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문을 펼쳐들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전방위사찰보고서 사건이 커버스토리로 대서특필되었다. ''BH하명'...해명해보시죠' 곧이어 들어온 문자 '한나라당 특검요구' 며칠 전 일이다. 청소시간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청소는 안 하고 무리를 지어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담임이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그제사 눈치를 보며 청소를 시작하곤 하는데 그 날은 주위 친구들이 담임이 왔다고 눈치를 주는데도 그 아이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반장더러 앞으로 오게 했더니 그 녀석들이 오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곧바로 흩어져 도망가고 말았다. 재차 반장에게 오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두 명이 마지못해 왔다. 오늘의 교실풍경이다. 교무실로 돌아와 고민하였다. 반복되어 일어나는 '도망과 무시'라는 현실 앞에 담임의 영을 세울 수 있는 묘책은 뭘까? 베테랑인 나마저도 쉽사리 특단의 해법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 자신의 통솔력의 상실인가 싶어 슬퍼지기까지 한다. 반장도 도망간 친구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하고, 불려왔던 두 아이들도 같이 있던 아이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한 현실 앞에서... 아이들이 짊어질 사회적 책무감에 대한 공황상태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아이들의 반응은 자기 보호를 위한 오리발일 때가 더 많다. 이번에도 저희들끼리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반장과 담임이 함께 지켜보았는데도 속이질 않는가. 어디서 만들어진 습성이며, 문화일까? 거짓말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감시카메라라도 설치해 증거를 들이대고 싶을 때가 많다. 안전 때문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최근 학교에는 CCTV 설치가 증가하고 있다. 다시 불거진 국무총리실 민간인사찰도 그래서 이루어진 일일까. 갑자기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픈 묘한 동정심이 발동했다. 국익을 가로막고 혼란을 획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일이나 학급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아이들이 못 미더울 때 떠오르는 게 CCTV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있으랴. 사실, '청소만 잘 시켜야겠다'는 그 '생각없음'에 사로잡히면 CCTV감시가 아니라 사슬을 묶어서라도 아이들을 부리려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결코 능사가 아니지만 생각이 게으르면 그렇다. 요령부득이요 소통부족이요 정성부족인 것이다. 우선 청소를 안 하던 아이들은 필시 사연이 있을 것임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평소 학급 안에서 자신의 책임감을 못 느끼거나 무임승차가 습관화되어 있거나 배정된 역할이 불평등하거나..... 분명 청소를 책임지지 않는 이유가 청소하는 일보다 먼저 있었다면 청소는 뒷전에 있지 않았을까? 그런 원인을 찾아내지 않은 채 단지 청소를 하지 않은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담임이 눈길을 주지 않는 순간 학급의 공동체는 한 발짝도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불법사찰보고서 파문 앞에서 두려움이 앞선다. KBS기자들이 발표한 국무총리실 사찰문건을 통해서 감시된 면면이 졸렬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높이는 결코 낮지 않음에도 고등학생보다 낮게 취급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신뢰 깊은 검찰의 특별조사도 불안하다. 권력을 가진 담임이 아이들의 불만을 면면히 들여다보지 않고 '청소를 잘 하려는 성과'만 쫓으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씁쓸하다. 아이들이 그것을 배운 것일까? 나는 '무시와 도망'이 판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CCTV보다 인간적인 항의(?)를 선택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늘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범죄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CCTV를 떠올리는 순간 교육(통치)을 포기한 것이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더니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풀어냈다. 담임이 삐져 교실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를 생각했다. 편지를 써왔다. '반성한다고, 잘 하겠다'고 다짐하는 쪽지를 교무실로 가져왔다. 밀고 당기면서 책임관계를 물은 효과다. 감시하는 방법보다 더디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각을 끌어내는 쪽으로 선택한 결과다. 닉슨게이트가 떠오른다. 사건이 터지고 수습을 잘 못해 결국 '하야'라는 최악의 결론에 도달한 것을. 편의주의적인 자기착각에 빠져 CCTV에 의존하거나 일방적인 교사중심의 판단으로 아이들의 진심을 놓치고 명령이 최선책이라고 착각할 때 진행되는 수순을 사필귀정처럼 말해주고 있다. 나 자신에게 해명을 던진다. 모름지기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통치의 위력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신뢰를 잃으면 교육의 성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공자는 왕의 덕행[덕치]을 강조했는지 모른다. 나는 담임으로서 신뢰를 잃은 채 군림하여 1년이 아니라 평생 외면당하는 담임이 되고 싶지 않다. 담임이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자세, 들으려는 자세를 가질 때 교실 청소는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잘 해낼 것이다. #민간인불법사찰 #CCTV #총리실불법사찰 #불법사찰보고서 #청소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