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 박사의 ‘허수아비 걷어차기’

헨리 조지 vs 해밀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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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근(youngkun)등록 2012.04.27 14:07
알렉산더 해밀턴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후예들이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헨리 조지의 후예들에게 도전장을 보내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장하준 교수와 함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를 같이 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가 국내의 진보적 경제학자(김기원, 김대호, 김상조, 선대인, 유종일, 이동걸, 장하성, 정태인, 최태욱, 홍종학 등과 헨리 조지의 사상을 따르는 국내의 대표적 조지스트-김윤상, 이정우, 전강수)를 모두 싸잡아 '좌파신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정승일 박사의 주장은 장하준 교수의 생각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정 박사와 장 교수의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1:9)"는 성경 말씀처럼, 한 사람의 생각은 누군가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 필자는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사상을 따르는 조지스트(Georgist) 즉 지공주의(地公主義)자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정 박사와 장 교수는 해밀턴과 리스트의 후예들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만드는데 기여했던 경북대 이정우 교수와 국내 조지스트를 통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땅에서 부활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지난 2007년 9월 1일 "해밀턴의 부싯돌식 발화총(flintlock)을 집어 든 가장 최근의 사상가는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이다"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장하준의 책은 해밀턴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간의 200년 된 결투를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헨리 조지와 해밀턴, 리스트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국가인가, 시장인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먹고 살기 위해 벌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이해관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신(天), 세상(地), 인간(人)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세상과 인간의 경제문제에 대한 해석과 해결책을 다루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따라서 경제문제를 어떤 안경을 끼고, 누구의 생각을 통해서 보느냐에 따라 진단과 처방이 달라진다. 하지만 세상이 불완전하고 인간의 인식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사상은 진리의 일면(一面)과 함께 한계를 가진다. 세상과 인간에겐 절대선(善)도 절대악(惡)도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제학자는 국가와 시장,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토지와 자본의 사유 및 공유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세상과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서 운영하는 국가도 시장도 불완전하다. 국가나 시장이 완전하다거나 만능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며 현실성이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에 가깝다. 시장은 완전하고 만능이기 때문에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반면에 시장 자체가 '악마의 맷돌'이며 폐기처분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도 신화다. 인간이 혼자서 살지 않는 이상 시장 없이 살 수는 없다. 노동과 상품의 교환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속한다.

국가도 완전하지 않으며 만능이 아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잘못된 국가지도자를 뽑으면 오히려 시장보다 국가가 더 무능하고 부패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현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도 유치산업보호론에 입각한 보호무역도 타락한 현실에선 둘 다 만능이 아니며 불완전하다.

하지만 국가와 시장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국가와 시장을 폐기하고 살 수는 없다. 지금까지 인류는 국가를 폐기하거나, 시장을 폐기하려는 시도를 수도 없이 해왔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국가와 시장은 그 자체로 악마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의 사회적 본성상 자연적인 것이다. 다만 인간이 국가와 시장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했을 때는 국가와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적인 것으로 돌변할 수 있다. 국가절대주의(전체주의, 나치즘, 파시즘, 제국주의),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와 시장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국가와 시장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국가와 시장을 우상숭배하고 섬겼을 때 주인인 인간이 하인인 국가와 시장을 위해 희생당하고, 국가와 시장은 악마적인 것으로 돌변해 인간을 잡아먹으면서 신의 심판을 집행한다.

우리는 국가와 시장, 국제무역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가와 시장, 국제무역이 오히려 인간을 잡아먹지 않도록 잘 다스리고 사용해야 한다. 국가와 시장, 국제무역은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을 섬기는 하인도 되고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도 된다.

헨리 조지가 왜 '좌파신자유주의자'인가?

헨리 조지는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둘 다 인정했다. 또한 보호무역보다는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공정한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는 원칙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맞지만 토지사유제가 보편화된 나라에서는 사회가 지대(rent)를 환수하여 국민 모두를 위해 쓰는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개인이 땀 흘려 노동한 결과인 자본에 대해서는 사유를 인정하자고 말했다.

토지와 자본을 사회가 공유하고 시장을 폐기하려는 것이 좌파 공산주의다. 반면 토지와 자본을 개인이 사유하고 국가의 역할은 최소화하면서 시장은 극대화하려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헨리 조지는 원칙적으로 토지는 사회가 공유하고 개인이 노동해서 만들어낸 자본은 개인이 사유하며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둘 다 인정한다. 요약하면 헨리 조지 사상의 핵심은 토지(가치)공유와 자본사유,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인정, 국가 간에는 '공정한(fair)' 자유무역이다.

이러한 헨리 조지의 사상을 따르는 지공주의자를 정승일 박사는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매도한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둘 다 인정하는 것이 잘못인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고 개인이 땀 흘려 노동한 결과는 보장하는 것이 잘못인가? 국가 간에 '공정한'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잘못인가? 지공주의자가 왜 좌파이며 왜 신자유주의자인가? 도대체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언어가 성립 가능하기는 한 건가?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모순이 아닌가?

아담 스미스가 경제의 주체를 개인으로 보고,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으로 본다면, 해밀턴에게 영향을 받은 리스트는 민족을 주체로 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리스트의 경제학을 가장 많이 찬양하고 악용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독일의 나치당수 히틀러였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지만, 이를 넘어서 다른 민족을 짓밟고 자기 민족만 살려는 민족이기주의는 가장 큰 이기주의이며 크나큰 비극을 낳는다. 우리도 일제가 자행한 민족이기주의의 비극을 혹독하게 경험하지 않았나?

보호무역과 국내 유치산업보호를 주장한 해밀턴과 리스트의 경제학은 민족주의적이고 역사와 제도를 강조한다. 해밀턴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은 장하준 교수도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장 교수는 민족주의 수구 좌파와 우파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로부터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민족주의 수구 좌파로부터는 미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주장하니 인기가 있는 것이고, 민족주의 수구 우파로부터는 국내 유치산업을 보호하면서 재벌을 키우고 관치경제를 한 박정희가 잘했다는 결론이 나오니까 인기가 있다. 그리고 시장보다는 '국가의 역할'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도 좋아한다. 별로 공격당할 일도 없고, 그야말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셈이다.

정승일 박사와 장하준 교수는 시장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가의 역할이 시장을 힘으로 휘어잡아 관치경제를 하면서 국내외 자본도 통제하고, 관세와 무역규제 혹은 국내 유치산업 보호 및 육성을 통해 보호무역을 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장만능주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우리 모두가 겪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과도한 불신과 혐오로 인해 시장을 버리고 국가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성을 낳을 수 있다. 국가의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하다가 자칫 잘못하여 극단적으로 나가면 민족이기주의나 전체주의, 파쇼 등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리스트의 경제학을 잘못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히틀러가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막대기 하나 들고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리스트의 경제학에 영향을 받은 정승일 박사와 장하준 교수는 경제문제의 원인을 항상 밖에서만 찾는 외인(外因)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경제문제의 원인은 밖에서도 찾아봐야하지만, 안에서도 찾아봐야 한다. 즉 외인(外因)론 함께 내인(內因)론도 살펴봐야 한다.

경제문제의 모든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면, "이게 다 저 망할 놈의 미국과 신자유주의, 그리고 저 빌어먹을 놈의 영미식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 금융세계화 때문이다"라는 외인론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정승일 박사의 글을 보면 미국, 앵글로색슨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 IMF, 세계은행, 미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 금융자본, 핫머니 등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정 박사와 장 교수의 주장은 과거 한 때를 풍미했던 종속이론과 뭐가 다른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제문제가 모두 다른 나라들 때문인가? 정 박사와 장 교수는 모든 경제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서 국내의 재벌개혁, 토지제도개혁,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하면서 사이비진보라고 매도한다.

물론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금융세계화 등의 폐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불공정과 독과점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의 독점 문제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독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헨리 조지는 모든 특권과 독점에 반대하며, 특권과 독점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모두 환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토지독점은 모든 독점 중에서 가장 큰 독점이라고 말했다. 토지뿐만 아니라 자본과 금융, 노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특권과 독점의 문제도 반드시 함께 혁파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 박사와 장 교수는 해밀턴과 리스트에 너무 빠져서인지 부동산과 교육, 일자리, 비정규직, 재벌 문제와 같이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고통당하고 있는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 박사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학계와 시민사회가 지금까지 동의했던 내용을 뒤집는 발언을 하기가 일쑤이다.

자산재분배보다 소득재분배가 훨씬 중요하고, 보유세보다 양도세가 더 나은 세금이며, 종부세는 징벌적 성격의 세금이라는 정 박사의 상식을 벗어난 주장은 정말 이 사람이 경제학 박사가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정 박사의 그런 주장을 누가 가장 좋아할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부동산자산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는 땅부자, 집부자들이 정 박사의 주장에 환호하며 기뻐 날뛸 것이다.

해 아래 누구의 생각도 새롭거나 완전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겸손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정 박사의 주장과 태도는 서로 배우고 협력하기보다는 마치 막대기 하나 들고 혼자서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나타난 사람 같아 보여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또한 있지도 않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때리는 정승일 박사의 선제공격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넘어 혼자서 '허수아비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보여서 안쓰러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고영근 기자는 희년함께(www.landliberty.org)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고영근 기자는 희년함께(www.landliberty.org)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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