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프 하우스 영화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
진실, 그리고 정보
"정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것의 비대칭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누구도 모르는 것을 혼자 알고 있을 때 그 정보는 가치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은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활동, 즉 정보를 이용한 다른 나라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각국에 그들의 정보원을 파견하고 그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정보들을 적절하게 이용해 왔다. 이러한 정보들은 과연 진실일까? "진실"이라는 말은 매우 윤리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쓰인 "진실"은 윤리적인 것과는 무관한 "사실"이거나 혹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가공된 사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어쨌거나 그러한 정보의 수집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문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정보원들의 부패와 기밀의 누출이었다. 정보원들의 부패는 때로 바로잡기도 했겠지만 기밀의 누출은 이런 일의 특수성으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은 음모를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 그러한 누출사실을 덮는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반드시 밝혀지는 법, 그러한 누출을 알고 있는 내부자들이 있고 그 내부자들에 의해 그것이 다시 누출되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되는데 영화는 바로 이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음모와 배신, 그 처절한 순환구조
영화의 주인공 토빈 프로스트(덴젤 워싱턴 분)는 예전에 잘 나가던 공작원이었다가 몇 가지 비위사실에 연루되어 정보기관으로부터 퇴출된 자로서 이제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사고팔아 이 세계에서는 전설로 알려진 국제적인 정보 범죄자이다.
▲ 주인공 웨스턴 프로스트를 만난 뒤 일이 꼬이는 웨스턴 ⓒ 유니버설픽쳐스
또 한명의 주인공인 웨스턴(라이언 레이놀즈)은 남아공에서 거의 일 년 동안을 별 다른 일없이 조용하게 안전가옥(세이프 하우스 : 범죄자를 취조하거나 혹은 범죄자를 이동하는 중 위협이 있을 때 잠시 머물게 만든 장소)을 지키는 CIA의 신참요원 이다.
프로스트는 영국의 정보기관(MI6)에 의해 수집된 각 국 정보기관의 비위사실이 망라된 비밀파일을 남아공에서 넘겨받자마자 생명을 위협받게 되고 그것을 잠시 모면하기 위해 남아공 소재 미 영사관에 들어가면서부터 두 주인공, 즉 프로스트와 웨스턴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만남을 시작으로 영화는 알 수 없는 음모와 배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된다.
프로스트가 넘겨받은 그 비밀파일에 자신의 비위사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CIA의 내부자는 그 정보를 없애거나 또는 프로스트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고 이것을 막아내려는 신참 CIA 요원 웨스턴의 노력은 눈물겹다. 비위사실이 공표되는 순간 자신의 존립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면 누구든 그것을 일단은 방어하려 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러한 방어행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방어행동이 영화구조의 주요한 동기가 되어 위의 두주인공의 만남과 함께 관객들에게 매우 잘 짜인 심리 스릴러를 제공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정보기관의 음모와 그 음모의 희생자, 그들의 배신과 또 다른 음모는 비교적 잘 전달된 느낌이다.
정보기관의 조직은 거의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점조직이란 하부의 여러 조직들은 서로를 알 수 없게 만들어 각자의 독특한 영역만을 운영하도록 하고 만약 그런 조직들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 조직만을 제거함으로서 전체 조직의 건강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영화에서 CIA 내부자들의 움직임은 이런 사실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데이비드 바로우(브렌단 글리슨 분)와 케서린 링클레이터(베라 파미가 분)는 각자가 다른 조직을 운영하고 있음을 여러 가지 경우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영화의 끄트머리 쯤 부국장 할런 위트포드(셈 쉐퍼드)는 웨스턴의 보고서를 읽으며 "진실이란 때로 모두를 아프게 하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웨스턴의 보고서 중 일부를 수정할 것을 종용하며 국익, 국가의 안위를 동시에 이야기 한다. 이 부분은 현실의 어떤 나라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잔상들
남아공은 아파라트헤이트로 잘 알려진 나라다. 지금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고 월드컵이 열릴 만큼 그 정책이 철폐되었지만 그 짙은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보이는 비참한 흑인 거주구역을 보며 그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 덴젤 워싱턴이 흑인이라는 것이 우연히 아니라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었음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총격장면은 최근에 본 이런 유의 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최근 영화들은 잔혹성만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 영화에서의 총격장면은 관객들에게 총격의 분위기와 긴장을 최대한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 느껴졌다.
▲ 차량 추격장면 영화 초반부 긴장을 유도하는 차랑 추격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
차량 추격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의 등록상표와 같다. 따라서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갈수록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더 실제 같은 속도감과 파괴력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린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초반부에 등장하는 차량 추격 장면으로 생각된다.
▲ 덴젤 워싱턴 그는 영화의 무게를 더한다. ⓒ 유니버설픽쳐스
덴젤 위싱턴은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능청스런 그의 웃음이나 중간 중간 보여지는 표정연기는 영화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반면 웨스턴역의 레이놀스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거나 혹은 지나치게 인상을 쓰고 있어 약간은 안쓰러웠다. 레이놀즈의 사랑이야기는 그저 비스켓처럼 바삭거릴 뿐이었다.
정보기관
우리나라에는 한해 예산 1조원(2011년 추정치)으로 움직이는 거대 조직 국가정보원이 있다. 지난 해 김정일의 사망 정보에 대한 지연보고로 2012년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주장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이라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시에 국민의 적절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보기관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국민의 제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조직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국민을 향한 조직은 아니었고 시대가 변했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들이 누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그저 모호할 뿐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원훈 "자유와 진리를 위한 무명의 헌신"에서 "무명"이 나타내는 것처럼 그 조직 속에 포함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그들도 여러 가지 일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자유"라는 말과 "진리"라는 말이 왠지 뜨악하지만 주관적인 측면에서 자유나 진리는 얼마든지 변용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리 어색할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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