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같은 그녀 이정희, 왜 그랬을까?

이정희 에세이집 <내 마음 같은 그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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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섭(dream4star)등록 2020.02.11 11:09
'내 마음 같은 그녀' 이정희 대표는 지난 주말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지난 6일 오전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마지막으로 "국민들 앞에 내려놓는 것과 당원들을 귀히 여기는 것 둘 다 저에게는 배치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떠난 뒤, 주말 내내 그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 그녀는 힘들 때면 즐겨듣는다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들으며 보낸 것은 아닐까?

 

"네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도 없다

네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도 없다"

 

별 일 없이 산다

 

이정희 대표가 별다른 걱정 없이, 이렇다 할 고민도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를 아는 이들은 주말 내내 걱정과 고민 속에 지냈을 것이다. 나는 주말 동안에 최근에 발행된 이 대표의 에세이집 <내 마음 같은 그녀>(학고재 펴냄)를 뒤적이며 지냈다. 통합진보당 건설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눈에 띈다.

 
 

내 마음 같은 그녀 이정희 대표는 <내 마음 같은 그녀>(학고재, 2012년 3월 발행)의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을 "꿈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다시 정갈한 물방울 하나로 남아 다른 물방울들처럼 낮은 곳 어디로 소리 없이 스며들어가기를"이라고 썼다. ⓒ 학고재






"과연 서로 잘 지낼 수 있을까. 통합을 추진하는 사람들도 어색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밖에서 보는 분들도 그러했으리라. 통합결정을 하고 나서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뭘 한 거지?'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통합진보정당을 만들면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5월까지 6개월을 과도 기간으로 정했는데, 그 이유는 또다시 갈라서지 않을 완전히 통합된 정당을 원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과도 기간이 끝나기 전에 예상치 못했던 갈등이 생겼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을 바꿔보고 싶었다는 이 대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마음 같은 그녀>에서는 최근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 대표의 글도 읽을 수 있었다.

 

"당이 상처받는 순간이 왔을 때, 나의 원칙은 확고하다. 당이 상처받는 것보다 내가 상처받는 게 낫다는 것. 개인으로서 내가 무너질 수 있지만, 진보세력 전체가 공멸해서는 안 된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의 미래는 그 어떤 경우에도 모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이미 나는 모든 것을 내놓았고, 이제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무엇을 더 내놓으라고 한다면 새로 얻은 것은 물론, 앞으로 얻게 될 것까지 탈탈 털어 내놓을 뿐,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 등의 비당권파가 비례대표 경선자의 전면 사퇴를 주장한 것에 대해 이 대표는 공정한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고 맞섰다. 그녀의 선택이 진보정당과 진보의 미래에 해가 될지 득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보면 알 일이다.

 

잘 나가는 대권 유망주 이정희는 왜 그랬을까

 

이정희 대표의 지지자거나 반대자거나 모두 그녀가 진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기 기득권과 명예마저도 '탈탈 털어 내놓을' 정치인이라는 것은 대체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반대자는 물론 지지자들도 이정희 대표가 운영위에서 보인 경직된 모습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1박 2일간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된 진보당 운영위 회의를 진행하는 이 대표의 모습은 평소의 소통 잘하는 부드러운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아예 불통을 작정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그래서 그의 정치노선을 따르던 지지자들도 '멘붕' 상태에 빠져든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각을 세우던 이들에게는 방어막 없는 표적이 됐다.

 

"대중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정희의 변신일 것"

"이정희 건은 저도 충격이었습니다. 대충 중재역이라도 할 줄 알았거든요. 거의 영화 '링'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원래 그런 사람들이에요."

 

진중권 교수가 5·4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에서 행한 이정희 대표의 모두진술을 듣고 날린 트위터 내용이다. 지금까지의 여론은 대체로 진 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전도가 유망한 정치인 이정희는 왜 정치 생명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권파를 온 몸으로 방어하고 나선 것일까? 그는 왜 여론의 십자포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뭇매를 맞아가며 당원들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을까?

 
 

위기의 통합진보정당 19대 총선 후보자 전원회의에 참석한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 이들은 과연 다시 마음을 합칠 수 있을까? ⓒ 이정희 의원실






여기에 대해 언론은 대체로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분명 그런 측면도 있겠으나, 이것만으론 운영위에서 보여 준 그녀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는 당권파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이도 아니다. 설령 가까운 사이라 해도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정치인이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부정선거 시비의 주역들을 감싸고 돌 만큼 눈치가 없는 하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무엇을 지키려고 자신이 쌓아온 대중 정치인 이미지를 포기해 가며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 것일까? 그녀가 '옥쇄'를 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운영위 모두진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저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진실에 대한 공정한 규명을 통해 당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당원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서

 

"과연 누가 진보정치에 십수 년 몸바쳐 온 귀한 당원들을, 야권연대 경선을 힘겹게 치르는 중에도 현장투표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한 아까운 당원들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자로 내몰 수 있습니까?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실을 밝힐 의무만 있을 뿐이지, 당원을 모함하고 모욕 줄 권한은 없습니다. 당의 그 누구라도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진상조사위원회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원을 주인으로 여기는 당이라면, 부끄러운 상황을 아무리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당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헌신짝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보수와 진보 매체뿐 아니라 당내 다수 세력이 부정선거 시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당원 한 사람의 명예'를 중시하라고 맞선다. 어찌 보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원 한 사람의 명예', '당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대권 도전도 접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 같은 그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우리 당원 같은 사람들이 없다."

 

2009년 5월 화물연대 광주지회 지회장으로 일하던 박종태씨가 자살했을 때, 광주의 당원들이 가족에게 보여준 정과 의리에 감탄한 뒤 그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녀에게는 정치적 계산을 따지는 것보다 '정과 의리'가 더 중요한 가치인 것같다.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소중하다" 2010년 강화 산마을고 강연 후에 강화 지역 민노당 당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이정희 대표. ⓒ 최진섭




이같은 이 대표의 가치관에 대해 "당원이 국민보다 중요하냐"는 비판 여론이 주를 이룬다. 그녀는 5월 4일 열린  전국운영위원회 마지막 발언을 통해 "저는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당원들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만큼 당원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과 당원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대표는 그가 보기에 부실투성이의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당원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로 진실을 규명한 뒤에 책임을 규명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로서는 부정의 증거도 없고, 범인도 없고, 반론권도 주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소중한 당원들이 범죄자로 내 몰리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싶다.

 

<내 마음 같은 그녀>에는 이 대표가 이십 대 시절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슬럼프에 빠지면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즐겨 읽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도 이 시를 되뇌고 있을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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