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올해 대대적으로 공격적인 매장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국내 여론을 외면하고 전적으로 본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코스트코의 확장전략에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중소상인들의 위기감은 높아가고 있다. 더구나 한·미FTA가 발효돼 어렵게 마련된 골목상권 보호제도가 코스트코에는 무용지물이라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코스트코는 오히려 매장수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차별화한 상품을 무기로 지난 회계연도 매출이 2조원을 돌파할 만큼 '코스트코 열풍' 거세지자 한국 시장에 안착했다고 판단, 전방위적인 매장수 확대 전략을 구사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코스트코는 지분의 96.7%를 미국 본사가 소유하고 있어 전적으로 본사의 지시에 의존하는 상황.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이지만 코스트코는 전형적인 외국계 기업으로 자유로운 입장이다.
이런 코스트코가 지난 3월15일 발효된 한·미FTA(한·미자유무역협정) 효과를 노리고 공격적 확장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과 골목 영세상인들은 FTA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게 됐다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영세상인 등은 코스트코가 국내 유통업계를 대신해 총대를 메고 어렵게 도입된 국내 유통법, 상생법,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법안을 무력화시킬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이러게 되면 그나마 균형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 법적 장치들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 코스트코 ⓒ 이상호
코스트코 공격적 매장 확대
전방위적인 매장 확대에 나선 코스트코는 올해 안에 경기 용인과 광명, 경남 울산에서 추가로 점포를 개설하기로 확정했다. 나아가 부천점 입점설도 나돌고, 수원·광주·인천 등도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보고 은밀히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국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을 침탈한 '서민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내몰려 지탄을 받고, 정치권·정부·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강제휴일과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당해 위축되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관련업계는 코스트코가 매출이 급증하고 한·미 FTA 발효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자 매장수 늘리기에 적극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본사가 운영하는 회사다 보니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을 활용해 정부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스트코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매장 확대에 제동을 걸면 한·미 FTA의 ISD 조항을 내세워 즉각적인 가처분 소송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국내에서 코스트코는 신세계가 1990년대 초 대형마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만든 회원제 창고형 매장 프라이스클럽이 전신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신세계가 이 사업을 접으면서 미국 프라이스에 지분을 넘겼는데 이 회사가 코스트코와 합병하면서 지금의 코스트코로 이름을 바꿨다.
코스트코코리아는 미국의 코스트코홀세일인터내셔날이 지분 96.7%를 가지고 있고, 이마트가 3.3%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7개 나라에 540개 매장을 뒀다.
초창기 국내에서 5개 내외의 점포로 시작한 코스트코는 현재 한국 본사인 양평점, 대구점, 대전점, 양재점, 상봉점, 일산점, 부산점 등 총 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2001년 5호점인 상봉점을 개점한 이후 2009년이 돼서야 7호점인 부산점을 개설할 정도로 매장 확장이 더딘 행보를 보여왔다. 그런데 올해만 3개 매장을 확장할 계획에 있어 이례적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먼저 코스트코는 경기 용인 기흥호수공원 인근 보라·공세택지개발지구 내에 면적 2만1000㎡ 규모의 점포를 곧 오픈할 예정이다. 국내 8호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용인점은 서울 양재점(1만2855㎡)보다 큰 규모다. 경기 지역에서는 일산점에 이어 두 번째 점포로, 2009년 7월 오픈한 부산점(7호점) 이후 새로운 점포로는 처음인 셈이다.
작년 말 공사가 시작된 울산점은 북구 진장동 진장유통단지 안에 지상 4층, 연면적 3만1159㎡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울산점 개점 건축허가를 받는데 1년 4개월이 소요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울산 북구청이 영세 상인들에 대한 악영향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코스트코는 울산시에 행정심판을 요청하는 우회적인 절차를 통해 끝내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건축허가를 받은 후 울산 북구청을 상대로 10억 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건축기간은 9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보여 올 9월께는 개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이다. 해당 지역 상인 단체들은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코스트코 광명점 입성은 그리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KTX광명역에 환승터미널이 건립되면서 코스트코 입점도 확정됐다. 코스트코는 환승시설 5층을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30년간 임차하게 된다. 올해 하반기 중 코스트코 광명점을 개장하는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광명점에는 현재 양평점의 한국 본사도 이전할 예정이다. 코스트코 본사가 이곳에 옮겨오면 그 상징성이 매우 크다는 해석이다. 쾌속으로 영호남 남쪽 끝까지 접근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통의 심장부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스트코의 광명점 입점은 당장 수도권 남부지역 상권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 구로·금천·관악구 일대와 경기도 시흥·부천·광명·안양·군포·의왕시 등의 지역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특히 광명점 위치는 2014년 개통되는 강남순환고속도로와 인접해 있다. 이 도로가 개통되면 서울 강남에서 이곳까지 불과 20분이면 접근할 수 있어 포화상태에 이른 양재점의 고객까지 흡수할 수 있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이외 부천오정물류단지에도 코스트코가 입점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이 지역 중소상인들이 긴장하고 있다. 부천시수퍼마켓협동조합 백원선 이사장은 "코스트코가 입점하면 가까이는 부천시 오정구와 인천 부평·계양구, 서울 강서구를 상권으로 할 것이며, 이미 입점한 서울 양평점, 고양시 일산점, 입점예정인 광명 KTX 역사점 등과 더불어 부천시를 포위해 중소유통상인과 재래시장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코스트코는 회원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 이상호
코스트코 매출 2조…한국시장 안착
유료 회원제와 주차전쟁 등 국내 대형마트보다 쇼핑이 불편하지만 코스트코는 '열풍'이라 불릴 만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회계연도(2010년 9월~2011년 8월) 매출이 전년 대비 32%가 늘어나며 2조86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994년 한국에 진출한 지 18년만에 매출 2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2000년(2000억원)과 비교하면 10배나 증가한 수치다.
국내 대형마트 매출이 시장포화로 주춤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급증세를 보이는 것이고, 외국계 대형 할인마트인 까르푸와 월마트가 국내에 진출했다가 현지화에 실패해 사업을 철수한 것과도 대비된다.
코스트코는 매장별 매출액도 국내 다른 대형마트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 1년간 점포당 평균 매출이 3000억원 수준으로 이마트의 3배 수준이다. 회사 측에선 매장별 실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코스트코 양재점의 연간 매출은 3800억원대를 넘어서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과 전국 할인점 1·2위를 다투는 '빅 점포'로 성장했다. 국내 대형마트 '빅3'의 1위 점포인 이마트 은평점, 홈플러스 월드컵점, 롯데마트 월드점 등의 연간 매출(2200억~2500억원 수준)도 훨씬 웃도는 규모다.
1994년 서울 양평점을 시작으로 국내 사업을 시작한 코스트코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콘크리트 바닥, 대들보가 보이는 천장에 상품위치 안내 표지판도 없고 서비스 직원을 최소화한 매장 구조 때문에 '백화점식 할인점'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코스트코는 2000년대 중반 들어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할인마트 중에 유독 코스트코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통업계에서는 미국 점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창고형 매장 구성과 코스트코에서만 살 수 있는 해외 상품들이 '해외파'에겐 향수를, 국내파에겐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또 회원제로 연회비 3만5000원(비즈니스 회원은 3만원)을 받는 대신 상당수 제품의 할인폭이 큰 것도 손님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이나 호주 등 해외 식품 및 공산품을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아울러 구입한 제품에 대해 100% 환불해주는 '상품보증제' 서비스도 고객을 사로잡는 요소다. 코스트코 창고형 매장에서는 자체 브랜드인 '커클랜드 시그니처(Kirkland Signature)' 제품과 티쏘(Tissot), 불가리 향수, 몽블랑 만년필 등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브랜드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코스트코는 매일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고질적인 주차문제와 물건값 결제에 삼성카드만 사용하도록 한 조치가 한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로 지적되며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코스트코 양평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평일에도 20~30분, 주말에는 40~50분을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남구 양재점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양평점은 그나마 주차공간을 추가로 확보해 나은 편이지만 양재점은 매장 내 주차장 밖에 없어서 매일 최악의 체증과 주차난이 빚어지고 있다.
코스트코의 주차전쟁은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주말이면 한꺼번에 많은 고객들이 몰려 주변도로에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이 때문에 주변을 오가는 차량들에게 까지 주차전쟁의 여파가 미치고 있지만 소비자 불편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코스트코가 삼성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도 "반소비자적인 형태로 영업을 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코스트코는 지난 2010년 삼성카드와 가맹점계약을 3번째 갱신했다. 이를 통해 코스트코는 매장 내에서 삼성카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0.7%의 수수료를 적용받았다. 삼성을 선택해주는 대신 카드사에 물어야할 수수료를 낮게 책정받는 방법으로 수익을 늘린 것이다.
국내 대형마트의 카드 수수료는 1.5%내외이다. 독점계약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깎아준 삼성카드는 손실을 벌충하기 위해 다른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에게 주던 '3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코스트코에서는 폐지했다. 결국 코스트코 회원들은 코스트코와 삼성카드의 이익을 위해 결제수단이 매우 제한되고 다른 마트가 다 제공하는 3개월 무이자할부 혜택을 포기해야 하는 불이익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재래시장·골목상권 위기감
코스트코의 매장확장 전략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의 중소상인들은 비상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긴장하고 있다. 코스트코 1개 점포의 매출액이 다른 대형마트 점포당 매출보다 월등히 높고, 인근 음식점을 포함한 '대형고객'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관련업계는 코스트코의 한국 내 매장수 확장전략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이 한·미 FTA 발효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한·미 FTA 발효에 따른 관세철폐로 국내 코스트코 매장의 30%에 이르는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그 만큼 높아졌다.
또 한·미 FTA의 ISD로 국내 영세상인들의 반발도 쉽게 제어할 수 있다. 정부가 유통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와 SSM의 강제휴일과 영업시간 제한 규제의 근거를 마련했고 각 지자체들도 규제조치를 속속 시행했지만 코스트코는 이러한 규제로 손해가 발생하면 FTA의 ISD 조항을 내세워 즉각적인 가처분 소송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묵살할 수 있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코스트코가 국내 유통업계를 대신해 총대를 메고 국내 유통법, 상생법,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 법안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국내 대형 및 중소 유통업체간 균형추 역할을 해온 법적 장치들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골목상권 침해나 중소상인들과의 상생방안 마련 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온 것으로 알려진 코스트코. 한·미 FAT 원년을 맞아 그동안 준비해온 매장확대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하고 나섰지만 정부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해놓았기 때문에 실제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문제를 얼버무리고 있는 수준이다. 조약상의 문제가 당사국 정부의 구두 약속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상식 이하의 답변을 늘여놓고 있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선거전 지방 소도시에 일정 기간 대형 유통업체 입점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다 좌초되기도 했다. 한·미 FTA에 위배된다는 법적 해석 결과 때문이다.
미국 소매업계 판매 1위인 월마트마저 무서워한다는 코스트코의 무소불위한 확장전략에 맞서 국내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묘수찾기'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지 <사건의내막>(715호, 4월 2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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