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흘러간 나의 피

헌혈, 나눔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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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지(wonji1000)등록 2012.04.03 17:40
'네게 흘러 들어간 나의 피를 생각하는 저녁.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도 오히려 기쁜 것을 사랑이라 한다면 피를 나누는 것보다 큰 사랑이 어디 있으랴. 견딜 수 없는 것을 함께 견디고 가장 어려운 길을 함께 손잡고 가는 걸 사랑이라 한다면 피를 나누며 가는 길 보다 큰 사랑 어디 있으랴' (도종환, 네게 흘러간 나의 피 中)

누구나 한번쯤은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피를 구하는 홍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피켓에는 "○○형 피 급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 년 내내 헌혈자를 구한다는 홍보를 볼 수 있으니 피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에 비해 헌혈자가 얼마나 적은지 짐작할 수 있다.

헌혈, 왜 해야 하는 걸까?

사람의 힘으로 인공혈액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련만,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인공혈액을 일반화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서 혈액은 아직까지 대체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많아지고, 헌혈로 얻을 수 있는 피는 점점 부족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혈장과 혈구로 구성되어 있는 혈액은 살아 있는 세포들이어서 장기간 보존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혈용 혈액은 자급자족하고 있지만 의약품의 원재료가 되는 혈장성분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으로부터 수입하지 않고 혈액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300만 명의 헌혈자가 헌혈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일한 해결방법은 헌혈자가 늘어나는 것뿐이다.

헌혈의 종류 : '전혈헌혈'과 '성분헌혈'

헌혈자는 전혈헌혈과 성분헌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당일 혈액제제별 병원수요량이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간호사가 특정 헌혈종류를 권장하기도 한다. 전혈헌혈은 '全, 온전할 전'(全血, whole blood)을 쓴다. 말 그대로 혈액의 모든 성분인 적혈구, 백혈구, 혈장, 혈소판을 채혈하는 것이다. 전혈헌혈은 헌혈할 수 있는 피의 양에 따라서 다시 320mL와 400mL 헌혈으로 나뉜다. 320mL 전혈헌혈은 만 16세 이상 70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400mL 전혈헌혈은 만 17세 이상 7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 헌혈들은 약 10분에서 15분정도가 소요된다. 헌혈을 하고 난 뒤 2개월 후 같은 날짜부터 다음 헌혈이 가능하며 연 5회까지 가능하다.

여기에서 '그렇게 주기적으로 헌혈을 해도 몸에 지장이 없을까?' 하고 걱정하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두 달 간격으로 헌혈해도 무리가 가지 않는 건, 우리 몸의 조절 능력 때문이다. 적혈구의 수명은 보통 120일 정도이다. 그러므로 무작위로 피를 빼내면 확률적으로 빠져나간 적혈구의 반은 60일 이내에 파괴될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60일 이상 수명이 남아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헌혈 후 두 달이 지나는 경우 몸 밖으로 빠져나간 적혈구의 반만 회복될 뿐 나머지 반은 보충되지 못한 채 손실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몸에서 피가 부족해지면 자동으로 보상 과정이 발동되어 생산능력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헌혈을 하더라도 회복속도가 빨라져 두 달 만에 또 헌혈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성분헌혈이란 성분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소판 또는 혈장 등의 필요한 성분만을 분리해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헌혈방법으로 대표적으로 혈장성분헌혈과 혈소판성분헌혈이 있다. 성분헌혈은 만17세 이상 6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다. 성분헌혈은 필요하지 않은 성분을 다시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과정이 추가되므로 앞서 살펴보았던 전혈헌혈과 달리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된다. 혈장성분헌혈의 경우 30분에서 40분정도 소요되며 혈소판성분헌혈의 경우 약 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다. 이 헌혈들은 2주 후 같은 요일부터 다음 헌혈이 가능하다.

헌혈, 정말 해도 될까?

많은 사람들이 선뜻 헌혈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헌혈하는 과정이 비위생적이거나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헌혈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들은 무균처리 되어 있으며, 한 번 사용 후에는 모두 폐기처분하기 때문에 헌혈로 인해 에이즈 등 다른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전혀 없다.

지난 2009년에는 흥미로운 외국 연구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핀란드 쿠오피오에 있는 공중보건연구소가 "2,682명의 중년남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헌혈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80%나 낮다"고 발표했다. 이는 헌혈에 의한 혈액상실이 체내의 철분 저장량을 줄여 심장마비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철분이 약간 모자라면 심장병의 위험이 줄어들고 철분이 너무 많으면 심장마비의 위험이 높아진다. 그래서 피가 너무 많이 생성되는 병이나 체내 철분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병을 치료할 때는 헌혈과 같은 방법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시기적절한 헌혈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되려 우리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헌혈을 하게 되면 골수를 자극해 새로운 피를 생성할 수 있으며 우리의 몸은 새로운 혈액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남자들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아서 혈액점도가 높은데 이 혈액점도가 너무 높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헌혈을 통해 피를 주기적으로 빼내면 동맥경화, 고혈압 등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헌혈관리. 내 피는 어디로?

필자는 헌혈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사들을 접하고는 "생피를 왜 빼? 내 피 아까워서 안돼" 라고 말했던 사람들의 '거봐, 내가 뭐랬니?'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렇게 헌혈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촉구되는 상황에서 필자는 독자들에게만 현혈 부족에 대한 책임을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본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임무는 안전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혈액관리체계를 실천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상의 혈액서비스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혈액 전문기관이 될 것을 비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대한적십자사가 혈액 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했다는 지적은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대한 불신을 갖게 했다. 적십자사는 혈액의 가격 인상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직원들에게 연간 35억원에 이르는 실적평가급을 지급하다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중단 했으나, 올해 다시 실적평가급을 부활시켰다. 적십자사는 2005년부터 매년 각 혈액 공급기관의 도서실운영·도서구입비로 총 4억8000여만원을 지원했으나, 실제 도서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은 없으며 도서를 구입했는지 여부도 확인 할 수 없었다. 지원비에 대한 영수증처리 등 정산과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어디에 집행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헌혈로 모아진 귀중한 혈액들이 응고, 오염되는 대한적십자사의 부실 관리로 인해 상당량 폐기되고 있다. 2010년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분석한 최근 5년간 부적격 혈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대한적십자사가 폐기한 혈액은 7만5577팩(400㎖)에 달했다. 이는 2009년 한 해 동안 폐기된 혈액이 10만5999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지난해 폐기된 혈액은 무려 47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헌혈한 뜨거운 피들이 피를 책임지고 담당해야할 혈액관리본부의 '부실관리'로 인해 버려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차원의 노력

현재 헌혈자은 대부분 학생이나 비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헌혈가능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이 일반 직장인들의 근무시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헌혈까지 유도하기 위해서는 휴일 헌혈을 늘리고 야간 헌혈시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시민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헌혈의 집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 실제로 성남지역에서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대형 현혈의 집을 확대하고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을 확장한 결과 헌혈 건수와 인원이 전년도 보다 10% 이상 증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국민들의 헌혈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가 포함된 방안을 시행 중이다. 공무원이 등록헌혈제도에 가입하여 헌혈할 경우 반나절 휴가를 보상하거나 학생들이 헌혈증을 학교에 제출하면 봉사활동 실적으로 인정해주고 헌혈증을 소지한 시민이 공공·문화시설 이용시에는 일정금액을 감면해주는 등의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 원활한 혈액 확보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국민에게 헌혈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혈액 폐기 문제나 성과급 잔치 문제들은 모두 헌혈에 대한 정부의 관리규정이 소홀한 탓에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잘못이 드러난 직원에 대해 법과 규정에 따라 처벌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해서도 엄중 문책함으로써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 이미 유통된 부적격한 혈액에 대해서는 관계당국과 함께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낱낱이 국민에게 보고하여 수혈로 감염된 사람이 발견될 경우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헌혈, 따뜻한 사랑의 실천

전북 전주 공장 버스부 조립반에서 일하는 이모씨(남·32)는 얼마 전 갑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진찰 결과 판정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대동맥판폐쇄부전증. 심장에서 뇌 쪽으로 흐르는 대동맥이 막혀 원활한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어 당장 수술이 필요한 중증이었다. 대동맥 계열 수술이다 보니 일반 수술보다 수혈량이 몇 배나 많이 소요됐다. 이씨의 경우 특히 수술이 쉽지 않은 경우라서 무려 60여 팩이나 되는 대규모 수혈을 받아야만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들은 이 씨 소속 부서인 버스부를 중심으로 헌혈증 모으기와 단체 헌혈에 나섰다. 이렇게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모은 헌혈증만 20장. 같은 부서 동료들이 하루 날을 잡아 단체헌혈을 해서 모은 헌혈증 40장까지 더해 모두 60장의 헌혈증이 모아졌다. 이씨는 "형님들과 동료들이 나 때문에 일부러 헌혈까지 해가며 마련해 온 헌혈증을 받고 보니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몸둘바를 모르겠다"며 "하루 빨리 건강해져서 다시 그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열심히 차를 만들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헌혈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인체에 해를 주지도 않는다. 도리어 혈액검사나 간 기능 검사 등 자기의 건강상태를 무료로 점검해볼 수 있고, 사람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뿐만 아니라 헌혈증서가 있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 수혈을 받을 수 있어 만일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효과와 이점을 지닌 헌혈을 단지 거부감과 두려움 때문에 피하려 한다면 혈액수입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박애주의자로 손꼽히는 마더 테레사 수녀는 "사랑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고 그 행동은 바로 봉사"라고 했다.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고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상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헌혈이야말로 가장 쉬운 봉사이며 사랑이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생명수'를 나눠 주는 아름다움, 이제 우리가 실천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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