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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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진(hwajin88)등록 2012.04.02 17:59
지난주일 그러니까 4월 1일 페이스 북을 열었더니 꽤 유명한 A목사의 영정 사진과 함께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내용과 빈소가 차려진 곳까지 공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주일이라 조문은 사절하니 위해서 기도와 위로를 바란다는 부음이었습니다. 나하고 나이가 동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어찌 벌써 죽나 싶기도 했지만, 사람 죽는 게 뭐 순서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조문 글을 하나 남길까 하다가 주일이라 마음이 바빠서 이따 해야 겠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쭈욱 보다가 웬지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어 상세히 보니 만우절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 이 양반 그래도 그렇지. 무게 있는 목사님이 좀 경솔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사람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딴 목사님들은 그게 아니었네요. 수백 개의 조문 댓글이 달리고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 그 분 이야기를 하며 사람이 앞일은 모르는 거니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자는 둥 설교의 소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분이 좀 알려진 분이거든요.

그런데 오후에 그 분이 여전히 살아서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리고 있는 걸 보고서야 많은 목사님들이 만우절 장난임을 알고 분개한 것입니다. '아니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더니 목사가 종려주일날 장난하나? 사과 하시오!" 이런 글들이 막 올라오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 자신의 사망 기사를 내렸는데 그 여파가 가라앉질 않고 있습니다. 사과 하라는 건데 그 분은 만우절 날 좀 웃자고 한 건데 왜들 난리냐는 반응입니다.

양력으로 4월 1일은 만우절이라 해서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로 허락되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을 황당하게도 하고 놀라게도 하는 웃기는 날입니다. 물론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해서 거짓말을 권장하기 위해 생긴 날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날만큼은 좀 엉뚱한 말이나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말로 서로를 놀라게 하고 웃기기도 하면서 한 해의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월을 풍자와 해학 정도로 여유를 갖자고 만든 날로 생각이 되어 집니다.

만우절을 영어 표기로 April pools' day 혹은 All pools' day 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가까운 사람들끼리 이를테면 친구나 이웃끼리 농담 비슷한 거짓말로 당황하게 하거나 난처하고 놀라게 함으로서 긴장을 풀고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사월의 바보' 혹은 '모든 바보의 날'로 여기는 풍습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간의 심성의 변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거짓말에도 수치심을 느끼거나 분노했습니다. 필요 불가피한 하얀 거짓말조차도 주저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속된 말로 못하는 게 병신입니다. 거짓말이 상식이 되었고 거짓말이 때론 진실보다 우위에 있기도 하고 진실하면 손해보고 진실하면 바보라고 여기는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진실이 통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보기란 희귀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루만이라도 모두가 어리석은 날이 되어 웃어보기도 하고 긴장을 풀고자 했던 옛날의 여유와 진솔함은 어디 갔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모르쇠가 상식이 되어버린 듯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수 없는 단어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약속하고 다짐해 놓고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하나님도 듣지 않으신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세상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시편 51편 10절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을 다시 한 번 읊조려 봅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우리 모두가 정직해지고 진실해 보자는 정직 운동을 멸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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