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이냐 아니냐는 이제 유권자 손에

- 이번 총선은 탈핵(탈원전)의 마지막 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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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haha9601)등록 2012.04.09 17:31
저는 작년까지 반핵운동가도 아니었고, 정당과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시민운동이 좋고, 풀뿌리운동이 좋아서 일벌이고 돌아다니고 사람만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작년 후쿠시마 사고는 제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후쿠시마에서 전해오는 소식을 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안전대국이라던 일본이 헬기를 동원해서 핵발전소에 물을 퍼붓는 것을 보며, 인간이 가진 기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전해진 소식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철저하게 망가졌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방사능으로 땅이 오염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폭을 당했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양배추 농사를 짓던 농민이 자살하고, 부모는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서 이산가족들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수백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염된 땅에서 세슘 쌀이 나오고, 세슘분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시마산 야채를 홍보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요리를 해 먹던 TV 출연자가 급성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생겼습니다.

후쿠시마는 남의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우리 밥상에 방사능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수입되는 대구, 명태, 고등어에서 세슘이라는 방사능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검출되는 횟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슘에 오염된 수산물이 수입된 분량만 하더라도 1,700톤이 넘습니다. 세슘이 검출된 고등어가 수입된 물량이 1,400톤이 넘습니다. 이 많은 생선이 누구의 입에 들어갔을까요? 시장 생선가게에 가보면, '일본산 생선은 소비자들이 싫어해서 갖다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수입은 되었습니다. 이 생선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러고 보니 국내에 있는 핵발전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정확하게 몇 개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21개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었습니다. 짓고 있는 것이 7개가 있었습니다. 계획 중인 것이 6개가 있었습니다. 신규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8개가 더 있었습니다. 합치니까 총 42개까지 늘어나게 생겼습니다. 

이 사실을 안 때부터 저는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핵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탈핵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우리 공동체와 삶을 지키기 위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탈핵은 정치의 문제

그런데 탈핵을 하려고 하니 중요한 게 정치였습니다. 독일 등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탈핵 결정은 모두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관료나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서는 탈핵은 불가능했습니다. 막대한 경제적 이권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핵발전소 1개를 건설하는 데 최소 3조원 이상의 돈이 흘러다닙니다. 매년 수천억원의 돈이 핵발전 진흥의 명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정치였습니다.

정치에서 이슈가 되고, 정당에서 공약이 나오고, 유권자들의 표심이 모아질 때에만 탈핵이 가능했습니다. 독일은 1998년 독일녹색당이 6.7%의 득표율을 올렸을 때 탈핵으로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핵발전 밀집도 세계2위의 벨기에도 정치의 영역에서 탈핵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에서 '탈핵'은 중요한 의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4일 녹색당이 창당했습니다. 녹색당은 우리 사회에서 녹색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를 '탈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고, 미래의 삶도 보장할 수없습니다.

고리1호기와 새누리 비례1번

총선국면으로 들어갈 즈음에 고리1호기 사고은폐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핵발전소에 전기공급이 끊기고 냉각이 안 되어서 원자로 내부온도가 올라가는 대형사고였습니다. 자칫 후쿠시마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사건이었습니다. 고리1호기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2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리1호기의 사고는 우리 사회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고리1호기는 이미 설계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입니다. 수명을 연장해서 계속 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을 승인한 과학자가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결국 새누리당은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민병주씨는 그 상징일 것입니다. 고리1호기의 폐쇄문제도 이대로 총선이 끝나면 물 건너갈지 모릅니다. 전문기관의 조사를 토대로 폐쇄여부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에 늘 정부는 '안전하다'고 하며 재가동을 해 왔습니다.

이번 선거를 탈핵 선거로

선거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고리1호기 폐쇄는 이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 울산지역의 이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실 고리1호기의 문제는 단지 고리1호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월성1호기 등 핵발전소들의 수명이 줄줄이 끝납니다.
이 수명이 끝난 발전소들은 폐쇄를 해야 하지만, 정부는 폐쇄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폐쇄하는 순간 뒤처리 문제가 현실로 닥치기 때문입니다. 1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사용후 핵연료가 발전소 내에 쌓여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거대한 방사능 덩어리인 핵발전소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려면 수명연장이 가장 손쉬운 방안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수명연장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는 잠재적인 핵폭탄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들을 폐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탈핵'을 결정해야 합니다. '탈핵'을 결정하고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폐쇄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안전하게 사는 길이고,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당신은 전기 안 쓰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발전 하지 않는 국가들도 전기쓰고 삽니다. 다만 그 전기 중 상당수는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입니다. 그리고 전기를 아껴 쓰고 삽니다. 기업들은 에너지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하면 핵발전하지 않고도 필요한 전기를 쓰고 살 수 있습니다.

선택은 지금 해야 합니다. 더 이상 핵발전소가 늘어나기 전에 해야 합니다. 올해 말이 되면 42개까지 핵발전소가 늘어나는 것이 확정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핵발전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핵발전 확대'냐 '탈핵'이냐를 선택해 주셔야 합니다.

어제 밤 서울의 거리는 밝았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밝기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밝기일 것입니다. 4월 11일 밤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한국 사회가 핵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라면서.

하승수<녹색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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