧붙이는 글 딴지일보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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