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의 어머니’

내 어머니의 사랑을 통한 '외 할머니의 치매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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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총(yooec86)등록 2012.05.28 21:05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

어린시절 가족사진 부친, 모친 김명님옹, 장녀 강수용씨와 그녀의 남매 ⓒ 유은총


"아야 조심히 다녀와라" 구수한 전라남도 사투리, 40년 넘게 서울생활을 해도 고향의 말투를 버리지 못한 김명님 옹(75)이 외출하는 장녀 강수용(53)씨에게 던지는 말이다. 딸은 "엄마, 먼데 안가니 걱정하지마. 아들, 할머니 잘 보고 있어."라는 말로 답변하고 외출한다. 딸이 말한 '할머니를 잘 돌보고 있어'라는 말이 예의 없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이 모녀의 사연을 들으면 결코 예의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008년 6월 외아들 내외와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김명님옹은 '가상성치매(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에서 자제력을 상실하여 치매와 같은 상황)'를 앓게 된다. 1남 2녀에 남편도 일찍 여의고 홀몸으로 자녀를 키워온 그녀에게 외아들의 행동은 75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와 같이 살던 외아들은 어머니인 김옹을 둘째 누나에게 맡겼다가 그와 12년 터울이 나는 첫째 누나인 강씨에게 맡기고 만다. 강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와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죽일놈의 치매, 3년간의 전쟁

치매 당시 김명님옹과 장녀 강수용씨 치매 당시 김명님옹의 치매증상이 조금 호전 될 당시 찍은 사진 ⓒ 유은총


2008년 8월말 김옹은 장녀 강수용씨의 집으로 오게 된다. 여러 집을 거치는 동안 김옹의 치매증상은 심해지고 결국 그녀의 자식과 손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 정도였다. 강씨는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한 말을 아직도 잊을수 없다고 한다. 김옹의 첫말은 "누구요? 아줌마는?"이었다고 한다.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과 남동생 내외가 미웠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생각하면 못본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유경배(59)씨와 장남 은총(27)과 차남 충만(25)에게도 미안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치매증상은 사람을 못 알아보는 단순한 현상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환영을 보고, 가정 집기를 파손하고, 수시로 집밖을 나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였다. 하루는 어머니 김옹이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김포에서 의정부까지 가서 그 곳까지 찾으러 간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간의 치매환자인 어머니 김옹과의 생활중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된다. 우연히 새벽에 식칼을 가지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김옹을 본 강씨는 전문기관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입원할 결정을 내린다.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가정에 어머니를 계속 돌보기도 어려웠고 어머니 자신을 위해 요양원에 입원키로 결정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요양원 입원 후의 모습에 대해 '요양원 가면 일찍 돌아 가신다.', '죽으러 가는 곳이 요양원이다.'라는 풍문 때문에 강씨는 한 동안 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좋은 요양원과 관리사 그리고 주기적으로 어머니를 찾아가 정신과 치료와 사랑과 애정을 쏟은 강씨에 노력에 의해 김옹의 치매증상은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무려 3년간의 고군분투 속에서 김옹의 치매증상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거처를 그녀의 장녀인 강씨의 집으로 옮기게 됐다.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낸 질병 그리고 작은 소망          

견진성사 후 장녀 강수용씨와 함께 치매가 완치된 후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고 장녀 강수용씨와 찍은 기념사진 ⓒ 유은총


"아야 너땜시 내가 나은 거여." 김명임씨의 말이다. 그녀의 장녀의 사랑과 관심으로 가상성 치매에서 벗어 났다고 항상 말한다. 하지만 강씨는 "엄마, 난 엄마한테 더 고마워. 엄마가 나 안 버렸잖아. 나 13살 때 이태원에서 말야." 라고 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옹은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로 인하여 남편과 별거했다. 다른 살림을 차린 남편에게서 그녀는 장녀 강씨를 데리고 이태원 달동네로 가서 그녀를 양육한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지만 장녀 강씨를 보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2년뒤 다시 남편 강씨와 가정을 합치고 예전과 같은생활을 하게된다. 40년 전 버릴수 없었던 혈육의 정이, 40년 뒤 질병을 이긴 모녀의 정으로 재현 되었다. 모녀는 이미 삶에 있어 떼버릴수 없는 관계가 됐다. 장녀 강씨는 어머니 김옹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오랜시간 잊고 지낸게 이제와 생각나요. 늦지 않았다면 엄마 남은 삶을 같이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김옹은 가상성 치매를 앓을 당시부터 회복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녀 강씨와 함께 다니는 성당에서 올해 견진성사(천주교 '칠성사'중 하나로 성인으로 인정받고 신에게서 많은 은총을 받는다는 예식)를 받았다. 어머니 김옹과 장녀 강씨는 다시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리고 남은 시간이 행복해지길 기도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 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어머니 '응모글'


덧붙이는 글 나의 어머니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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